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김형술,「양사룡전」의 자료적 가치 - Ⅲ. 양사룡의 당위소당과 이기발의 진아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김형술,「양사룡전」의 자료적 가치 - Ⅲ. 양사룡의 당위소당과 이기발의 진아

건방진방랑자 2022. 6. 14. 10:34
728x90
반응형

 . 양사룡의 당위소당(當爲所當)과 이기발의 진아(盡我)

 

 

양사룡의 당위소당(當爲所當)

 

양사룡전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가치는 어머니에 대한 효행, 행인(行人)들을 위한 오이 나눔 선행, 그리고 그 둘을 근저에서 추동하며 보다 근원적인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의리[보은의식]이다. 해당 내용을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그 모친은 나이가 70여 세였는데, 갑신년(1644) 가을, 그 모친에게 병이 생겨 거의 소생할 수 없을 듯하였다. 그 사람은 밤낮으로 하늘에 기도를 드렸는데 피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이시여! 우리 어머니의 병이 심해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하늘이 정녕 내 어머니를 취하시려는 것입니까? 내 나이 한창이고 많이 남았으니 하늘을 섬기는 것은 필시 어머니보다 제가 나을 것입니다. 하늘이시여! 청하옵건데 어머니 대신 나를 데려가소서.”라고 하였다. 이처럼 눈물을 뿌린 지가 열흘이 되었는데 그 모친이 이레 만에 소생하여 일어났다. 그 사람은 이것은 하늘이 내 어머니를 보살펴주신 것이다. 내가 어찌 감히 나의 정성을 다하지 않고, 내가 어찌 감히 내 몸 수고로운 것을 마다하여 하늘에 제향하는 것을 소홀히 하겠는가? 하늘은 하민(下民)을 길러주시니 진실로 내 행위가 조금이라도 남을 기쁘게 할 것이 있다면 하늘은 반드시 나의 제향을 받아주실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남에게 은혜를 베풀 돈과 재물이 없고, 내게는 남에게 혜택을 줄 작위도 없으니 나는 다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마땅히 하리라.”라고 하였다.

其母年七十有餘, 甲申秋, 其母有疾病, 幾不甦. 其人日夜禱天, 繼以血泣曰: ‘天乎! 我母病極, 勢不可活, 天寧有必取我母者? 我年壯且不嗇, 必能事天愈於母. 天乎! 請以我代母.’ 如是而雪涕焉者至旬日, 其母凡七甦乃起. 其人曰: ‘是天所以顧我母者. 我其敢不殫我誠, 我其敢不勞我身, 以享天一分乎? 夫天字下民, 苟我所爲一分有悅於人者, 天未必不我享也. 而我無錢財可以惠於人, 我無爵位可以澤於人, 則我但當爲所當爲.

 

그러나 저는 천한 사람이라 하늘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저 스스로 하늘과 사람의 관계는 곧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와 같으니 사람 가운데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고 그것을 보답하는 자식이 있다면 아버지가 반드시 기뻐하리라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무릇 천자의 재상이 된 자는 천하의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고, 제후왕의 재상이 된 자는 일국의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고, 백 리의 땅에 수령이 된 자는 한 지역의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천한 사람이라 많은 재물을 가지고서 어려운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나의 가난이 심해서 할 수 없다면서 혹여 사람을 이롭게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아버지께 은혜만 입고 보답하지 않는 자식과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我賤人也, 不知所以報乎天者. 自以天之於人, 卽父之於子也, 人有惠於父而報之子者, 父未必不喜. 夫爲天子輔相者, 利天下之人; 爲侯王輔相者, 利一國之人; 爲牧守於百里之地者, 利一境之人. 今我賤人也, 不可得有財巨萬, 可以利竆人. 今我貧甚不可得, 未或有可以利人者, 則是徒惠於父, 而亦不得報之子也. 如此其可乎? -李起浡, 西歸遺稿7, 梁四龍傳.

 

 

첫 번째 인용문은 본사1에 해당하는 전주 사람들의 전언 가운데 일부이다. 노모가 병이 들어 다시 살아날 기미가 없자 양사룡은 피눈물을 흘리며 늙은 어머니 대신 나를 데려가 달라며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노모가 다시 소생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러자 하늘의 보살핌 덕분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양사룡은 하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돈도 없고 작위도 없지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마땅히 하겠다[當爲所當爲]’고 다짐하였다.

