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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 - 설문해자서說文解字序 본문

산문놀이터/중국

허신 - 설문해자서說文解字序

건방진방랑자 2019. 5. 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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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文解字序

 

글자의 탄생과 역할

古者 庖犧氏之王天下也 仰則觀象於天 俯則觀法於地 視鳥獸之文 與地之宜 近取諸身 遠取諸物 於是 始作易八卦 以垂憲象 及神農氏結繩爲治而統其事 庶業其繁 飾僞萌生 黃帝之史倉頡 見鳥獸蹏迒之迹 知分理之可相別異也 初造書契 百工以乂 萬品以察 蓋取諸夬 夬揚于王庭 言文者 宣敎明化於王者朝廷 君子所以施祿及下 居德則忌也

 

倉頡之初作書也 蓋依類象形 故謂之文 其後形聲相益 卽謂之字 字者 言孶乳而寖多也 著於竹帛 謂之書 書者如也

 

六書

以迄五帝三王之世 改易殊體 封于泰山者七十有二代 靡有同焉 周禮 八歲入小學 保氏敎國子 先以六書

一曰指事 指事者 視而可識 察而見意 上下是也

二曰象形 象形者 畫成其物 隨體詰屈 日月是也

三曰形聲 形聲者 以事爲名 取譬相成 江河是也

四曰會意 會意者 比類合誼 以見指撝 武信是也

五曰轉注 轉注者 建類一首 同意相受 考老是也

六曰假借 假借者 本無其字 依聲託事 令長是也

 

춘추전국까지의 문자 변화

及宣王太史籒 著大篆十五篇 與古文或異 至孔子書六經 左丘明述春秋傳 皆以古文 厥意可得而說 其後諸侯力政 不統於王 惡禮樂之害己 而皆去其典籍 分爲七國 田疇異畝 車涂異軌 律令異法 衣冠異制 言語異聲 文字異形

 

진나라에 등장한 隸書

秦始皇帝初兼天下 丞相李斯乃奏同之 罷其不與秦文合者 斯作倉頡篇 中車府令趙高作爰歷篇 太史令胡毋敬作博學篇 皆取史籒大篆 或頗省改 所謂小篆者也 是時 秦燒滅經書 滌除舊典 大發隸卒興役戍 官獄職務繁 初有隸書 以趣約易 而古文由此 絶矣 自爾秦書有八體 一曰大篆 二曰小篆 三曰刻符 四曰蟲書 五曰摹印 六曰署書 七曰殳書 八曰隸書

 

楷書의 등장과 한나라 관리임용체계

漢興有草書 尉律學僮十七已上始試 諷籒書九千字 乃得爲吏 又以八體試之 郡移太史幷課 最者以爲尙書史 書或不正 輒擧劾之

 

한나라 이후의 문자정책

今雖有尉律 不課 小學不修 莫達其說久矣 孝宣時 召通倉頡讀者 張敞從受之 涼州刺史杜業 沛人爰禮 講學大夫秦近 亦能言之 孝平時 徵禮等百餘人 令說文字未央廷中 以禮爲小學元士 黃門侍郞楊雄 采以作訓纂篇 凡倉頡已下十四篇 凡五千三百四十字 羣書所載 略存之矣 及亡新居攝 使大司空甄豐等校文書之部 自以爲應制作 頗改定古文 時有六書 一曰古文 孔子壁中書也 二曰奇字 卽古文而異者也 三曰篆書 卽小篆 秦始皇帝使下杜人程之所作也 四曰左書 卽秦隸書 五曰繆篆 所以摹印也 六曰鳥蟲書 所以書幡信也 壁中書者 魯恭王壞孔子宅 而得禮記尙書春秋論語孝經 又北平侯張倉獻春秋左氏傳 郡國亦往往於山川得鼎彝 其銘卽前代之古文 皆自相似 雖叵復見遠流 其詳可得略說也

 

지금 학자들의 벽중서 비판과 짧은 식견

而世人大共非訾 以爲好奇者也 故詭更正文 鄕壁虛造不可知之書 變亂常行 以燿於世 諸生競說字解經誼 稱秦之隸書爲倉頡時書 云父子相傳 何得改易 乃猥曰 馬頭人爲長 人持十爲斗 虫者 屈中也 廷尉說律 至以字斷法 苛人受錢 苛之字止句也 若此者甚衆 皆不合孔氏古文 謬於史籒 俗儒啚夫 翫其所習 蔽所希聞 不見通學 未嘗覩字例之條 怪舊埶而善野言 以其所知爲祕妙 究洞聖人之微恉 又見倉頡篇中幼子承詔 因號古帝之所作也 其辭有神t僊之術焉 其迷誤不諭 豈不悖哉

