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문맥으로 파악하라
5a-4. 함구몽(咸丘蒙)【沃案: 조기는 함구몽이 맹자의 제자라고만 간단히 말했다. 함구(咸丘)는 본래 노나라의 지명인데 이것으로 성씨를 삼은 것으로 보면 그는 본시 노 나라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나라에서 활약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으며, 특히 역사에 밝은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함구몽은 만장의 제자이거나 만장과 한 동아리의 친구이거나 할 것이다. 함구몽은 오직 이 장에만 나오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맹자학단의 사람이다】이 맹자께 여쭈어 말하였다: “전해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덕으로 충만한 위대한 인물은 아무리 임금이라도 그를 신하로 대할 수 없고, 아무리 아버지라도 그를 아들로 대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순(舜)이 대권을 장악하고 남면(南面)하여 서자, 요(堯)는 제후들을 거느리고 와서 북면(北面)하여 배알하였고 아버지인 고수 또한 북면하여 엎드렸습니다. 순임금이 자기를 그토록 학대하던 아버지가 엎드려 절하는 것을 볼 때 그 얼굴이 미간이 찡그려져 있었습니다. 5a-4. 咸丘蒙問曰: “語云: ‘盛德之士, 君不得而臣, 父不得而子. 舜南面而立, 堯帥諸侯北面而朝之, 瞽瞍亦北面而朝之. 舜見瞽瞍, 其容有蹙.’ 이 상황에 관하여 공자는 개탄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만큼은 군신부자의 윤리가 전도되어 천하가 위태로웠고 모든 것이 불안하였다.’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세간의 이야기가 진실일까요?”【沃案: 여기 함구몽의 문제제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선양설화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함구몽이 앞에 ‘성덕지사(盛德之士)’를 내세워 순의 이미지를 좀 부드럽게 그리기는 했지만, 그의 ‘남면이립(南面而立)’은 무력에 의한 장악이나 쿠데타적인 성격의 것일 수도 있는 것이고, ‘남면(南面)’의 정통성을 요에게서 물려받았다는 기술은 없다. 그리고 요나 고수의 모습은 신하로서의 강압에 의한 굴복이지, 선양의 절차라고 해석할 길은 없다. 그러기 때문에 공자가 천하가 위태롭고 불안한 시기였다고까지 부정적인 멘트를 날린 것이다. 이 함구몽의 언설은 그가 지어낸 것이 아니다. ‘어운(語云)’이라고 말한 것은 고어(古語) 전승으로 확실한 디스꾸르였다는 것이다. 이 비슷한 내용이 『한비자(韓非子)』 「충효(忠孝)」편과 『묵자』 「비유(非儒)」편에 당대의 실려있다. 다음부터 전개되는 맹자의 논의는 이 함구몽이 제기한 전국시대의 디스꾸르를 극구 부정하는 것임에는 말할 나위도 없다】 孔子曰: ‘於斯時也, 天下殆哉, 岌岌乎!’不識此語誠然乎哉?”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니다. 그런 말이 진실일 수가 없다. 그 것은 정통적 소양을 지닌 군자의 말이 아니라, 제나라 후미진 동쪽의 촌스러운 야인들의 잡담일 뿐이다【沃案: ‘제동야인지어(齊東野人之語)’를 조기는 ‘제(齊)의 동야(東野)의 사람들’이라고 읽었고, 주희는 ‘제의 동(東)의 야인(野人)’이라고 읽었다. 주희의 읽는 방식이 더 옳다. 중원에서 보면 제나라도 동쪽으로 이미 후미진 나라인데, 거기서 또 동쪽의 후미진 곳의 촌놈들 잡담이라는 식으로 휘몰아, 전국시대의 가장 중요한 담론을 묵살한 것이다. 맹자의 입장에서 보면 함구몽이 제기한 담론은 매우 위험천만의 것이다】. 요임금이 살아있을 동안에 순이 천자가 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요임금이 늙어 노쇠했기 때문에 순이 섭정을 행하였을 뿐이다. 孟子曰: “否. 此非君子之言, 齊東野人之語也. 堯老而舜攝也. 나의 이러한 논의를 뒷받침하는 담론이 『상서(尙書)』 「요전(堯典)」에 기록되어 있다【현재는 「순전(舜典)」에 들어가 있다. 본래 「요전」과 「순전」은 「요전」 한 편으로 통합되어 있던 것이었다】: ‘순이 섭정한 지 28년만에 방훈(放勳)【요의 칭호, 방훈(放勛)이라고도 쓴다】이 조락(徂落, 승하)하시니 백성(百姓)【백관(百官)의 뜻도 있다】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듯이 3년 복상하였고, 사해의 민간에서는 8음【악기의 음을 내는 소재 8가지: 금(金)ㆍ석(石)ㆍ사(絲)ㆍ죽(竹)ㆍ포(匏)ㆍ토(土)ㆍ혁(革)ㆍ목(木). 