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문공장구(勝文公章句) 하(下)
1. 자기를 굽신거리며 남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이는 없다
3b-1. 맹자의 제자 진대(陳代)가 맹자가 등나라에만 쑤셔박혀 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져서 선생님의 심중을 떠보면서 말을 건넸다: “선생님께서 천하의 제후들로부터 초빙을 받아도 응하지 않고 그들을 만나지 않는 것은 소절에 구애되는 속좁은 행동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이제 그들을 활달하게 한번 만나보시기만 한다면, 크게는 왕업을 달성하실 수 있을 것이요, 작게는 패업을 달성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옛 기록에도 이런 말이 있지요: ‘단지 한 척을 굽혀서 여덟 척을 펴게 만들 수 있는 상황도 있다[枉尺而直尋].’ 선생님께서도 이렇게 한번 웅지를 펼치실 만합니다.” 3b-1. 陳代曰: “不見諸侯, 宜若小然; 今一見之, 大則以王, 小則以霸. 且志曰: ‘枉尺而直尋’, 宜若可爲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옛날에 제나라 경공(景公)【공자와 동시대인, 1b-4, 『논어(論語)』 18-3】이 들에 사냥을 나간 적이 있었다. 이때 그 지역 산림관리인을 장대 끝에 꿩깃털을 꼽은 정(旌)을 휘둘러서 열심히 불러댔는데, 그는 오질 않았다. 그러자 경공은 화가 나서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예로부터 전렵시에 사람을 부를 때는 법도가 있었다. 정(旌) 깃발로써는 대부(大夫)를 불렀고, 사(士)를 부를 때는 궁(弓)을 썼고, 산림관리인을 부를 때는 피관(皮冠)을 썼던 것이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 그 관리인을 칭찬하여 말하였다: ‘지사(志士)는 절조를 굳게 지키기에 그 시신 이 계곡에 뒹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사(勇士)는 의로움을 알기에 그 모가지가 달아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자께서 산림관리인의 무엇을 평가하셨기에 과연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 그 관리인이 정당한 부름이 아니면 죽음을 각오하고 그 부름에 나아가지 않은 것을 찬미하고 계신 것이다. 산림관리인조차 정당한 부름이 아니면 나아가지 않았는데, 요즈음 선비녀석들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지가 먼저 나서고 있는 이 꼬라쟁이가 도대체 뭔 짓거리들이냐? 한 척을 굽혀 여덟 척을 편다는 것은 결국 이(利)를 가지고서 말하는 것이다. 이(利)만에 집착하여 이야기한다면, 여덟 척을 굽혀 한 척을 펴도 이익이 되기만 한다면 그런 짓을 서슴치 않고 하겠다는 것인가? 孟子曰: “昔齊景公田, 招虞人以旌, 不至, 將殺之. ‘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孔子奚取焉? 取非其招不往也, 如不待其招而往, 何哉? 且夫枉尺而直尋者, 以利言也. 如以利, 則枉尋直尺而利, 亦可爲與? 옛날에 조간자(趙簡子)【진나라[晋國]의 경(卿)이었던 조앙(趙鞅). 성(姓)은 영(嬴). 간자(簡子)는 시호, 공자와 동시대인 재직기간, BC 517~458. 당시 진나라에는 한(韓)ㆍ위(魏)ㆍ조(趙)ㆍ범(范)ㆍ중항(中行)ㆍ지백(知伯) 6씨가 6경(六卿)으로 있었는데, 조앙은 범ㆍ중항 2씨를 멸망시키고 진 나라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후에 결국 삼진이 분립되고 전국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조간자는 공자의 라이벌이었던 양호(陽虎)를 보살펴 주었다. 또 명의(名醫) 편작(扁鵲)에게 진료받은 이야기는 유명하다】가 명어자(名御者)인 왕량(王良)【조간자의 수레몰이. 우무휼(郵無恤)이라는 이름으로 『좌전』 애공(哀公) 2년조에 나온다】으로 하여금 그의 총애하는 신하 해(奚)를 수레에 태우고 전렵을 나가게 하였다. 해(奚)는 하루종일 열심히 활을 쏘아댔으나 새 한 마리도 잡지못했다. 폐신(嬖臣) 해(奚)는 돌아와서 조간자에게 복명하였다: ‘왕량은 천하의 천공(賤工)이올시다.’ 