 

견강부회나 편견에 따라 써서는 안 된다

書曰 予欲觀古人之象 言必遵修舊文而不穿鑿 孔子曰 吾猶及史之闕文 今亡矣夫 蓋非其不知而不問 人用己私 是非無正 巧說衺辭 使天下學者疑 蓋文字者 經藝之本 王政之始 前人所以垂後 後人所以識古 故曰 本立而道生 知天下之至嘖而不可亂也

 

설문해자의 편집방향

今敘篆文 合以古籒 博采通人 至于小大 信而有證 稽譔其說 將以理羣類 解謬誤 曉學者 達神恉 分別部居 不相雜廁也 萬物咸覩 靡不兼載 厥誼不昭 爰明以諭 其偁易孟氏書孔氏詩毛氏禮周官春秋左氏論語孝經皆古文也 其於所不知 蓋闕如也

 

 

해석

 

글자의 탄생과 역할

 

古者 庖犧氏之王天下也 仰則觀象於天 俯則觀法於地

옛날 포희(伏羲)씨가 천하의 왕이 되었을 때, 우러러 하늘에서 꼴을 관찰하고, 굽어 땅에서 모형을 보며,

 

視鳥獸之文 與地之宜 近取諸身

새와 짐승의 文樣과 땅의 마땅함(地勢)을 보아,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遠取諸物 於是 始作易八卦 以垂憲象

멀리는 사물에서 취하여, 이에서 비로소 周易의 팔괘를 만들어서 법 된 꼴(형상)을 남기었다.

 

及神農氏結繩爲治而統其事 庶業其繁 飾僞萌生

신농씨에 이르러 결승(끈 매듭)을 도구로 다스리고 그 일들을 통솔하였으나 많은 일들이 매우 번잡해지며 꾸밈과 거짓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黃帝之史倉頡 見鳥獸蹏迒之迹

황제의 사관 창힐이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知分理之可相別異也 初造書契

나뉘어진 무늬()로 서로 구별되어질 수 있음을 알고 처음으로 書契(서계, 符號글자)를 만들었다.

 

百工以乂 萬品以察

백관이 그것으로 다스리고 만물이 그것으로 살펴졌다.

 

蓋取諸夬 夬揚于王庭

대체로 주역 쾌의 괘에서 그것을 취하였는데, “(澤天)는 왕정에서 펼친다.”하니

 

言文者 宣敎明化於王者朝廷

문자란 왕의 조정에서 가르침을 펼치고 교화를 밝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君子所以施祿及下 居德則忌也

군자는 그것으로 아랫사람에게까지 녹을 베풀고, 덕을 쌓으니 곧 경계할 바를 밝힘이다.

 

 

 

 

倉頡之初作書也 蓋依類象形 故謂之文

창힐이 처음 문자를 만듦에 대개 무리에 의거하여 모양을 본떴으니 때문에 ()’이라 일컫고,

 

其後形聲相益 卽謂之字

이후 모양과 소리가 서로 더하여졌으니, ()’라 일컫는다.

 

字者 言孶乳而寖多也

라는 것은 낳아 길러서(불어남) 점차로 많아진 것을 말하며,

 

著於竹帛 謂之書 書者如也

대나무나 비단에 나타냄을 ()’라 말하는데, ‘라는 것은 그와 같이 써 나타냄이다.

 

 

 

六書

 

以迄五帝三王之世 改易殊體

오제와 삼왕의 시대에 이르러 고치고 바꾸어 형체를 달리하였으며,

 

封于泰山者七十有二代 靡有同焉

태산에서 봉선(天子 , 天子가 흙으로 을 만들어 하늘과 산천에 신고하고 제사 지내던 일)한 것이 72대였으나 같음이 있지 아니하였다.

 

周禮 八歲入小學 保氏敎國子 先以六書

周禮여덟 살에 소학에 들어가는데, 관리 씨가 제후의 자제들을 가르침에 먼저 육서로 한다.”하였고,

 

一曰指事 指事者 視而可識 察而見意 上下是也

, 첫째가 지사이다. 지사란 보아서 앎직하고 살펴서 그 뜻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가 그것이요.

 

二曰象形 象形者 畫成其物

둘째가 상형이다. 상형이란 그려서 그 사물을 이루는 것으로

 

隨體詰屈 日月是也

형체를 따라 구불구불하게(佶屈) 되며, 이 그것이요.