옛날 음악은 다른 피치를 동시에 연주하는 화음개념이 아니라, 다른 음색의 조화였다. 옛날 음악은 8음의 심포니였다】의 악곡을 멈추고 근신(謹身)하였다.’ 「堯典」曰: ‘二十有八載, 放勳乃徂落, 百姓如喪考妣, 三年, 四海遏密八音’. 공자께서도,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고, 백성에게는 두 사람의 천자가 있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었는데【이 말씀은 『예기』 「증자문(曾子問)」 「방기(坊記)」, 「대대례기(大戴禮記)』 「본명(本命)」에도 실려있다】, 만약 순이 요임금이 조락(徂落)하시기 전에 이미 천자가 되어 있었고, 또 요임금이 돌아가심에 따라 천하의 제후들을 거느리고 요임금을 위하여 삼년상을 복(服)했다고 한다면 이것은 요와 순이 두 태양처럼 두 천자로서 기존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될 터이니 근원적으로 잘못된 것이다.”【沃案: 맹자는 요임금 노쇠설, 순임금 섭정설을 들어 선양을 직접적 으로 언급하지 않고 함구몽의 문제제기를 피해갔다】. 孔子曰: ‘天無二日, 民無二王. 舜旣爲天子矣, 又帥天下諸侯以爲堯三年喪, 是二天子矣.’” 함구몽이 말하였다: “순이 요임금을 강압적으로 신하로 굴복시킨 적은 없다는 담론에 관해서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잘 료해하였습 니다. 그런데 시(詩)【소아 「북산(北山)」】에 다음과 같은 노랫말이 있습니다: ‘아~ 너른 하늘 아래가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으며, 땅을 따라가다 보면 바닷가 땅끝까지 왕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네.’ 그렇다면 순이 천자가 된 마당에는 고수(瞽瞍) 한 사람만 왕의 신하가 아니라는 것은 정녕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沃案: 함구몽이 논리의 흐름을 바꾸어 고수의 ‘비신(非臣)’을 들고나온 이야기의 배면에는 매우 절묘한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당대의 설화양식 속에서는 분명 고수는 방축된 존재였다. 그런데 역으로 순이 고수를 떠받들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천하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에 흠집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咸丘蒙曰: “舜之不臣堯, 則吾旣得聞命矣. 詩云: ‘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而舜旣爲天子矣, 敢問瞽瞍之非臣, 如何?”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 시는 자네가 지적한 바의 그런 맥락의 의미가 아닐세. 왕이 일으킨 전쟁에 끌려나가 노역만 계속하다 보니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을 봉양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고 원망하는 노래일세. 이 노래는 이런 것을 의미하고 있지: ‘물론 내가 하는 일이 임금님에 대한 봉사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너른 하늘 아래가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으며, 땅끝까지 모두 왕의 신하 아닌 사람이 없는데, 왜 하필 나 홀로 이토록 수고를 계속해야한단 말인가!’ 曰: “是詩也, 非是之謂也; 勞於王事, 而不得養父母也. 曰: ‘此莫非王事, 我獨賢勞也.’ 그러므로 시(詩)를 해설하는 사람은 글자 한 자 한 자에 구애되어 문장 전체의 대의를 해쳐서는 아니 되고, 또 문장 전체를 파악했다고 해서 그 문장이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을 해쳐서는 아니 된다. 읽는 사람의 절실한 뜻을 가지고 작가의 마음에 하나로 투합될 때 비로소 시는 바르게 체회(體會)되는 것이다. 만약에 문사(文辭) 그 자체로써만 시를 이해한다면 대아(大雅) 「운한(雲漢)」의 노래에 ‘려왕(厲王)의 포악한 정치 후에 대한(大旱)과 기근이 계속되어 이 주나라에 살아남은 여민(黎民)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다’라는 가사가 있는데 어떻게 이해될까? 이 문 자를 있는 그대로 믿는다면 주나라에 진실로 살아남은 사람이 한 명도 있을 수가 없게 된다. 얼마나 바보스러운 이해방식인가? 故說詩者, 不以文害辭, 不以辭害志. 