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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2부 유명론과 경험주의: 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 - 2. 로크 : 유명론과 근대철학, 로크의 딜레마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2부 유명론과 경험주의: 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 - 2. 로크 : 유명론과 근대철학, 로크의 딜레마

건방진방랑자 2022. 3. 2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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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의 딜레마

 

 

그런데 로크는 곧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 데 하나는 실체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로 실체에 관한 것. 로크는 경험을 통해 우리의 감각은 대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로크가 환각이나 착각에 의한 경험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 를 자극하는 요인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떤 사물을 보고 빨갛다고 지각했다면, 나로 하여금 빨갛다고 생각케 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그게 없다면 나는 착각한 거거나 꿈을 꾸고 있는 거겠지요.

 

물론 경험이나 관찰한 바가 잘못되어서 나중에 수정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게 원래 빨간 건지, 아니면 다른 건데 우리가 그렇게 감각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마치 태양이 무슨 색인지 모르지만 대개는 노란색으로, 때로는 주홍색으로 보이듯이 말입니다. 내가 노랗다고 하건 벌겋다고 하건 태양이 있음엔 분명하다는 겁니다.

 

이처럼 로크는 빨갛다’ ‘노랗다같은 단순관념을 야기하는 것을 물질적 실체라고 합니다. 이 물질적 실체(예를 들면 태양)가 우리(주체)의 감각을 자극해서 단순관념(‘빨갛다’ ‘노랗다’)이 생기도록 한다는 거지요. 물론 이 물질적 실체는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든 불변인 채 있을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경험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며, 우리의 감각적 경험 외부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태양을 보면 언제나 태양으로 인식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같은 걸 보고서 언제는 태양이라고 했다가, 언제는 찐빵이라 하고, 또 언제는 농구공이라고 해서는 올바른 인식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인식의 불변적인 주체를 로크는 또 하나의 실체라고 합니다. 이건 정신적 실체지요.

 

결국 로크는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개의 실체를 받아들입니다. 이 두 개가 없으면 어떠한 올바른 지식도, 진리도, 과학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똑같은 걸 보고서 언제는 태양이라고 했다가, 또 언제는 찐빵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진리나 과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또 물질적 실체(태양)가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노랗다고 하거나 빨갛다고 한다면, 꿈과 과학(진리) 간에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을 나누는 근대철학 안에서 로크처럼 진리로서의 과학을 추구하려 하는 한, 물질적 실체를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피한 일처럼 보입니다. 결국 데카르트 비판에서 시작한 로크는 아이러니하게도 데카르트의 주장으로 되돌아온 겁니다. ‘실체같은 보편 개념은 오직 이름일 뿐이라는 유명론에서 시작해, ‘실체가 없어선 안 된다며 두 개의 실체(물질과 정신)가 있다는 반유명론적인주장으로 되돌아온 겁니다.

 

 

둘째로 진리에 관한 것, 이는 1성질에 관한 것입니다. 예컨대 태양의 수가 몇 개인가 생각해 봅시다. 제가 면밀히 관찰한 바에 따르면 태양은 하납니다. 혹시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 있나요? 여기에는 없는 것 같군요. 그럼 지금 이 강의실의 온도는 어떤가요? 저는 따뜻하다고 경험합니다. 저분은 추워 보이는군요. 다른 분은 춥진 않지만 썰렁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혹시 덥다고 느끼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즉 이 강의실의 온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춥다고 경험한다 해서 그를 비웃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태양이 두 개라고 경험하시는 분이 있다면 다른 모든 사람은 그가 농담을 하고 있거나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태양의 숫자를 경험하는 것이나 이 방의 온도를 경험하는 것이나 경험하기는 마찬가진데, 왜 이토록 달라지는 걸까요?

 

이에 대해 로크는 말합니다. 이 방의 온도는 그걸 느끼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성질이지만, 태양의 숫자는 주체와 상관없는 성질이기 때문이라고, 이처럼 주체에 따라 다르게 경험하는 성질을 그는 2성질이라고 하고, 주체에 상관없는 성질, 즉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느끼는 성질을 1성질이라고 합니다. 2성질은 경험 안에 있지만, 1성질은 물체 자체에 속하는 성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진리가 가능한 것은 바로 이 제1성질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인식과 대상은 일치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인 진리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봅시다. 1성질은 어떻게 해서 진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걸까요? 우리가 제1성질을 동일하게 경험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로크에 따르면, 그건 사물에 속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사물들은 그런 성질을 타고난다는 겁니다. 따라서 제1성질은 사물이 갖는 일종의 본유성질’(타고난 성질)인 셈입니다.

 

로크는 데카르트의 본유관념유명론의 입장에서 비판하며 주체로부터 본유관념을 떼어냅니다. 그러나 진리가 가능하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서 그는 그 성질(타고난 성질)을 사물들에게 돌려줍니다. 1성질이라는 본유성질로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비록 뒤집힌 형태로지만, 다시 데카르트의 주장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유명론에 반()하는 주장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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