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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마복음한글역주, 제3장 - 주체의 혁명 본문

고전/성경

도마복음한글역주, 제3장 - 주체의 혁명

건방진방랑자 2023. 3. 1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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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체의 혁명

천국(나라)은 천당이 아니요, 주체의 개벽이다

 

 

예수는 나라(천국)를 선포한 이 땅의 지혜였다. 예수가 선포한 나라를 우리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만드는 최대의 방해꾼들은 바로 우리를 바르게 인도한다고 말하는 자들이다. 예수는 모든 조직과 전도주의를 거부한다. 우리의 인도자들은 항상 말한다. 천국은 저 하늘에 있도다! 그렇게 말하는 모든 인도자들은 사기꾼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본인의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3

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를 이끈다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보라! 나라(천국)가 하늘에 있도다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2그들이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라는 바다 속에 있도다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3진실로,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

4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 때, 비로소 너희는 알려질 수 있으리라. 그리하면 너희는 너희가 곧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5그러나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빈곤 속에 살게 되리라. 그리하면 너희 존재는 빈곤 그 자체이니라.”

1Jesus said, “If those who lead you say to you, ‘Look, the kingdom is in heaven,’ then the birds of heaven will precede you. 2If they say to you, ‘It is in the sea,’ then the fish will precede you. 3Rather, the kingdom is inside you and it is outside you.

4When you know yourselves, then you will be known, and you will understand that you are children of the living father. But if you do not know yourselves, then you dwell in poverty, and it is you who are that poverty.”

 

 

도마복음서는 어디까지나 로기온의 무작위적 컬렉션(random collection)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진실로 놀라운 구성력을 과시하고 있다. 2에서 천국은 인간의 주체성과 관련하여 간접적으로 암시되었지만 명료하게 그 언어가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3장에서는 나라천국이라는 표현이 과감하게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상식을 전도시키는, 화려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메타포로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3장에서 드러난 나라의 테마는 맨 마지막에서 두번째 장 113에 다시 명료하게 나타난다. 그러니까 제3장은 전체 주제를 나타내는 장(topic chapter)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제3장에서 제113장까지 일관되게 나라의 현실적 임재성(臨在性)이 보이지 않게 깔려있는 것이다.

 

2장의 주제는 우리 주체의 개벽이었다. ‘개벽(開闢)’이란 말은 우리나라 동학(東學)에서 주된 가르침의 술어로서 활용되었지만, 실제로 그것은 한대(漢代)역학(易學)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천지, 즉 하늘[]과 땅[]의 새로운 열림(開闢)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세기의 헬라화된 유대인들에게도 천국의 도래, 새로운 천지의 개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는 지혜문학전통에 있어서는 정치적인 새 세상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인간실존의 주체적 성찰의 문제로서 내면화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내면화 과정의 심연에서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 그리고 그의 사상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역사적 예수는 분명 지혜로운 스승이었다. 그의 지혜에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든 말든, 그것은 초기교단의 정책에 속하는 문제이다. 도마복음서는 그러한 기독론적ㆍ종말론적 초대교회의 케리그마 이전의 사태이다. 본장은 첫머리에서부터 이미 그런 교단의 조직에 대한 강한 부정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을 교단조직에 대한 후대의 반발로 보아 이 문헌의 성립을 후대로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나타나는 조직의 경계는 조직이 형성되어 가려고 하는 매우 초기의 조짐에 대한 일갈인 것이다.

 

너희를 인도한다고 하는 자들은 교단의 조직을 장악하는 자들이다. 항상 타인을 인도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인간의 구원에 가장 방해를 주는 사람들이다. 집사이든 장로이든 목사이든 신부이든, 이들이야말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하여 헌신해야 하는 사람들이요, 인간의 구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물론 예수의 시대에는 집사도 없었고 장로도 없었고 목사도 없었고 신부도 없었다. 따라서 여기 살아있는 예수의 말을 이러한 조직의 들에 대한 이야기로서 해설할 수는 없다. 단지 예수운동의 시대에도 남을 이끈다고 자처하는 자들은 항상 타인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어갈 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보라! 나라가 하늘에 있도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길거리 전도사들은 이렇게 외친다: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저 하늘에 있는 천당에 갈 수 있습니다.”

 

 

민수기 20에 보면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나오게 하는 장면이 있다. 그 생명수가 콸콸 쏟아지는 바위가 바로 이 근처에 지금도 있다(Ain Musa, 모세의 샘). 그 물이 옛날에는 이 협곡을 가득 메우고 흘렀다. 그래서 나바태안왕국의 사람들이 댐을 막고 물길을 돌려 이 협곡지역을 거주지로 만들었다. 대신 절벽을 파 수로를 만들어 식수를 공급하였다. 나바태안왕국 문명의 높은 수준을 말해준다.