以意逆志, 是爲得之. 如以辭而已矣, 「雲漢」之詩曰: ‘周餘黎民, 靡有孑遺.’信斯言也, 是周無遺民也. 효자의 극치는 어버이를 존숭하는 것처럼 더 위대한 것은 없다. 어 버이를 존숭함의 극치는 천하의 부를 가지고서 봉양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고수가 천자의 아버지가 된 것은 존귀함의 극상이며, 순이 천하의 부로써 아버지를 봉양하는 것은 봉양함의 극치이다. 孝子之至, 莫大乎尊親; 尊親之至, 莫大乎以天下養. 爲天子父, 尊之至也; 以天下養, 養之至也. 시(詩)【】대아 「하무(下武)」)는 노래한다: ‘길이길이 효도를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그것이 온 백성이 따르는 법칙이 되리라.’ 이 노래 또한 내가 말하는 효도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있다. 詩曰: ‘永言孝思, 孝思維則.’此之謂也. 『서(書)』【『상서(尙書)』 일편(逸篇), 지금의 『서경』에는 하서 「대우모」편에 수록되어 있음】에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순은 평생 아들로서 자기의 도리를 다 하였기에 항상 공경하는 마음으로 고수를 섬기었다. 고수를 뵈올 적에는 근신공구(謹愼恐懼)하는 자세를 취했다. 고수도 이에 감화를 받아 마음을 열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였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에도 어떻게 ‘부친 고수가 순을 아들로서 취급할 수가 없었다’는 제나라 동쪽의 촌놈들 말이 성립할 수 있겠는가!” 『書』曰: ‘祗載見瞽瞍, 蘷蘷齊栗, 瞽瞍亦允若.’是爲父不得而子也.” |
여태까지 이 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을 평범한 주제의 가벼운 갑론을박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에 그 배면에 깔린 맹자의 어거지 논리의 역 동적 구성을 형량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당대의 같은 주제를 논하고 있는 『한비자(韓非子)』 「忠孝(충효)」 3의 문장을 한번 들여다보자!
소위 충신(忠臣)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임금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자이며, 효자라고 하는 것은 어버이를 굴욕으로 몰고가지 않는 자이다. 그런데 순은 자신의 현명한 머리를 굴려 자기 군주의 나라를 탈취하였으며 탕왕ㆍ무왕(武王)은 의를 빙자하여 자기의 군주를 방축하고 시해하였다. 이것이 모두 현명하다고 하는 자들이 대가리를 굴려 주군(主君)에게 위해를 가하는 방식이다.
所謂忠臣, 不危其君; 孝子, 不非其親. 今舜以賢取君之國, 而湯ㆍ武以義放弑其君, 此皆以賢而危主者也,
그러나 천하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현명하다고 찬양하고 있다. 예로부터 기질이 강렬한 열사들은 밖에 나아가 임금을 섬기지도 않았고 집에 들어와 집을 위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결국 열사(烈士)랍시고 밖에 나아가서는 임금을 비난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어버이를 비난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밖에 나아가 임금을 섬기지 않고 집에 들어와 집을 위하는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집안의 대를 끊는 도(道)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요ㆍ순ㆍ탕ㆍ무를 현인이랍시고 추켜세우고, 열사(烈士)를 시인하는 것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방술에 지나지 않는다.
而天下賢之. 古之烈士, 進不臣君, 退不爲家, 是進則非其君, 退則非其親者也. 且夫進不臣君, 退不爲家, 亂世絶嗣之道也. 是故賢堯ㆍ舜ㆍ湯ㆍ武而是烈士, 天下之亂術也.
고수는 순의 아버지였지만 순은 그를 방축해버렸고, 상(象)은 순의 동생이었지만 순은 그를 죽여버렸다. 아버지를 방축하고 동생을 죽인 놈을 인(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제요의 두 딸을 부인으로 취하는 것을 빌미로 하여 천하를 탈취한 것을 의(義)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인(仁)과 의(義)가 구비되지 않았는데 그것을 명(明)이라 부를 수는 없다.
