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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한글역주, 제6장 - 히포크리테스(위선자)의 경건 본문

고전/성경

도마복음한글역주, 제6장 - 히포크리테스(위선자)의 경건

건방진방랑자 2023. 3. 1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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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히포크리테스(위선자)의 경건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하게 기도하라

 

 

예수는 매우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가 일상적으로 가장 혐오했던 것은 종교인들의 위선이었다. 예수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종교적이 되는 것을 가장 혐오했다. 종교는 본시 사람들의 의로운 행위로 구성되는 것인데, 그 의로움이란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시고, 보시고, 갚으시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소통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인간세의 상찬과 무관한 것이다. 구제할 때에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예수는 인류역사에 고매한 도덕기준을 제시했다.

 

 

6

1그의 따르는 자들이 그에게 여쭈어 가로되, “우리가 금식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오리이까? 구제는 해야 하오리이까? 음식 금기는 무엇을 지켜야 하오리이까?” 2예수께서 가라사대,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지말라. 3그리고 너희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말라. 4모든 것은 하늘 앞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5감추인 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고, 6덮힌 것은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라.”

1His followers questioned him and said to him, “Do you want us to fast? How should we pray? Should we give to charity? What diet should we observe?” 2Jesus said, “Do not lie, 3and do not do what you hate, 4because all things are disclosed before heaven. 5For there is nothing hidden that will not be revealed, 6and there is nothing covered that will remain undisclosed.”

 

 

본 장의 내용 역시 공관복음서에서 발견되는 예수의 모습과 전혀 상치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관복음서의 원래적 맥락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우리에게 더해 준다. 본 장의 내용은 반드시 마태복음 6 1절부터 18절까지의 내용과 같이 읽어야 한다. 마태복음 6장의 이 부분은 매우 조직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1절에 총론적인 언급이 있고, 그 나머지 부분에 전통적인 유대교 경건주의의 대표적인 표상인, 3가지 행위양식에 관한 구체적인 경고가 포함되어 있다. 3가지란 1) 구제(Alms) 2) 기도(Prayer) 3) 단식(Fasting)이다.

 

마태 61절의 내용은 우리가 한번 새겨볼 만한 소중한 말씀이다. 요즈음 같은 세태에서는 우리 가슴에 더욱 신랄한 경종의 외침으로 파고든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로움의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보이려고 행한다면 너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리라(Be careful not to do your ‘acts of righteousness’ before men, to be seen by them. If you do, you will have no reward from your Father in heaven).” (NIV).

 

종교란 본시 의로움의 행동(acts of righteousness)’이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새로운 의로움은 낡은 의로움과는 질적으로 다른 그 무엇이다. 마태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로움이 바리새인이나 율법의 교사들의 의로움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결단코 너희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무엇이 다른가? 외면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요, 내면에서 끊임없이 심화된다는 것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추구와 발견이다.

 

나의 의로움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대부분의 종교적인 사람들이 그 의로운 행동을 겉으로 사람들에게 내보이기 위하여 드러낸다는 것이다. 왜 드러내는가? 그들이 의로운 행동을 하는 궁극적 목적이 사람들의 상찬(賞讚)을 얻고자 함에 있고, 하나님의 상완(賞玩)하심을 얻고자 함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극장의 객석 밑에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통로들이 있다. 얼마나 대단한 규모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이런 데서 사람들이 만나 노닥거리다가 자기 자리를 찾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행상들이 자리를 펴놓고 앉아 있었다.

 

 

정치인이나 사회적으로 공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공적인 매체를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내비치는 것을 삼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하나의 전일한 종교가 국체를 지배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리고 운동선수들이 승리의 순간에 천진난만한 환호의 기쁨을 발하는 것은 아름답게 봐줄 수 있지만, 유별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과시하는 것은 삼가하도록 감독이나 코치들이 지도할 필요가 있다. 나의 기쁨의 순간에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인 상대방이 슬픔을 맛보고 있다는 것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경기에 있어서의 승리란 나를 지원하는 이 땅의 사람들과 그 기쁨을 나누어가질 사안이지 매순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할 사안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예수님 본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받을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너희가 구하기 전에 이미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6:5~8)

