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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한글역주, 등문공장구 하 - 2. 대장부(大丈夫)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등문공장구 하 - 2. 대장부(大丈夫)

건방진방랑자 2022. 12. 16.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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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장부(大丈夫)

 

 

3b-2. 당시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던 종횡가(縱橫家) 중에 경춘(景春)한서』 「예문지병형세십일가(兵形勢十一家) 중에 경자(景子)713이 수록되어 있는데 경자는 맹자의 경춘과 동일인물로서 학계에서 비정하고 있다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등 나라에 왔을 때, 맹자를 뵙고 말하였다: “공손연(公孫衍)과 장의(張儀)장의(張儀)는 연횡의 대가, 소진(蘇秦)은 합종의 대가. 이 두 사람은 다같이 귀곡선생(鬼谷先生)의 동문으로서 종횡가의 쌍벽을 이루는 거두라는 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경춘은 왜 이 두 사람을 이야기하지 않고 공손연과 장의를 이야기했을까? 실제로 소진은 장의의 적수가 아니었다. 장의의 진정한 라이벌은 공손연이었던 것이다. 공손연은 위나라 음진(陰晋, 현재 섬서성 화음華陰)의 사람으로서 성이 공손이고 명이 연()이며 통칭 서수(犀首)라고 부르는데, 그가 위나라에서 서수라는 벼슬을 했기 때문에 그것이 그의 호()가 된 것이다. 그는 일찍이 진()에 유세하여 혜왕(惠王)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혜왕 5(BC 333)에는 대량조(大良造, 20등작 중에서 16급 작위)가 되어 위()를 공격하여 위장 용가(龍賈)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사자로서 제나라, 위나라를 설득ㆍ기만하여 소진이 쌓아올린 합종책을 붕괴시켰다. BC 328, 장의(張儀)가 진나라의 재상이 되자 서수는 위나라에 돌아와 장군에 임명되었다. BC 323년에는 서수는 위()ㆍ한()ㆍ조()ㆍ연()ㆍ중산(中山)5개국을 합종시켜 진()에 대항하였다. 이듬해 장의가 위나라의 재상이 되어 진()ㆍ위()의 동맹의 계책을 실행하자, 서수는 한()나라로 도망하여 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BC 319, 합종의 제국들은 역시 서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하여 서수를 위나라의 재상으로 복귀시킨다. 서수는 5개국의 연합재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위ㆍ조ㆍ한ㆍ연ㆍ초의 5국연합군이 진나라를 쳤으나 함곡관에서 대패한다. BC 314, ()의 저리자(樗里子)가 위를 공격하여 곡옥(曲沃)을 빼앗자, 장군 서수는 패주한다. 그러나 장의가 죽은 후에는 서수는 또 진나라로 가서 재상이 되었다. 공손연이 가장 크게 활약한 시기가 바로 맹자가 양나라에 있을 그때였다. 공손연이 5개국의 연합재상이 되고 장의가 양혜왕에 의하여 해임되는 과정을 맹자는 곁에서 다 지켜보았다. 맹자가 양나라를 떠나던 해에 공손연은 함곡관에서 대패했던 것이다. 따라서 여기 경춘은 이런 사정을 알고 공손연과 장의를 언급한 것이다 정도라면, 어찌 진실로 천하에 둘도 없는 대장부라 아니 할 수 있겠소이까?. 그들이 한번 진노하면 전운이 감돌아 열국의 제후들이 벌벌 떨고, 그들이 안거(安居)하면 비로소 천하가 평온해집니다. 천하를 들었다 놓았다 하니 어찌 대장부라 아니 할 수 있겠소이까?”
3b-2. 景春曰: “公孫衍張儀豈不誠大丈夫哉? 一怒而諸侯懼, 安居而天下熄.”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어찌 그따위 일을 가지고 대장부를 운운하시오? 그대는 예를 배우지 않았소이까? ()에 의하면, 장부(丈夫)20세가 되면 관례(冠禮)를 올리는데 그 때는 아버지가 성인 되는 마음가짐을 가르치고, 여자는 시집갈 때 비로소 여자 됨의 마음가짐을 그 어미가 가르치오, 딸이 가마를 타고 나설 때 문밖에까지 나와서 간곡히 타이르는 말이 지금부터는 네가 가는 곳이 너의 집이란다. 반드시 공경하는 마음으로 항상 경계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남편의 말에 거스르면 안되느니라라고 하지요. 타인에게 순종하는 것만이 바른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곧 부녀자의 도이며 장부의 도가 아니 올시다. 공손연이든 장의든 세상을 벌벌 떨게 만드는 것 같지만 그들 은 실제로 군주들에게 순종하여 그들의 환심을 얻음으로써 자신의 권세와 이익만을 챙기는 자들에 불과하오. 기껏해야 부녀자들의 도에 머무르는 수준의 인간들이라오.
孟子曰: “是焉得爲大丈夫乎? 子未學禮乎? 丈夫之冠也, 父命之; 女子之嫁也, 母命之, 往送之門, 戒之曰: 往之女家, 必敬必戒, 無違夫子! 以順爲正者, 妾婦之道也.
 
