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로역정(地路歷程)
한국의 교회여! 끊임없이 새롭게 울려퍼지는 예수의 복음을 들으라!
❝종교는 권유이며 강요가 아니다. 과도한 전도주의는 죄악이다. 종교가 우리사회의 합리적 소통을 방해하는 이념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성서는 인문학적 분석의 대상이다.❞
100회로써 중앙SUNDAY에 연재되었던 ‘도을의 도마복음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나는 본시 중앙일보에서 2년 동안만 사회적 글쓰기의 책무를 수행하기로 약속했다. 2년이라는 세월이 짧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돕시 기나긴 인생의 시간이었다. 중앙일보 본지에 쓴 도올고함과 중앙SUNDAY에 쓴 도마복음서 주석을 모두 비슷한 분량인데, 2년 동안 무사히 연재하고 약속대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 사실이 기적 같게만 느껴진다. 도마복음서 주석은 신약성서에 대한 기존의 동념을 뒤엎는 매우 파격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있기 때문에 맹목적 신앙과 보수적 교단의 이해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물론 중앙일보에 보이지 않는 압력도 있었을 것이고, 또 이 순간 이 연재가 종료된다는 사실을 ‘복음의 소식’처럼 기뻐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도마복음 이야기가 2년이나 사회적 공론으로서 지속될 수 있었다는 것은 한국교계의 성숙한 모습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만큼 성서에 대한 합리적, 지적 이해의 갈망이 우리사회에 하나의 거대한 사상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여론의 줄타기를 하면서 버겁게 나의 연재를 지속시켜온 중앙일보 관계자들에게 우리는 모두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혹독한 신앙의 굴레 속에서 성장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쿄오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의학부까지 다닌 양의(洋醫)였으니까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번 돈의 거의 전부를 교회에 바쳤다. 그러기 때문에 나 또한 내 삶을 가계에 의존하지 않고 운영해야만 했다. 대학시절부터 유학시절에 이르기까지 나는 장학금으로 나의 학업을 지탱하였다. 내가 유족한 집에 태어나 유족하게 공부한 사람으로 아는데 실상 나는 자력으로 산 사람이다. 우리 누나도 미국유학 갔을 때 미국대학 장학금으로 공부했다. 그런데 그 박약한 장학금을 아껴 부모님 쓰시라고 송금하면, 우리 부모는 그 피땀어린 돈조차 몽땅 교회 성전헌금으로 바쳤다. 이렇게 해서 성장을 거듭해온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과연 이 민족, 이 사회에 어떠한 빛을 발하고 있는지 나는 알 바가 없다. 단지 내가 우리 부모님께서 믿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돈을 버는 족족 다 교회에 바쳤기 때문에 우리 6남매가 싸울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우리 부모는 남긴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의 삶에서 내가 배운 것은 초월자에게로의 헌신이 아니라 자기부정(self-negation)이다. 나의 부모의 헌신적 자세야말로 곧 축복이라고 할렐루야를 외칠 광신도들이 많겠지만, 나는 그러한 축복은 영원히 사양한다.
▲ 나는 어려서부터 사도 바울을 흠모했다.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이방선교를 감행한 용기, 그의 편지에 나타나는 치열한 헬라적 논리, 목회자로서 일체 신도들의 헌금에 자신의 삶을 의존치 않고 텐트-메이커로서 살았던 떳떳한 양심, 여타 제자들과는 구별되는 학문 실력과 국제적 감각, 그리고 투병의 역정, 이 모든 것이 나의 실존적 삶의 자세와 철학에 스며들었다. 그가 태어난 고향, 다소(Tarsus)를 가보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아득한 동경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바로 바울이 걸었던 그 길을 걷고 있다. 다소의 중심부에 있는 이 길은 바울뿐 아니라, 키케로, 줄리어스 시저, 클레오파트라와 마크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하드리아누스가 걸었다. 이 유적지는 입장이 불가한 곳이었으나 특별허가를 얻어 걷는 영예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여로는 나의 사상역정의 한 혁명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도마복음 속의 ‘살아있는 예수’가 제시한 길을 묵묵히 타협 없이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나를 ‘길 잃은 양’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꾸준히 살아있는 예수(The Living Jesus)의 말씀을 전할 것이다.
나는 도마복음을 공적인 자리에 연재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명감 속에서 주석했다. 첫째, 기독교신자가 이토록 많은 나라, 그리고 신학자들이 이토록 많은 나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첨단에 서있는 성서관련 정보가 차단되고 있는 것은 좀 부끄러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학자들이 교권에 눌려 소신껏 자기 목소리를 낼 수가 없게 되면 신학은 생명력을 잃는다. 신학이 자유로운 상상력을 상실하면 교권이 타락하고 결국은 교회 자체도 몰락하게 마련이다. 현재 도마복음서의 연구는 구미신학의 주류를 형성하는 첨단사조이다. 이 시대 이 땅에도 구미신학의 한계를 초월하는 자유로운 신학적 논의가 있었다는 이정표를 나는 세계사에 남기고 싶었다. 그것은 비단 신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상사의 개방성에 관한 문제였다.
둘째, 모든 경전은 성서이며 성경이다. 성경(聖經)이라는 말 자체가 유교경전에 대해 썼던 말을 기독교가 차용한 것이다. 성인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을 모두 성경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성경’이라는 말에 특수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성령에 의하여 쓰여진 특수한 문헌이며 인간의 지혜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 이러한 황당한 거짓말로부터 우리는 해방되어야 한다. 모든 성경은, 지구상의 문명의 문자의 산물인 이상 철저히 인간의 창작물에 속하는 것이다. 비록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손을 빌린 이상, 그것은 인간의 창작물에 속하는 것이다. 성경을 집필한 손의 신성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신성(holiness)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모든 성경은 인간의 지혜의 소산으로서 철저히 분석되어야 한다. 그 통시적ㆍ공시적 측면이 언어학ㆍ역사학ㆍ신화학·철학·문학 등 제반 학문의 성과 위에서 유감없이 분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분석으로써 깨져나가는 신앙은 신앙의 자격이 없다.