 

 

그러나 천국은 천당(天堂)이 아니다. 천국은 저 푸른 하늘에 있는 공중누각의 당호(堂號)가 아니다. 천국은 토포스(topos)’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공간개념이 아니며, 지역개념이 아닌 것이다. 천국은 장소적 실체개념이 아닌 것이다. 예수는 천국을 말했을 뿐, 천당을 말한 적이 없다. 천국이란 하나님의 나라이다. ‘나라지배(Reign)’라는 추상적 질서를 뜻하며 공간적 왕국을 지시하지 않는다. 왕국(Kingdom)이나 나라라는 문자상의 개념은 우리의 상상력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문학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 도마복음의 기술방식에 있어서 현저한 사실은 전혀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나라’ ‘천국(the Kingdom of Heaven)’이라는 말도 거의 쓰지 않는다. 도마의 예수에게 있어서는 하늘이니 하나님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이원론적 분별의 대상이며 부정적 함의를 지니는 것이다. 그래서 도마의 예수가 쓰는 표현은 나라이거나 아버지의 나라(the Kingdom of the father)’이다. 역사적 예수는 전통적 유대인의 관념속의 하나님을 거부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아버지였을 뿐이다. ‘아버지하늘이나 하나님처럼 나로부터 객화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나로부터 객화되지 않는 일체(一體)이며 동시에 나의 현존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다.

 

예수는 나라를 아버지의 질서가 지배하는 어떤 상태로서 해석했다. 그것은 제2장에서는 주체의 개벽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체는 집단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individual)이다. 나 개별적 존재의 주체의 개벽이다. 주체의 개벽이란 주체의 혁명이다. 그것은 정치적 전복과도 같은 일시적인 혁명이 아니라 영원한 의식의 혁명이다. 그래서 예수는 끊임없는 추구를 말했다. 도중에서 포기함이 없는 추구를 말했던 것이다. 추구와 발견, 번민과 경이, 지배와 휴식, 이 세 쌍의 과정이 주체의 개벽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심오한 개벽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을 이끈다고 하는 자들, 타인을 구원하겠다고 떠벌이는 자들이 무어라 말하는가?

 

보라! 나라가 저 푸른 하늘에 있도다!’ 이에 예수는 무어라 대답하는가? “타인을 인도한다고 사기치지 말라! 함부로 구라치지 말라! 나라가 저 하늘에 있다고 한다면, 그 따위 천국일랑 저 하늘의 새가 그대들보다 더 먼저 도달할 것이니라.”

 

다음 구절의 말씀은 공간적으로 하늘과 대비되어 바다속으로 되어있다. 옥시린쿠스파편은 하늘의 대척점으로 땅 속에(under the earth)’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천국이 저 바다속에, 저 땅속에 있다고 한다면 바다의 물고기가 우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궁금치 아니한가?

 

 

부시정권이 지구상에서 악의 축으로서 규정된 두 나라가 있다. 시리아와 북한! 두 나라는 역사적으로 매우 친근하다. 30년 절대권력을 휘둔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를 계승한 바시르 알 아사드(Bashir al-Assad) 정권의 성격도 북한정권과 비슷하다. 시리아에서 코리안의 인기는 좋다. 물론 북한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남한에서 왔다고 하면 시리아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충고를 한다: “도대체 왜 남·북한이 갈라져 싸우는지 모르겠군, 대포동미사일을 쏠 줄 아는 북한의 깡다구와 남한의 경제력을 합치면 짱일텐데.” 여기는 아브라함이 살았던 하란지역이다. 땡볕이 쏟아지는 척박한 사막에 토담집 몇 채씩 짓고 옹기종기 산다. 내가 동네를 지나는데 사람들이 날 불러 생명의 물을 주었다. 이들이야말로 천국이 네 밖에도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인에게 적대적이라는 가이드의 경고와는 달리 이들은 너무 친절했고 개방적이었다. 우리가 시리아를 사랑할 수 있다면 당연히 북한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은 최근 북한에 대한 적성국가교역법을 종료시켰다. 그리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뺄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정권은 의미없는 이데올로기 덫에 걸려 남북문제의 이니시어티브를 다 상실했다. 한국의 경제소생은 남북문제의 진전없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곳 아브라함의 고향에서 통감했다.

 

 

인용

목차

본문

성경

주제상관도표

기독교성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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