瞽瞍爲舜父而舜放之, 象爲舜弟而殺之. 放父殺弟, 不可謂仁; 妻帝二女而取天下, 不可謂義. 仁義無有, 不可謂明.
『시』는 노래한다: ‘너른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고, 땅끝 저 바닷가에까지 왕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 이 노래의 말 그대로 진실이라고 한다면, 순은 밖에 나아가서는 임금을 자기 신하로 만들고, 집으로 들어와서는 아버지를 신하로 만들고, 그 계모를 첩으로 만들었으며, 그 임금의 두 딸을 자기 처로 삼았다. 순은 흉포한 열사의 전형이다. 그러므로 열사란 안으로는 집안을 위하는 짓을 하지 않으며 세상을 어지럽히며 후사를 끊어지게 만든다. 밖으로 나아가서는 임금에게 반역을 꾀하기를 좋아하며 썩은 해골 문드러진 살점이 땅에 뒹굴고 천곡에 떠내려갈 그런 짓만 일삼고, 물에 빠지고 불에 탈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일을 피하지 않으며 세상사람들이 자기 방식에 따라 살게만 만든다.
『詩』云: “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 信若詩之言也, 是舜出則臣其君, 入則臣其父, 妾其母, 妻其主女也. 故烈士內不爲家, 亂世絶嗣; 而外矯於君, 朽骨爛肉, 施於土地, 流於川谷, 不避蹈水火.
이렇게 되면 천하사람들이 모두 요절케 되는 것을 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순과 같은 열사는 결국 근원적인 질서를 도모하지 않고 세상을 버리는 자일 뿐이다.
使天下從而效之, 是天下遍死而願夭也. 此皆釋世而不治是也.
여기 우리가 알고있는 순에 대한 경건한 언사는 조금도 발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러한 한비자의 논의가 정당하다는 것도 아니다. 결국 역사적 설화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구성방식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맹자의 이해방식이나 구성방식이 결코 주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묵자(墨子). 순자ㆍ한비자(韓非子) 류의 논의가 전국시대상에 부합되는 보다 일반적인 디스꾸르였다는 것을 우리는 규탐케 되는 것이다. 맹자는 역사적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도덕화(moralizing history)시키고 있는 것이다. 맹자는 순이라는 하나의 인물을 통하여 도덕적 가치를 창조해내고 있다. 맹자에게 순은 그가 생각하는 가치의 구현체였다.
나는 『맹자』를 읽고 있으면, 즉 맹자가 한 땀 한 땀 자기 디펜스를 축적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상상하고 있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어온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여기 만장ㆍ함구몽과의 대화, 그 자체가 조선사회의 형성과정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그에 대한 포(褒)와 폄(貶)은 다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맹자의 노력이 동아시아 역사에 도덕형이상학의 홍류를 형성하였고, 그것이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식적 가치의 공통분모를 제공하였다는 사실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은 부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시(詩)의 해석에 관하여 맹자가 한 말은 전후맥락을 떠나 문학 이론으로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만고의 명언이다: ‘고설시자(故說詩者), 불이문해사(不以文害辭), 불이사해지(不以辭害志), 이의역지(以意逆志), 시위득지(是爲得之)’ ‘역(逆)’은 ‘헤아리다’ ‘계합하다’ ‘투합하다’는 뜻이다. 「계사」 상12에도 ‘책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은 뜻을 다할 수 없다[書不盡言, 言不盡意].’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동일한 시대정신을 나타내는 담론이라 할 것이다. 인간의 언어가 결코 인간이 표현하고자 하는 뜻을 다 표현해줄 수 없다는 생각은 도가나 유가를 불문하고 공통의 사상기저였다. 말을 맹신하고, 말의 근거로서 이데아적 개념을 상정하고, 그 개념의 영원불변성을 인정한 희랍사유와 너무도 대비되는 것이다.
함구몽은 요순선양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였고, 맹자는 그 발언을 제인 야인들의 잡설이라고 물리쳤다. 그러나 뒤이어 만장은 선양 그 자체의 가능성의 정당성에 관한 집요한 추적을 계속한다. 맹자는 ‘선양’의 성격 그 자체를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자신의 왕도철학과 천명이론을 정당화하는 작업을 감행한다. 이러한 「만장」편의 배열은 참으로 놀라운 편집수법이라고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장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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