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선비가 무위도식하며 얻어먹어도 되는가?
3b-4. 맹자의 제자 팽갱(彭更)【팽갱은 관리였던 것 같다】이 날카로운 질문 을 던졌다. “선생님께서는 왕도를 강설하기 위하여 주유하실 때, 제후가 원하는 것은 결국 선생님 한 분뿐일 텐데, 선생님은 꼭 뒤에 수레를 수십승(數十乘), 그리고 따라 걸어가는 자 수백인(數百乘)이 수반 들게 하시고, 이 제후에서 저 제후에로 향응을 받으시며 다니시는 모습이 너무 분에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는지요?” 更問曰: “後車數十乘, 從者數百人, 以傳食於諸侯, 不以泰乎?”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물론 그 도(道)가 아니라면 한 소쿠리의 밥도 남에게서 얻어먹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정도를 행한다면 순임금이 천하를 요임금에게 받은 것도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그대는 정녕코 순임금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가?” 孟子曰: “非其道, 則一簞食不可受於人; 如其道, 則舜受堯之天下, 不以爲泰, 子以爲泰乎?” 팽갱은 말한다: “제가 어찌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단 지 저는 선비 된 사람이 별일도 하지 않으면서 얻어먹기만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曰: “否. 士無事而食, 不可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대가 당국자로서 인민들이 만든 제품들을 유통시키고, 각기 지역과 신분에 따라 일들을 분담시킴으로써, 남은 것으로써 모자라는 것을 보충시키는 전체적인 국가경영을 잘 하지 않으면, 농부들에게는 쌀이 남아돌아가는데도 입을 천이 없을 것이며, 여인들에게는 천이 남아돌아가는데도 먹을 쌀이 없게 될 것일세. 그대가 당국자로서 이런 것들을 잘 유통시켜 조화롭게 만들면 소목장ㆍ대목수ㆍ수레바퀴공ㆍ수레거푸집 장인이 모두 그대의 덕분에 먹을 것을 얻게 될 것이야. 그런데 여기 어떤 한 훌륭한 청년이 있어서, 집에 들어가면 극진히 효도하고 나와서는 어른들을 공손히 모시고, 선왕지도(先王之道)를 잘 지킴으로써 후대의 배우는 자들에게 그 도를 잘 전하고 있다고 해보세! 그런데 이 청년을 자네가 별로 눈에 띄게 하는 일도 없고 뭘 만들어내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그에게 먹을 것이 돌아가는 것을 차단시킨다고 한다면, 그대는 소목장ㆍ대목수ㆍ수레바퀴공ㆍ수레거푸집 장인만 존경하고, 이 사회의 보이지는 않지만 너무도 중요한 인의(仁義)의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경멸하고 마는 것일세. 과연 그래서야 되겠는가?” 曰: “子不通功易事, 以羡補不足, 則農有餘粟, 女有餘布; 子如通之, 則梓匠輪輿皆得食於子. 於此有人焉, 入則孝, 出則悌, 守先王之道, 以待後之學者, 而不得食於子. 子何尊梓匠輪輿而輕爲仁義者哉?” 팽갱은 굽히지 않고 반론을 제기한다: “선생님! 소목장ㆍ대목수ㆍ수레바퀴공ㆍ수레거푸집 장인은 본시 밥을 먹기 위해서, 그 동기 때 문에 제작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군자가 도를 행하는 것도 보수를 받기 위한 동기에서 하는 것입니까?” 曰: “梓匠輪輿, 其志將以求食也; 君子之爲道也, 其志亦將以求食與?”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지금 여기서 동기니 목적이니 하는 것들을 따지고 있는가? 그대는 당국자로서 사람의 행위 가 구체적 성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 가치를 인정하고 그 성과에 따라 보수를 주는 것뿐일세. 묻겠네. 그대는 동기 때문에 보수를 주는가? 구체적 공적 때문에 보수를 주는가?” 曰: “子何以其志爲哉? 其有功於子, 可食而食之矣. 且子食志乎? 食功乎?” 팽은 말했다: “저는 동기에 대하여 보수를 줍니다.” 曰: “食志.”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좋아! 여기 한 미장이가 있다고 하세. 우리집 담이 고장나서 미장이를 불렀는데, 이 미장이는 손이 서툴러서 기와를 잔뜩 깨버리고 흙손으로 벽을 오히려 흠집내버리기만 했네. 그러나 이 자가 우리집에 온 것은 돈을 벌기 위한 동기밖에는 없네. 그럼 자네는 이 미장이에게 이 미장이의 동기 때문에 보수를 주겠는가?” 曰: “有人於此, 毁瓦畫墁, 其志將以求食也, 則子食之乎?” “못 줍니다.” 曰: “否.” “그렇다면 자네는 인간의 행위의 동기 때문에 보수를 주는 것이 아 니라 구체적 공적 때문에 보수를 줄 뿐이야! 단지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자네가 인의의 공적을 평가할 줄 아는 눈이 부족하다는 것일 뿐일세!” 曰: “然則子非食志也, 食功也.” |
매우 중요한 철학적 아규먼트인데, 그 궁극적 뜻이 문맥상 애매하여 잘 전달되지 않는다. 나는 그 문맥을 명료하게 만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칸트는 인간의 행위의 결과보다는 선의지의 절대적 명령만을 중시한다. 인간의 도덕성은 결과중심의 공리계산에서는 확보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맹자가 결코 칸트와 다른 입장을 취하는 사상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팽갱이라는 제자의 날카로운 질문 때문에 논의가 좀 이상하게 흘러버린 측면이 있다. 그러나 맹자의 입장은 단호하게 상식적이다. 인의를 지켜나가는 도덕성의 사회적 기능에 대하여 물물교환으로 평가될 수 없는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맹자주장의 핵심이다. 그 인정받음이 순수한 동기주의적 논의에 의해서만 분석될 수는 없다. 그 도덕의 현실적 기능은 하시(何時)라도 자기가 300여 명을 데리고 다니는 정도의 대접은 받는 것을 너무도 정당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서 맹자는 순수한 동기주의와 결과주의를 종합하고 있다. 선의지에 의한 현실적 기능은 물리적 유통에 못지않은 가치를 지니는 것이며, 그 가치는 반드시 물질적으로도 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의 논의는 철학적 아규먼트가 아니라 상식적 판단일 뿐이다. 이러한 맹자의 오기 때문에 그래도 선비의 도덕적 기능이 존중되는 그러한 사회적 기풍이 조선 5백 년의 역사를 통하여 형성되어왔고, 오늘 우리 사회에도 면면이 흐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장의 내용은 「진심」 상32와 같이 참고하여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여기서 논의되고 있는 ‘통공역사(通功易事)’라는 개념은 최한기의 기학의 한 주요한 개념이다【『기학』 1-24 참고, 손병욱 역주, 도올 김용옥 서문, 통나무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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