 

 

여기 개역한글판 번역인 외식하는 자외식(外飾)’이라는 뜻은, 겉으로만 장식한다는 뜻이다. 그 희랍어 원어는 지금 우리가 영어로 위선자(hypocrite)라는 뜻으로 쓰는 히포크리테스(hypokritēs)’인데, 그 원래의 뜻은 배우이다. ‘위선이란 고대 희랍어에서 무대 위에서 역할을 행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플라톤의 지적에 의하면 진리 그 자체를 행하는 것이 아니요, 진리인 척 쇼를 하는 것을 말한다. 위선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 선을 가장(假裝)하지만 실제로 악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 있다. 이 부류는 자기의 악랄함을 인식하고 있다. 둘째, 자신의 가장적 행동을 통해 자기자신을 기만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경건한 사람들이며 자신의 기만성을 자각하지 못한다. 셋째, 자신의 가장하는 행동이 하나님과 대중을 위한 최선의 방도라고 믿으며 대중을 의도적으로 기만한다. 궁핍한 자들을 위해 많은 선행을 행하지만 선행을 하면 할수록 궁핍한 자들의 상찬을 더 얻으면서, 더욱더 자기기만으로 빠져들어 간다.

 

예수가 증오한 것은 위선이었다. 예수는 인간세의 상찬과는 관계없는, 내면의 은밀한, 나 실존의 하나님과의 소통만을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은밀한 가운데 계시며, 은밀한 가운데 보시며, 은밀한 가운데 갚으시는 친근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예수는 과연 그를 따르는 자들이 종교적이기(being religious)’를 바랬을까? 그는 유대민족의 모든 종교적 행동 패턴에 신물이 난 사람이었다. 과연 예수가, 역사적 예수가 오늘과 같은 또 하나의 종교를 만드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을까? 당시 종교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제와 기도와 단식을 해야만 했다. 나팔 불면서 구제하고(6:2), 남 잘 보이는 큰 거리 어귀에 서서중언부언 큰소리로 기도하고(6:5~7), 온갖 흉한 얼굴로 슬픈 기색을 내보이며 단식하는(6:16) 모습이야말로 당대 경건한 종교인들의 표상이었다. 예수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종교적으로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예수운동은 근원적으로 제도적 종교로부터 벗어나려는 운동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교회를 크게 만들려는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을 도마복음서가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도 없는 외식으로 꾸미려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닐지니.”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 베드로성당 앞에 있는 광장(Piazza San Pietro)에는 로마와 전세계에(Urbi et orbi)’라는 거창하고 장엄한 교황의 축복을 받으러 전 세계인들이 모여든다. 바로크시대의 가장 위대한 조각가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9~1680)가 설계한 이 성 베드로광장은 타원형으로 된 두 개의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회랑의 한 쪽 끝은 베드로성당에 연결되어 있다. 이 광장의 원래 모델을 바로 여기 요르단의 제라시(Jerash)에서 볼 수 있다. 제라시는 로마시대에는 거라사(Gerasa)라는 이름으로 불린 데가볼리(Decapolis) 중의 하나였는데, 그 장엄한 모습은 직접 가보지 않으면 감을 잡기가 어렵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 지역을 평정하면서(BC 333) 헬레니즘의 주요거점으로 등장하였고, 폼페이우스가 점령하면서(BC 64) 시리아 속주의 중심도시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페트라를 창조한 나바태안 왕국과 교역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로마제국은 제국의 위용을 이 지역에 과시하기 위하여 거라사에 거대한 도시플랜을 구현시켰다. 둥근 회랑과 거기서 쭉 벌어 내려간 카르도 막시무스(중심대로)의 위용은 로마를 제외하고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원형극장 꼭대기이기만 발아래 돌부스러기 유적은 거대한 제우스신전의 마당(Lemenos)이다. 바티칸에는 제우스신전 대신 베드로성당이 가리잡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이곳을 왔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예수의 활동영역 속에 이곳이 들어있었다.

 

 

인용

목차

본문

성경

주제상관도표

기독교성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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