천하의 광거(廣居)에 거()하며, 천하의 정위(正位)에 입()하며, 천하의 대도(大道)를 행()하노라! 뜻을 얻으면 만천하의 백성들과 더불어 정도(正道)를 실천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라도 그 정도를 실천하라! 부귀가 그를 타락시킬 수 없고, 빈천이 그를 비굴하게 만들지 못하며, 위무(威武)가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노라!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비로소 대장부(大丈夫)라 하는 것이외다.”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與民由之, 不得志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내 어릴 때만 해도 대한민국의 뜻있는 젊은이라면 이 맹자의 대장부 구절을 외우지 아니 하는 자가 없었다. 그만큼 이 구절은 포퓰라했다. 아마도 한국인의 기개(氣槪)를 형성시키는 데 이 맹자의 구절처럼 큰 공헌을 한 교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맹자의 대장부론이 당대의 종횡가들의 삶의 철학과 대비적인 맥락에서 나왔다는 깊은 의미를 새기는 자는 드문 것 같다.

 

우선 맹자의 대장부라는 말의 기본 단어는 장부(丈夫)’이며 ()’는 장부에 대한 형용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장부여자(女子)’와 대비되는 용어이다.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맹자의 언어를 비판할지 모르겠지만 당대의 가족구조와 생존현황 속에서 이 대비는 너무도 지당한 것이다. 즉 여자, 즉 첩부의 도[妾婦之道]순종을 도리로 삼는다는 것이다. 즉 독자적인 실존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종속됨으로써만 그 가치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부여자와는 달리 자신의 독자적 실존영역을, 즉 단독자로서라도 삶의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진 자이어야 한다. 이 장부의 형용사로서의 ()’와 대비되는 용법도 앞에 이미 나왔다. ‘소장부(小丈夫)’천장부(賤丈夫)’니 하는 말이 앞에서 언급되었다(2b-10, 2b-12). 대장부는 천장부, 소장부에 대비되는 말이다.

 

여기 언급된 공손연과 장의는 당시 지식사회에서는 이른바 최고로 출 세한 권세가들이었다. 그러나 맹자는 이들을 군주에 기생하고 아부하 는 처첩으로밖에는 보지 않는다. 그들이 합종연횡을 운운하지만 그 것도 그들의 철학이 아니라 처세방편에 불과하다. 합종이든 연횡이든 시국상황과 군주의 처지에 따라 마구 가변적인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도덕성이라는 것은 의미 없는 단어였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제 아무리 부자나 권력자라 할지라도 청와대에서 국세청만 한번 뜨게 만들어도, 안기부에서 뒷조사하게 만들어도 벌벌 떨지 않을 자가 없다. 이들은 남편이 호통치면 벌벌 떨어야 하는 처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장부는 반드시 천하의 광거에 거하고, 천하의 정위에 입하며, 천하의 대도를 행하는 자이어야 한다. 여기 맹자의 일관된 가치체계는 공변성(public-mindedness)과 공개성(openness)과 독자성(autonomy)이며, 좁은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는 천하성(universality)이다. 부귀도 그를 음()하게 만들 수 없고, 빈천도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위무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다.

 

맹자 사상의 가장 핵심적 근간은 바로 최후의 구절에 있다. 여기서 위무(威武)’라는 것은 국가권력(the authority of a state)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크게 부닥치는 위무는 개인적 위무가 아니라 국가가 개인에게 부과하는 위무이다. 인혁당의 사람들이 당했을 박정희의 위무를 한번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무서운 위무였겠는가? 그러나 전국시대의 사상가들에게 이런 고통은 다반사였다. 손빈(孫臏)이라는 이름도 무릎관절 덮개를 빼어버리는 고문을 당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빈형臏刑은 슬개골을 도려내는 형벌).

 

맹자는 이러한 당대의 비극적 정황을 고려하면서도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국가의 권력을 뛰어넘는 자래야만 대장부라고 말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권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장부! 죽음으로써 천하의 광거, 천하의 정위, 천하의 대도를 지킬지언정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 사나이! 그 사나이의 진정한 용기는 실존 내면의 도덕성에서만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공자도 말했다. ‘신장(申棖)은 항상 욕심이 앞서는 사람이니 어찌 그를 강하다 하리오?’(5-10). 사사로운 욕망을 벗어나지 않는 한 인간은 진정한 용기를 발휘할 수 없다. 공자는 또 말한다: ‘삼군의 거대병력에 맞서 그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다. 그러나 초라한 필부에게서도 그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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