 

三曰形聲 形聲者 以事爲名

셋째가 형성이다. 형성이란 사물로써 이름을 삼고(意部)

 

取譬相成 江河是也

비유를 취하여 서로 이루는 것(음이 비슷한 글자로 聲部를 삼아 조합)으로 가 그것이요.

 

四曰會意 會意者 比類合誼

넷째가 회의이다. 회의라는 것은 비슷한 것을 견주어 뜻을 합하여

 

以見指撝 武信是也

가리키는 바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 그것이요.

 

五曰轉注 轉注者 建類一首

다섯째가 전주이다. 전주란 비슷한 것을 세워 한 부수를 이루고

 

同意相受 考老是也

같은 뜻을 서로 받는 것으로 가 그것이요.

 

六曰假借 假借者 本無其字

여섯째가 가차이다. 가차란 본래 그 글자가 없어

 

依聲託事 令長是也

소리에 의거하여 일(의미)을 기탁하는 것으로 이 그것이다.

 

 

 

춘추전국까지의 문자 변화

 

及宣王太史籒 著大篆十五篇

주나라 선왕 때에 이르러 태사 주가 大篆 십오 편을 지었는데,

 

與古文或異

고문과 더불어 혹 다른 점이 있었다.

 

至孔子書六經 左丘明述春秋傳

孔子六經을 쓰고 좌구명이 春秋傳을 지을 때에 이르기까지는

 

皆以古文 厥意可得而說

모두 고문으로 하였으니 그 뜻을 설명할 수 있었다.

 

其後諸侯力政 不統於王

그 뒤에 제후들이 힘써 정벌하며 왕에게 통치를 받지 않았고,

 

惡禮樂之害己

예악이 자신들의 행동에 방해되는 것을 싫어하였다.

 

而皆去其典籍

그리하여 모두 그 전적을 폐기하였다.

 

分爲七國 田疇異畝 車涂異軌

나뉘어 7국이 됨에 밭은 크기가 다르고, 차도는 너비가 다르며,

 

律令異法 衣冠異制

법률제도는 규정이 다르고, 의관은 제도가 다르며,

 

言語異聲 文字異形

언어는 소리가 다르고, 문자는 모양이 달랐다.

 

 

 

진나라에 등장한 隸書

 

秦始皇帝初兼天下 丞相李斯乃奏同之

진시황이 처음으로 천하를 통일하자 승상 이사가 곧 통일할 것을 상주하여,

 

罷其不與秦文合者

그 진나라 문자와 합치하지 않는 것을 버리었다.

 

斯作倉頡篇 中車府令趙高作爰歷篇

이사는 창힐편을 지었고, 중거부령 조고는 원력편을 지었으며,

 

太史令胡毋敬作博學篇 皆取史籒大篆

태사령 호무경은 박학편을 지었는데, 모두 태사 주의 大篆을 취하여

 

或頗省改 所謂小篆者也

혹 자못 덜고 고쳤으니 이른바 小篆이라는 것이다.

 

是時 秦燒滅經書 滌除舊典

이때 왕조는 경서를 불태워 없애고 옛 전적을 폐기하며(挾書律, 焚書坑儒),

 

大發隸卒興役戍

크게 대량으로 노예나 사졸을 징발하여 노역을 일으키고 변방 수자리 세움에,

 

官獄職務繁 初有隸書

관부나 감옥은 직무가 번거로워져 처음으로 예서가 생겼고,

 

以趣約易 而古文由此 絶矣

그것으로써 간략 편이케 하는 경향이 생기니 그리하여 고문은 이로부터 끊겨버렸다.

 

自爾秦書有八體

이로부터 의 문자에는 여덟 가지 자체가 있었으니,

 

一曰大篆 二曰小篆 三曰刻符 四曰蟲書

첫째가 대전이요, 둘째는 소전이며, 셋째는 각부, 넷째는 충서,

 

五曰摹印 六曰署書 七曰殳書 八曰隸書

다섯째는 모인, 여섯째는 서서, 일곱째는 수서, 여덟째는 예서이다.

 

 

 

楷書의 등장과 한나라 관리임용체계

 

漢興有草書

나라가 일어나서 艸書가 생기었다.

 

尉律學僮十七已上始試

廷尉律令에 학생이 17세가 넘으면 시험을 보기 시작하였는데,

 

諷籒書九千字 乃得爲吏

籒書 9千字를 다 욀 수 있어야 관리가 될 수 있었다.

 

又以八體試之 郡移太史幷課

8가지 글씨체를 시험하였는데, 고을에서 太史에게 보내 과제와 함께 시험(會試)하게 하여

 

最者以爲尙書史 書或不正 輒擧劾之

최고 득점자를 尙書史로 삼았으며 혹 글씨가 바르지 못하면 쉽게 탄핵하였다.

