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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한글역주, 만장장구 상 - 5. 선양의 조건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만장장구 상 - 5. 선양의 조건

건방진방랑자 2022. 12. 28.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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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선양의 조건

 

 

5a-5. 만장이 물었다: “요가 천하를 순에게 주었다는데 그게 정말 있을 법한 얘기입니까?”
5a-5. 萬章曰: “堯以天下與舜, 有諸?”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 사람아! 그건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얘 기지! 천자라고 해서 어떻게 천하를 하나의 물건처럼 한 사람에게 건네줄 수 있겠는가?”
孟子曰: “. 天子不能以天下與人.”
 
물었다: “그렇지만 순()은 분명 천하를 수중에 넣었지 않았습니까? 그럼 그것은 누가 준 것입니까?”
然則舜有天下也, 孰與之?”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하늘이 준 것이다.”
: “天與之.”
 
물었다: “하늘이 준 것이라니요, 그렇다면 하늘이 타이르듯 말하면 서 명령한 것입니까?”
天與之者, 諄諄然命之乎?”
 
말씀하시었다: “그럴 리가 없지! 하늘님은 본시 말씀이 없으시다. 단지 순의 행동과 그 행동에 상응하는 사태로써 순에게 주는 의미를 드러낼 뿐이다여기 시지(示之)’를 조기는 천하사람들에게 보인다라고 했고, 주희는 하늘이 순에게 천하를 주는 의미를 드러낸다라고 해석했다. 주희를 취한다.”
: “. 天不言, 以行與事示之而已矣.”
 
물었다: “행동과 사태로써 그 의미를 드러낸다는 게 실제로 어떠한 것입니까?”
: “以行與事示之者如之何?”
 
말씀하시었다: “천자는 하늘에게 사람을 추천할 수는 있지만 하늘로 하여금 억지로 그 사람에게 천하를 주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제후가 한 사람을 천자에게 추천할 수는 있지만 천자로 하여금 억지로 그 사람 을 제후로 봉하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또 대부가 한 사람을 제후에게 추천할 수는 있지만 제후로 하여금 억지로 그 사람을 대부로 봉하게 할 수는 없다. 옛날에, 요는 순을 하늘에게 추천하신 것일 뿐이다. 그런데 하늘이 순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요는 순을 백성들에게 소개했을 뿐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그가 하는 행사를 모두 심복하여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님은 본시 말씀이 없으시지만 단지 그 추천된 사람의 행동과 그 행동에 상응하는 사태를 통하여 그 의미를 드러내신다라고 내가 말한 것이다.”
: “天子能薦人於天, 不能使天與之天下; 諸侯能薦人於天子, 不能使天子與之諸侯; 大夫能薦人於諸侯, 不能使諸侯與之大夫. 昔者堯薦舜於天而天受之, 暴之於民而民受之, 故曰: 天不言, 以行與事示之而已矣.”
 
물었다: “감히 여쭙겠나이다. 하늘에 순을 천거하여 하늘이 순을 받아들였고, 백성에게 순을 소개하여 백성들이 순을 받아들였다고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그 말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오니이까?”
: “敢問薦之於天而天受之, 暴之於民而民受之, 如何?”
 
말씀하시었다: “순으로 하여금 천지산천(天地山川)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더니, 천지산천의 모든 신들이 제사를 향수(享受)하여 천지풍우의 이변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이 순을 받아들였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또 순으로 하여금 정사(政事)를 주재(主裁)케 하였더니 만사가 잘 평정되어 질서가 잡히고 백성들은 안도하였다. 이것이 바로 백성이 순을 받아들였다는 증거이다. 보아라! 이것은 하늘이 준 것이요, 사람 또한 감동하여 드린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 것이다. 어찌 천자라 해서 천하를 한 사람에게 물건 건네듯 건네줄 수 있겠는가!
: “使之主祭而百神享之, 是天受之; 使之主事而事治, 百姓安之, 是民受之也. 天與之, 人與之, 故曰: 天子不能以天下與人.
 
순이 요임금의 재상노릇을 한 것이 어언 28년이나 되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훌륭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단지 인간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뜻으로 된 것이다. 요임금이 붕어(崩御)하시고 삼년의 상을 마치자, 순은 요임금의 아들에게 천자의 지위를 계승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은 남하(南河)의 남쪽 땅으로 피신하였다요임금의 성()이 복주(濮州) 견성현(鄄城縣) 동부 15리에 있고, 또 언주(偃朱) 고성이 견성현 서북 15리에 있다. 복주는 북쪽으로 탑()이라는 대천(大川)에 맞닿아 있다. 그런데 그 물이 요임금 성의 남쪽으로 흘러 남하(南河)라 불렀다. 순이 단주(丹朱)를 피해 남하의 남쪽으로 갔다했는데 그곳이 바로 언주 고성 언저리일 것이다. 언주 고성은 현재 하남성 복성(濮城) 25리에 있는데 본래 주가부(朱家阜)라고 불렀다. 그런데도 천하의 제후들이 천자에게 조근(朝覲)조현(朝見)과 같다하는 것을 요임금의 아들인 단주(丹朱)에게 가지 않고 모두 순에게 갔다. 그리고 송사를 벌여 판결을 기다리는 자들이 요임금의 아들인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다. 그리고 천자의 덕()을 구가(謳歌, 칭송하여 노래부르다)하는 자들이 요임금의 아들을 구가하지 아니 하고 순의 덕성을 칭송하여 노래불렀다. 그러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舜相堯二十有八載, 非人之所能爲也, 天也. 堯崩, 三年之喪畢, 舜避堯之子於南河之南. 天下諸侯朝覲者, 不之堯之子而之舜; 訟獄者, 不之堯之子而之舜; 謳歌者, 不謳歌堯之子而謳歌舜, 故曰天也.
 