 

두 번째 인용문은 서귀가 직접 만나서 들은 양사룡의 입장이다. 첫 번 째 인용문과 같은 취지이지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마땅히 하겠다[當爲所當爲]’고 다짐하게 된 경위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양사룡은 하늘의 특별한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랐다. 물질적으로는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는 가난한 천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양사룡은 가난을 핑계로 자신이 할 도리를 저버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와 같다고 생각했던 양사룡에게 가난을 핑계로 마땅한 도리를 저버리는 것은 마치 아버지께 은혜를 입기만 하고 보답할 줄 모르는 자식의 행위와 같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서귀가 전하고 있는 양사룡의 질박한 사고이다. 양사룡은 효에 대해서도 하늘에 보은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념적으로 사유하지 않는다. 받은 게 있다면 반드시 보답해야 하고 마땅히 해야 할 바가 있다면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이 단순하지만 명료하기 그지없는 생각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효는 물론이고 사람과 하늘 사이의 의리까지도 망설임 없이 실천하게 하는 동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양사룡의 당위소당(當爲所當)은 어떻게 구체화 되었는가?

 

 

이에 그 아내와 함께 한마음으로 재계하고 동짓달부터 이듬해 2월까지 골 짝 어귀의 큰길가에 묵정밭 수십 이랑을 개간하였다. 호남 서도 수십 고을의 사람들 가운데 영남으로 오가는 자와 동도 수십 고을 및 영남인 가운데 호남 서도로 오가는 자들이 모두 이 길을 경유해서 행인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었다. 길 동쪽에 큰 고개가 있는데 돌 비탈이 몹시 구불거리는 것이 험난하기 그지없는 촉도(蜀道)에 뒤지지 않아 행인들이 그 길 가는 것을 매우 우려하였는데, 밭은 그 고개 밑에서 약 3리가량 떨어져 있었다. 그 사람은 곧 밭 가운데 초막 한 칸을 짓고 그 아내와 함께 부지런히 오이를 심고 가꾸면서 전처럼 재계하고 변함없이 제사를 지냈다. 그때 가뭄이 그치지 않아 오이가 말라죽을 판이었는데 홀연 구름 기운이 나타나 그 초막을 감싸더니 이윽고 비가 크게 내렸다. 이와 같은 일이 열흘에 꼭 두세 번은 일어나자 초막에서 약간 떨어진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두 기이한 일로 여겼다. (중략)이에 오이가 지극히 잘 자라나 그저 주렁주렁 달린 정도에 그치지 않았으니 오이 수확은 남보다 열흘에서 한 달 이상 빨랐고, 오이 생산도 계속되어 그 면적으로 따져보면 소출이 열배 백배나 되었다. 이에 계곡물을 이용해 차가운 샘을 만들고 매일 아침이면 오이 백 개, 천 개를 따서 물에 담갔다. 그리고 큰 대야 하나를 길 가운데 두고는 멀리서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반드시 사람 수보다 몇 곱절 많게 오이를 가져다 소쿠리에 담아 두었다. 그리고는 사람이 당도하면 노소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무릎을 꿇고 오이를 바치면서 맛볼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던 자들은 모두 험한 고개를 힘겹게 넘느라 갈증이 심할 때라 손쉽게 먹으면서 맛나게 먹었다. 또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던 자들은 하늘을 찌르는 돌길을 올려다보며 타는 듯한 무더위를 모두 심히 걱정했기 때문에 반드시 오이 하나를 먼저 먹어 열기를 씻어내고 또 남은 길을 위해 반드시 두세 개를 챙겼다. 그 길을 경유하던 자들은 반드시 이 일을 전하여 훌륭한 일로 삼았고 이에 이 일은 더욱 널리 전해지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於是, 與其妻一心齋肅, 自至月至明年春二月, 乃於峽口大路傍, 闢荒田數十頃. 盖湖南西道十數州郡人來往嶺南道者及東道十數州郡及嶺南人來往湖南西道者, 皆由是路, 行人日可數十百人. 其東有大峙, 石坂九折不下蜀路崟崎, 行人甚憂之, 田去峙底約可數三里. 其人乃於田中, 立草幕一間, 與其妻種瓜培埴甚勤, 其齋肅如舊, 常如承祭. 時天旱不已, 瓜逼枯, 忽有雲氣繞其幕, 俄頃雨大作. 如是者必旬有二三, 鄰其幕若干里, 里人咸異之. (中略)於是瓜極茂, 不但唪唪已也, 瓜之食先於人旬朔, 而瓜之作不竆, 校其地, 其出可什百. 於是作澗流爲洌泉, 以每日朝, 摘瓜千百數, 沉之水, 置一大盤路中, 望見人來, 必以人數取瓜倍蓰, 置盤上, 及人到, 不卞老少尊卑, 特跪獻請嘗. 其東而西者皆艱度險嶺, 方其渴急時, 易爲食而食之甘; 西而東者仰見石路參天, 赫炎如焚, 皆憂甚, 必先食其一以滌熱, 又必取二三爲後地, 由其路者, 必傳爲勝事. 於是其傳益廣, 而人皆悅其人. -李起浡, 西歸遺稿7, 梁四龍傳.