昔者趙簡子使王良與嬖奚乘, 終日而不獲一禽. 嬖奚反命曰: ‘天下之賤工也.’ 어떤 사람이 이 말을 왕량(王良)에게 전했다. 왕량은 조간자에게 아뢰었다: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다시는 안 나가겠다는 해(奚)를 강권하여 겨우 허락을 받아냈다. 해는 사냥에 나가자마자 아침도 먹기 전에 새를 열 마리를 잡았다. 그러자 해가 조간자께 복명하여 말하였다: ‘왕량은 천하의 양공(良工)이올시다.’ 或以告王良. 良曰: ‘請復之.’彊而後可, 一朝而獲十禽. 嬖奚反命曰: ‘天下之良工也.’ 조간자가 말하였다: ‘왕량으로 하여금 너를 태우고 수레를 모는 것을 전담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왕량에게 이 말을 전했으나 왕량은 그 명을 거절했다. 그리고 말하였다: ‘제가 해(奚)를 위하여 모범적으로 법도에 맞게 수레를 달렸을 때는 그는 하루종일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런데 법도를 무시하고 사술을 써서 수레를 모니 일조에 열 마리를 잡았습니다. 시(詩)【】『시경』 소아 「거공(車攻)」)에도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위대한 사수는 수레몰이가 정도(正道)를 잃지 않고 모범적으로 몰 때 오히려 활을 떠나는 화살이 백발백중이다.’ 저는 소인배와 함께 수레를 타는 데 익숙해있질 못합니다. 사양하겠습니다.’ 簡子曰: ‘我使掌與女乘.’ 謂王良. 良不可, 曰: ‘吾爲之範我馳驅, 終日不獲一; 爲之詭遇, 一朝而獲十. 『詩』云: “不失其馳, 舍矢如破.” 我不貫與小人乘, 請辭.’ 수레몰이조차도 도가 없는 사수와 더불어 합승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그런 사수들과 합작하여 금수를 잡으매, 그것이 구릉(丘陵)처럼 쌓여도 그 짓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보고 나의 도를 굽혀 세속의 제후들을 따라가라니 그 무슨 해괴한 이야기인가? 그대가 말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자기를 굽혀서 남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있어본 적이 없다.” 御者且羞與射者比. 比而得禽獸, 雖若丘陵, 弗爲也. 如枉道而從彼, 何也? 且子過矣, 枉己者, 未有能直人者也.” |
맹자의 고지식한 성격을 잘 드러내는 명언이라 할 것이다. 등나라에 있던 맹자는 이미 세상맛을 볼 대로 보았고, 그토록 기대했던 제선왕조차도 그의 두루마기자락을 붙잡아주질 않았다. 이제 와서 또다시 섣 부른 왕도강설의 행각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맹자의 결의에 깊은 존경심을 표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나보고도 왜 그렇게 타협이 없는 삶을 사느냐고 핀잔하는 사람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맹자의 이 강변을 떠올린다. 이 세계는 도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 가혹하다. 다시 말해서 나의 생애를 걸고 도덕을 지킨다 한들 이 생애의 복지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타협은 불가하다. 공자의 말대로 모가지가 잘리고 시신이 처참하게 뒹군다 해도 살아있는 동안 타협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세계는 이렇게 타협을 모르는 의로운 사람들에 의하여 유지되어온 것이다. 아무리 타협으로 부귀를 누린다 한들 그것은 현세를 지배할 수는 있으나 결코 누적되는 역사의 가치가 될 수 없다. 오늘 여기서 부귀와 권세를 누리는 한국의 모든 장(長)님들이여! 맹자의 의협심을 배우라!
산림관리인 이야기는 『좌전』 소공(昭公) 20년 12월조에 나오고 있으며 5b-7에도 반복되고 있다. 이 장과 같은 주제가 「등문공」 하7고, 「만장」 하7에서도 펼쳐진다. 위정자 자신이 도덕적으로 정당치 못하면 정치는 행하여질 수 없다는 논의는 『논어(論語)』 12-17, 13-6, 13-13 등을 참고하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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