 

 

 

한나라 이후의 문자정책

 

今雖有尉律 不課

지금은 비록 법령이 있지만 시험은 보지 않고

 

小學不修 莫達其說久矣

小學(文字)을 배우지도 않으니 그 通解하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다.

 

孝宣時 召通倉頡讀者 張敞從受之

孝宣帝 때에는 倉頡篇讀解에 통달한 자를 불러 張敞이 그에 응하였는데,

 

涼州刺史杜業 沛人爰禮 講學大夫秦近 亦能言之

涼州刺史 杜業󰔐 沛人 爰禮, 講學大夫 秦近 등도 능히 말할 수 있었다.

 

孝平時 徵禮等百餘人

孝平帝 때에는 徵禮 100여 인을 불러

 

令說文字未央廷中 以禮爲小學元士

未央宮 뜰에서 文字를 설명토록 하여 徵禮小學元士로 삼았다.

 

黃門侍郞楊雄 采以作訓纂篇

黃門侍郞 揚雄(BC 53~AD 18)이 그것을 採錄하여 訓纂篇이라는 책을 지었는데,

 

凡倉頡已下十四篇 凡五千三百四十字 羣書所載 略存之矣

무릇 倉頡篇 이하 14의 글자들은 모두 5340, 羣書에 실린 것들이 대략 이에 잔존해 있었다.

 

及亡新居攝 使大司空甄豐等校文書之部

나라 王莽攝政 시기에 이르러, 大司空 甄豊 등을 시켜 文書의 일부를 교정하게 하였는데,

 

自以爲應制作 頗改定古文

王莽은 황명에 부응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스스로 여기고 古文을 자못 고치었다.

 

時有六書 一曰古文 孔子壁中書也

당시에는 6가지의 글씨체가 있었는데, 첫째가 古文으로 孔子에서 나온 書體이고,

 

二曰奇字 卽古文而異者也 三曰篆書 卽小篆

둘째가 奇字古文이면서도 좀 다른 것이고, 셋째가 篆書小篆을 말하는 것인데,

 

秦始皇帝使下杜人程之所作也

秦始皇帝(政嬴, BC 259 ~ BC 210)下杜 사람인 獄吏 程邈을 시켜 지은 것이고,

 

四曰左書 卽秦隸書

넷째가 左書隸書를 말하는 것이고,

 

五曰繆篆 所以摹印也

다섯째가 繆篆(무전)으로 인장을 모각할 때 사용하던 자체이고,

 

六曰鳥蟲書 所以書幡信也

여섯째가 鳥蟲書로 깃발과 부절에 쓰던 자체였다.

 

壁中書者 魯恭王壞孔子宅 而得禮記尙書春秋論語孝經

壁中書(古文, 蝌蚪文字)라는 것은 나라 恭王(魯 恭王에 봉해진 前漢 景帝의 아들 劉餘)孔子의 옛집을 허물어 발견한 것으로 禮記󰔐尙書󰔐春秋󰔐論語󰔐孝經書體를 말하는 것인데,

 

又北平侯張倉獻春秋左氏傳

北平侯 張倉이 헌납한 春秋左氏傳도 이에 포함된다.

 

郡國亦往往於山川得鼎彝

또 여러 나라의 山川에서 종종 발견된

 

其銘卽前代之古文 皆自相似

새겨진 자체도 前代古文으로 모두 서로 비슷하다.

 

雖叵復見遠流 其詳可得略說也

비록 문자의 먼 흐름을 다시 볼 수는 없지만 그 상세함은 대략 설명할 수 있었다.

 

 

 

지금 학자들의 벽중서 비판과 짧은 식견

 

而世人大共非訾 以爲好奇者也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크게 모두 비방하여 여기기를, 壁中書는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故詭更正文 鄕壁虛造不可知之書

고의로 바른 글자를 속여서 고쳐 孔子의 시골 집 벽에 집어넣어둔 것으로, 허위로 조작된 것이니 믿을 수 있는 書體로 볼 수 없다하며

 

變亂常行 以燿於世

혼란이 계속되어서 세상에 드러났었다.

 

諸生競說字解經誼 稱秦之隸書爲倉頡時書

뭇 서생들은 다투어 글자를 말하고 경전의 뜻을 해석하며 진나라의 隸書倉頡의 서체라 일컫고,

 

云父子相傳 何得改易

아비가 아들에게 서로 전하며 어찌 능히 고치고 바꿀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였다.