이러한 모든 사태가 확인된 연후에나 순은 비로소 요임금의 제도(帝都)로 가서 천자의 지위에 올랐다. 만약 요임금이 붕어했을 때, 순이 재빠르게 요임금의 궁전을 점령하고, 요임금의 아들에게 제위를 포기할 것을 핍박하였다고 한다면 그것은 찬탈이지, 하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夫然後之中國, 踐天子位焉. 而居堯之宮, 逼堯之子, 是簒也, 非天與也.
 
상서(尙書)태서(太誓)泰誓라고도 쓴다. 3b-5에도 기출, 현재 고문 태서에 들어있다, ‘하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 민중이 보는 것을 통하여 보시고, 하늘님이 들으시는 것은 우리 민중이 듣는 것을 통하여 들으신다라고 했는데 이는 곧 내가 지금 한 말을 두고 한 말이다.”
太誓: ‘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此之謂也.”

 

만장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장으로서 맹자라는 텍스트를 대변하는 훌륭한 논변으로 정평이 있다. 요순설화의 구성에 있어서 가장 무리가 없는 맹자의 논리가 부드럽게 펼쳐지고 있다. 어쩌면 여태까지 4장의 논리가 이 장의 클라이막스를 위한 버거운 디펜스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장을 통하여 중국의 천명관(天命觀)은 확고한 인문주의적 거점을 마련한 셈이다. 내가 여기서 ()’하늘이라고도 하늘님이라고도, 하느님이라고도 번역했는데, 맹자의 천()은 철저히 인문화되어 있으면서도 본래의 인격적 친근감이나 초월성의 맥락을 상실하지 않는다. 신이 초월적이냐 내재적이냐 하는 것은 결코 중요한 논의가 아니다. 신을 명사화하고 주어화하면 그러한 신은 생명을 상실하고 개념화되고 만다. 하느님은 반드시 형용사화되어야 하고, 술부화되어야 한다.

 

여기 본 장의 맹자의 논의를 보면 하늘의 의미가 철저히 술부화되어 있다. ‘하늘이라는 명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민중이 보는 것을 통하여 봄이라는 술부적 기술(Description)이 중요한 것이다. 맹자는 요순의 선양을 실체화하지 않는다. 선양 그 자체가 술부적 과정이며 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하늘이 수용하는 술부적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하늘이 수용한다는 것은 곧 민중의 수용을 통하여 술부적으로 입증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유교를 인문주의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인문주의는 모든 초월주의를 포섭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이토록 이 조선땅에서 설치는 것도 맹자 덕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역으로 조선의 건강한 기독교인이라면 맹자가 말하는 민중 즉 인간의 보편성을 하늘의 의지로서 수용하는 신앙인이어야만 한다. 이것이 장공(長空) 김재준(金在俊, 1901-1987의 대승기독교사상이다.

 

하늘님은 인간을 초월하는 그 무엇으로 엄존해야 하지만, 그 초월성은 결국 인간공동체의 초월적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천 명관은 기본틀에 있어서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데모크라시(Democracy)와 하등의 차이가 없다. 제도적 구현태가 다를 뿐이지만 요즈음 한국의 선거에 기초한 삼권분립이 가져오는 리더십의 저열성을 생각하면 역사의 진보는 허구라는 생각만 든다. 오늘날 중국의 리더십교체과정은 아직도 본 장의 맹자논의를 사상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말한다: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

 

다음 장에서 만장은 또다시 선양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요와 순의 시대는 맹자가 말하는 선양이 지켜졌지만 우임금 시대에 와서는 덕이 쇠미해져서 선양의 미덕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제기함으로써 선양의 논리에 궁극적으로 하자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새롭게 규정한 선양의 성격을 지배하는 치열한 논리를 관철시키면서 자신의 선양의 논리에 조금도 하자가 없다는 것을 디펜드 해나간다. 이와 같이 만장편의 대화는 치밀하며 역사적 사실(史實)’을 놓고 견해의 차이를 논하며 맹자는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킨다. 공자의 제자들과의 대화는 소박한 촌부들과 논두렁에서 나누는 진솔한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면 맹자의 제자들과의 담론은 옥스퍼드대학 대학원 세미나실에서 이루어지는 토론 같다는 느낌을 준다. 맹자의 제자들은 모두 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이었다. 이러한 전국시대의 분위기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맹자라는 텍스트를 이해할 수 없다. 만장의 구성은 사마천맹자가 은퇴한 후 만장지도(萬章之徒)와 함께 맹자 7편을 작()하였다[退而與萬章之徒序詩書, 述仲尼之意, 作孟子七篇]’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은퇴 후에 치열한 토론을 통하여 완성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만장지도(萬章之徒)’만장과 그의 제자그룹으로 이해되는 것이 더 정당할 것이다. 만장이라는 탁월한 지도자가 있어서 맹자와의 토론을 주관하고 또 그것을 일관된 흐름을 잡아 문자화하고 편집하지 않았다면 이런 편은 생겨날 길이 없다. 나는 사마천의 기술이 매우 신빙성이 높은 발언이라고 생각하며, 만장편을 만든 사람들이 맹자라는 전 텍스트를 최종 편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만장과의 대화가 진심편의 말미를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방증될 수 있는 것이다.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논어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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