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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3부 독일의 고전철학 : 근대철학의 재건과 ‘발전’ - 1. 칸트 : 근대철학의 재건, 그늘③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분리 문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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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청소부, 제3부 독일의 고전철학 : 근대철학의 재건과 ‘발전’ - 1. 칸트 : 근대철학의 재건, 그늘③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분리 문제

건방진방랑자 2022. 3. 2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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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분리 문제

 

 

셋째,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분리 문제입니다. 칸트에게 실천적인 판단을 하는 이성은 이론적인 판단을 하는 이성과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심지어 이론적인 이성의 영역에선 신을 쫓아내도, 실천이성의 영역에선 필요에 의해 다시 불러들이기도 할 만큼 따로 놉니다. 여기서 순수이성은 선험적 형식이라는 이유로, 진리를 기초지우는 확실한 근거로서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실천이성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보편입법의 원리라는 도덕철학은 무엇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여기서 다시 진리를 끌어들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천이성은 순수이성과 전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고, 칸트에게 행동이나 의지는 진리와 전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보편적 윤리학의 근거는 무엇인가? 실천이성 자신이 스스로를 근거지웁니다. 바로 여기서 칸트의 비판철학은 독단론으로 전환됩니다. 개인들의 의지와 욕망을 오직 보편적 입법원리에 끼워맞추려는 독단론이, 자유를 해야 할 것(의무)에 따르는 것으로 정의하는 독단론이, 그리고 선()(자신이 설정한) 도덕 법칙에 의해 정의하는 독단론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들로네의 예펠탑

사태는 점입가경, 혹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여러 가지 격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인해 선험적 주관의 격자로 진리의 기초를 삼으려던 칸트의 구상이 깨진 데 이어, 이제는 하나의 시점에서 여러 개의 격자를 뒤섞고 병렬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위의 그림은 피카소(Pablo Picasso)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이다. 1906아비뇽의 처녀들이란 그림에서 투시법을 완전히 깨버리고,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본 얼굴을 뒤섞어 아가씨의 얼굴을 그리고, 등짝 위에 앞 얼굴이 달린 몸뚱이를 그렸다. 이른바 입체파가 그 해에 탄생한다.

아래의 그림은 들로네(Robert Delaunay)에펠탑(La Tour d'Eiffel)이다. 이 그림에서 들로네 역시 여러 각도에서 본 에펠탑의 모습을 하나의 시점에서 본 것처럼 섞어서 그렸다. 이럼으로써 투시법은 시각예술에 대한 지배를 포기해야 했고, 투시법이란 코드에서 벗어난 붓은 새로운 형상, 새로운 이미지를 다양한 방향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재현이라는 오래된 강박증에서도 벗어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술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시도가 쉽게 사라지진 않았다. 아직도 주위에서 그런 간절한 노력의 잔영을 발견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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