 

 

양사룡은 당위소당(當爲所當)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 았다. 재물과 지위는 고사하고 변변한 땅 한 뙈기조차 없었던 양사룡은 아내와 함께 묵정밭을 일구고 거기에 오이를 심었다. 오이를 심은 것은 무더운 여름날 험난한 고개를 넘느라 비지땀을 흘릴 행인들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고개를 힘겹게 넘어온 행인들은 찬 샘물에 시원해진 오이로 갈증을 풀었고, 고개를 넘어갈 행인들은 오이 한 개로 열기를 씻어내고 남은 길을 대비해 두어 개씩 챙겼다. 볼 때마다 기발한 생각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오이 나눔 대목이다. 서귀도 이 점이 특별했는지 오이 나눔 선행을 양사룡전에서 가장 많은 분량의 중심 서사로 기술하였다죽어가는 노모를 간절한 기도로 소생시키고 하늘에 보답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 165자 분량인데, 오이를 나누는 선행은 414자나 된다.. 서귀의 이러한 서사 구성은 양사룡전을 일반적인 효자전과 변별시키는 지점이다. 일반적인 효자전이었다면 이야기는 간절한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켜 어머니가 기적처럼 소생했다는 부분에서 마무리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사룡전은 양사룡의 효행을 기본적인 뼈대로 삼되 하늘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오이 나눔을 실천한 양사룡의 선행을 특기하고 있다. 그 결과 양사룡은 효행을 바탕으로 선행까지 실천한 인물이 된다. 그리고 효행과 선행을 가능하게 했던 정신, 당위소당(當爲所當)까지 결부시키면 양사룡전의 주제는 단순한 효행, 선행의 권면을 넘어 참된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의 차원으로 심화된다.

 

 

이기발의 진아(盡我)

 

이러한 문제의식은 입전자 서귀 이기발의 특징적 사유와 연결되는 바, 그것이 곧 진아(盡我)이다. 진아(盡我)에 대한 언급은 다음 글에서 보인다.

 

 

대저 더없이 미약한 사람으로서 더없이 높고 두터운 천지(天地)와 그 덕을 합치시키는 것은 성인이라도 어렵지 않겠는가?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사시(四時)를 차례대로 따르게 하고 음양을 법도대로 조절하는 것은 훌륭한 재상이라도 어렵지 않겠는가? 방촌(方寸)의 정성으로 창창한 구만리 하늘을 감동시키는 것은 효자라도 어렵지 않겠는가? 일시의 절개로 만고의 강상(綱常)을 부지하는 것은 의로운 선비라도 어렵지 않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이것들이 모두 나에게 있어 내가 진실로 내게 있는 것을 다 한다면 나는 반드시 그 어려움을 어렵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 가운데 공자가 계시고, 훌륭한 재상 가운데 주공(周公)이 계시고, 훌륭한 장군 가운데 방숙(方叔)이 있고, 효자 가운데 증삼(曾參)이 있고, 의사(義士) 가운데 백이(伯夷)가 있으니 이 분들은 모두 나를 다한[盡我]’ 분들이다. (중략)비록 그러하나 세상에는 또한 나 아닌 것이 있으니 나 아닌 것은 남이다. 무릇 덕(), (), (), ()은 진실로 내게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자께서는 그것을 다하여 공자가 되실 수 있었고, 주공과 방숙은 그것을 다하여 주공과 방숙이 될 수 있었고, 증삼과 백이는 그것을 다하여 증삼과 백이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저 이른바 때[]라는 것은 남에게 있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끝내 지위를 얻지 못하셨고, (중략)백이는 말고삐를 부여잡고 한 간언을 이룰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내게 있는 것은 비록 아주 어렵더라도 능한 자는 어렵다 여기지 않고, 남에게 있는 것은 비록 아주 쉽더라도 성인도 끝내 쉽게 할 수 없다. 그러니 평범한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내게 있는 것을 다하지 않고서 남에게 먼저 구하는 것, 이는 우리의 공통된 걱정거리 아닌가?