▲ 사도 바울의 집 뜨락에 있었던 우물, 바울 그는 신화 아닌 역사였다. 지금도 바울이 먹었던 그 샘물을 떠먹을 수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 다소는 ‘바울의 해’ 축제로 들떠 있었다. 다소를 둘러치며 내륙과 해안으로 뻗은 타우루스 산맥에서 유프라테스ㆍ티그리스강이 발원한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셋째, 신을 믿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는 것도 자유이다. 인간이 신을 믿어야 한다면, 신 또한 인간을 믿어야 할 것이다. 신과 인간은 호상적으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나의 생각과 무관하게, 혹자가 어떠한 형태의 신관이나 신앙형태를 유지하든지간에 그것은 개인의 자율에 속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자율권을 벗어나 사회적·집단적 행위로 표출될 때 최소한의 합리적 규제의 제약을 벗어날 수는 없다. 사람들이 곤히 잠들고 있는 새벽 주택가에서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소리로 범종이나 차임벨을 울리는 것은 인권의 침해에 속하는 일이다. 정적한 산사에서 돼지 멱따는 듯한 염불소리를 확성기로 틀어놓는 것도 분명한 폭력이다. 이런 사소한 문제를 포함하여 인간의 내면세계에까지 마구 간섭하면서 배타적 권력을 휘두르는 종교적 폭력은 사람들이 지적하기를 두려워한다. 광신도들의 광란이나 정치적 세력화의 협박 때문에. 나는 종교가 우리사회의 합리적 소통을 방해하는 광신의 형태가 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한때 가톨릭 신부들이 자기들도 세금을 내야한다고 주장한 적도 있었는데, 종교적 단체의 재정이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는 새로운 세제(稅制)를 입법화하는 것은 너무도 정당한 일이다. 왜 기독교인이면 무조건 빨갱이를 증오해야 하는가? 도대체 기독교와 반공(反共)이 무슨 상관인가? 왜 기독교인이라면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에 서야만 하는가? 이 모든 것이 종교 자체를 도그마로서만 규정하는 사유에서 유래되는 것이다. 종교는 더 이상 도그마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넷째, 도마복음서에 대하여 나는 고전주석의 일반적 논리를 따랐다. 도마복음은 분명 예수가 그리스도나 묵시론적 메시아로 둔갑하기 이전의 살아있는 역사적 인간의 모습을 담고있다. 그리고 이 문헌의 핵심적 층대는 4복음서의 성립보다 빠르다. 나는 AD 50년경으로까지 소급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어느 로기온 파편은 그보다 후대에 성립한 것이 삽입되었을 수도 있다. 도마복음은 영지주의와도 무관하다. 영지주의 문헌이 보여주는 신화적 세계관으로부터 탈피되어 있다. 도마복음의 문헌적 정밀함은 그것을 외경으로 몰아붙이려는 어떠한 시도도 무색하게 만든다. 이미 도마복음은 외경으로서 소외될 수 있는 문헌이 아니며, 4복음서의 전승의 갈래를 파악케 만드는 원자료로서 큐복음서와 함께 이미 4복음서에 내재하는 문헌으로 융합되어가고 있다. 도마복음서의 이해가 없이 4복음서를 이해하는 것이 이미 문헌비평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도마복음서는 4복음서와 병립되는 제5복음서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 신학계에서는 이미 5복음서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종교혁명이 일어난다면 신약성서의 재편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제5복음서로서 도마복음서가 들어가고 요한계시록이 탈락되는 27서를 구상할 수도 있다. 인도불교가 선불교에로의 격의(格義) 과정을 거쳤다면 로마중심의 서구기독교가 동방의 선기독교에로 트랜스포메이션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필연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나의 신념이요 사명이다. 종교는 권유이지 강요가 아니다. 제25장까지 주석을 마쳤다. 나머지 26장부터 114장까지의 부분은 보다 학구적인 주석으로서 단행본(제3권)으로 상재될 것이다.
이상 1·2권에 실린 100편의 글은 2007년 5월 6일부터 2009년 3월 29일에 걸쳐 약 2년간 매주 일요일 중앙SUNDAY에 연재되었던 것이다. 그 연재 양식을 그대로 존중하여 실었다. 중앙SUNDAY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던 방진환 팀장, 교정을 담당했던 최성우, 김승욱 부장에게 감사한다. 사진은 중앙일보 임진권 기자가 찍은 것이고 자료정리는 당시 기자였던 김인혜 부장이 담당하였다. 그리고 중앙SUNDAY 제1대 편집국장 오병상, 제2대 편집국장 전영기, 이 두 사람은 이 글이 연재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온 몸으로 막아주고 필자를 격려하였다. 이 두 사람에게 이 자리를 빌어 특별한 감사를 표한다. 우리 문명의 케릭스[전령관]들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 다소 한가운데 있는 바울과 관계있는 초기교회, 축성 연대는 AD 300년에까지 소급될 수 있다. 1415년 모스크로 전환되어 지금에 이르는데 전형적 바실리카 양식이 남아있다. 나는 여기서 바울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그동안 나의 글을 읽어준 여러분을 위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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