 

乃猥曰 馬頭人爲長

마침내는 함부로 말하기를, “말머리의 이라 하고,

 

人持十爲斗 虫者 屈中也

사람이 을 가짐을 라 하며, 을 구부린 글자다.”라고도 하였다.

 

廷尉說律 至以字斷法

廷尉法律을 집행할 때 글자의 모양을 가지고 법을 판단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苛人受錢 苛之字止句也

사람을 가혹하게 하여 돈을 받아내다자를 가 합쳐진 글자로 해석하여 구속을 그치게 해주는 사람이 돈을 받다.’로 잘못 해석하였다.

 

若此者甚衆 皆不合孔氏古文 謬於史籒

이와 같이 제멋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모두 孔氏古文을 모르기 때문이고 史籒籒文(大篆)에도 어긋난다.

 

俗儒啚夫 翫其所習

세속의 선비와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들이 익힌 바에만 익숙하고

 

蔽所希聞 不見通學

드물게 들은 바를 덮어 통달한 학문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未嘗覩字例之條

육서 글자의 범례 조목을 일찍이 목격한 바 없어서,

 

怪舊埶而善野言 以其所知爲祕妙

옛 문예를 이상하다 하고 野言만을 좋아하여, 자신들이 알고 있는 바는 신비 오묘하여

 

究洞聖人之微恉

성인의 정미한 뜻을 궁구 통찰한 것이라 간주하였다.

 

又見倉頡篇中幼子承詔

李斯가 지은 倉頡篇幼子承詔(幼子가 조서를 받든다.)’라는 구절을 보고

 

因號古帝之所作也 其辭有神t僊之術焉

黃帝가 지은 바로 그 말에 신선의 이 있다.’라고 하고 있으니,

 

其迷誤不諭 豈不悖哉

그 잘못된 오류를 깨닫지 못한 것으로 어찌 도리에 어그러짐이 아니런가.

 

 

 

견강부회나 편견에 따라 써서는 안 된다

 

書曰 予欲觀古人之象

尙書(書經)에 이르기를 "나는 고인의 사물 모양을 보고 싶다"하니,

 

言必遵修舊文而不穿鑿

이는 반드시 고대 문자 전통에 의거하여 연구해야지 견강부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孔子曰 吾猶及史之闕文 今亡矣夫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그래도 역사기록에 빠진 글을 보았는데, 지금은 없도다!" 하였다.

 

蓋非其不知而不問

(이는) 대체로 그들이 알지 못하면서도 묻지 않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人用己私 是非無正

사람들이 자신의 방법만을 쓰니 是非가 바로 되지 않고

 

巧說衺辭 使天下學者疑

교묘한 설과 사특한 말들은 세상의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혹스럽게 한다.

 

蓋文字者 經藝之本 王政之始 前人所以垂後

무릇 文字란 경서와 예술의 근본이며 왕정의 시작이요, 前人이 그것으로써 후대에 전하고,

 

後人所以識古

후인은 그것으로 옛 것을 알게 하는 바이다.

 

故曰 本立而道生

그러므로 이르기를 근본이 세워져야 도가 생기며,

 

知天下之至嘖而不可亂也

천하의 깊은 이치를 알아야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설문해자의 편집방향

 

今敘篆文 合以古籒 博采通人

이제 小篆을 기술하는데 고문과 주문으로 합해 통달한 사람들의 것을 널리 채집하여

 

至于小大 信而有證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믿음직하고 증거가 있으면

 

稽譔其說 將以理羣類 解謬誤

그 설들을 헤아리고 기려서, 뭇 부류를 이치에 따라 나누고 오류를 풀어

 

曉學者 達神恉

배우는 이를 깨우쳐 신묘한 뜻을 통하게 하였고,

 

分別部居 不相雜廁也

부수 부분을 나누고 정리하여 서로 섞이지 않게 하였다.

 

萬物咸覩 靡不兼載

만물을 모두 보여 겸하여 싣지 않음이 없으며,

 

厥誼不昭 爰明以諭

(글자의) 뜻이 분명하지 않으면 인용하여 밝히었다.

 

其偁易孟氏書孔氏詩毛氏禮周官春秋左氏論語孝經皆古文也

그 인용한 바 주역은 맹씨(孟喜), 상서는 공씨(孔安國), 시경은 모씨(毛亨), 예기는 주관(周禮), 춘추는 좌씨본이고, 논어, 효경은 모두가 다 고문이다.

 

其於所不知 蓋闕如也

그 알지 못하는 바에 대해서는 비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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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0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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