夫以莫微之人身也, 而能與莫高厚之天地合其德, 爲聖人不其難矣乎. 居宰輔之位而能使四時順其序, 陰陽調其度, 爲良相不其難矣乎? 方寸之誠, 能動九萬之蒼蒼, 爲孝子不其難矣乎? 一時之節能扶萬古之綱常, 爲義士不其難矣乎? 雖然, 是皆在我, 我苟盡在我, 我未必不易其難. 是故, 聖人有孔子, 良相有周公, 良將有方叔, 孝子有曾參, 義士有伯夷, 是皆盡我者也. (中略)雖然, 世亦有不我者, 不我, 人也. 夫德也才也誠也節也, 是固在我者, 故孔子能盡之而爲孔子, 周公·方叔能盡之而爲周公·方叔, 曾參·伯夷能盡之而爲曾參·伯夷. 若夫所謂時也者, 在人非在我, 故孔子終於不得位 (中略)伯夷不能遂叩馬之諫. 是故, 在我者雖甚難, 能者不以爲難; 在人者雖甚易, 聖人亦終不能易之. 况凡人乎? 不盡其在我者, 而先求諸人, 此豈非吾人所通患者乎? -李起浡, 西歸遺藁5, 與松京留守李令書.

 

 

인용문은 이기발이 개성유수 이시만(李時萬)에게 보낸 편지글의 일부이다. 이 글의 핵심 사유는 나와 남, 내 것과 남의 것 가운데 과연 무엇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서귀는 공자(孔子), 주공(周公), 방숙(方叔), 증삼(曾參), 백이(伯夷)를 열거하면서 이들이 성인으로, 훌륭한 재상으로, 명장으로, 효자로, 의로운 선비로 남게 된 것은 이들이 모두 진아(盡我)했기 때문이라 보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진아(盡我)는 남의 것을 좇지 않고 내게 있는 고유한 가치, 즉 공자에겐 덕(), 주공ㆍ방숙에겐 재(), 증삼에겐 성(), 백이에겐 절()이라는 가치를 모두 구현했다는 의미이다. 한편 서귀는 내 것이 아닌 남의 것도 있다면서 때[]를 예시하였다. 라는 것은 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남 보기에는 대단히 쉬운 것도 바로 남의 것이기 때문에 에게는 어려운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들도 이루지 못한 바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같은 범인(凡人)이다. 성현들이야 이루지 못한 바가 있을지언정 남의 것을 구하지는 않는데, 범상한 사람들은 제 것도 다 하지 않으면서 남의 것을 먼저 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남의 것은 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에 구애되지 말고, 오히려 에게 있고 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귀의 이러한 인식은 그의 시문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대명의리 때문에 평생 은거를 단행했던 서귀였기 때문에 그는 절 의의 실현 방식을 백이숙제와 견주곤 하였는데, “백이숙제 아사(餓死)는 내 분수가 아니요, 도연명의 귀거래가 내 본심에 꼭 맞았네[夷齊餓死非吾分, 靖節歸來得本心 -李起浡, 西歸遺稿4, 偶吟眎諸生]”, “정신없이 바쁜 행색 모두 생계 때문이니, 백이숙제 대현(大賢)임을 비로소 알겠노라[奔忙行色皆糊口, 始識夷齊是大賢 -李起浡, 西歸遺稿4, 秋夜雨中歸來有感]”, “백이숙제 아니니 곡기는 못 끊겠고, 풍년들어 술잔에 술이나 그득했으면[不作夷齊難却食, 年豐願得酒盈杯 -李起浡, 西歸遺稿4, 立春]”과 같은 시구를 보면 어설피 남의 것을 구하기보다는 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노라는 진아(盡我)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서귀의 진아(盡我)는 이런 점에서 양사룡의 당위소당(當爲所當)과 긴밀하게 조응된다. 천민이었던 양사룡에게 남을 이롭게 할 재물이나 지위는 에게 없는 남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양사룡은 남의 것을 구하려 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내 것을 구하였다. 그렇게 구한 것이 묵정밭을 일구어 오이를 나눈 선행이었다. , 오이 나눔이 곧 양사룡의 진아(盡我)였던 것이다. 이렇듯 양사룡의 당위소당(當爲所當)과 이기발의 진아(盡我)는 긴밀하게 조응하며 양사룡전의 핵심 사유로 기능하고 있다.

 

 

 

 

인용

목차 / 원문

. 머리말

. 양사룡전의 저자와 서사 구성

. 양사룡의 당위소당(當爲所當)과 이기발의 진아(盡我)

. 인성교육 자료의 측면에서 본 양사룡전의 특징

. 맺음말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