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군자를 속이는 방법
5a-2. 만장이 물어 말하였다: “시(詩)【제풍(齊風) 「남산(南山)」: 문강(文姜)을 그리워하는 양공(襄公)을 읊은 노래라고 하나, 타국에 시집간 연인을 포기 못하는 남자의 심정을 읊은 일반가사로 보는 것이 더 정당하다】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아내를 취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나? 반드시 먼저 부모님께 고해야지.’【이 제품의 노래는 당연히 순(舜)의 시대에는 없었던 노래이다. 그러나 만장은 이 노래 속의 풍속이 순의 시대에도 적용된다고 보고 인용한 것이다.】 이 가삿말이 진실이라면 순처럼 행동하면 안 되겠지요. 순과 같은 훌륭한 인물이 부모님께 아뢰지도 않고 혼인한 것은 웬일입니까?” 5a-2. 萬章問曰: “詩云: ‘娶妻如之何? 必告父母.’信斯言也, 宜莫如舜. 舜之不告而娶, 何也?” 맹자께서 답하시었다: “순은 부모님께서 미워하고 계셨기 때문에 만약 부모님께 아내를 취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라면 결국 혼인을 하 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녀가 혼인하는 것은 꼭 이루어야만 하는 사람의 대륜(大倫, 필연적 관계)이다. 그런데 부모님께 고하게 되면, 혼인을 못하게 되니 사람의 대륜을 폐기하는 것이요, 결국 부모님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대부모(懟父母)’를 조기도 주희도 다 ‘원어부모(怨於父母)’로 읽었다. 부모님께 원망소리를 듣는다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 ‘대(懟)’는 부모를 목적어로 하는 타동사일 뿐이다. 그냥 소박하게 해석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부모님께 고하지 않은 것이다.” 孟子曰: “告則不得娶. 男女居室, 人之大倫也. 如告, 則廢人之大倫, 以懟父母, 是以不告也.” 만장이 말하였다: “순이 부모님께 고하지도 않고 아내를 취한 것에 관해서는 해주시는 말씀을 듣고 익히 깨달았습니다마는, 제요가 자 기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면서 순의 부모님께 고하지 않은 것은 웬일입니까?” 萬章曰: “舜之不告而娶, 則吾旣得聞命矣; 帝之妻舜而不告, 何也?” 말씀하시었다: “요임금 또한 순의 부모님께 고한다면 자기의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曰: “帝亦知告焉則不得妻也.” 만장이 말하였다: “전해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순의 부모는 순으로 하여금 곡창의 지붕을 수선하게 했습니다. 순은 사다리를 놓고 지붕 에 올라갔는데 순이 다 올라간 것을 보고 순의 아버지 고수(瞽瞍)【4a-28에 기출】는 그 사다리를 치워버렸고【보통 나무사다리는 ‘제(梯)’라고 하는데 여기는 ‘계(階)’를 썼다. 그러나 ‘계(階)’도 ‘제(梯)’와 통용된다】 곧 곡창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순은 큰 초립 두 개를 가지고 올라갔기 때문에 그것을 붙잡고 뛰어내려 무사히 안착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순의 아버지 고수는 다시 순으로 하여금 우물을 파게 했지요. 그러나 순은 우물을 수직으로만 파지 않고 옆으로 구멍을 내어 빠져나갔습니다. 고수는 그것도 모르고 위에서 흙을 퍼부어 우물을 메워버렸지요【여기 ‘출(出), 종이엄지(從而揜之)’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옆으로 구멍을 내어 빠져나갔다는 것은 『사기(史記)』의 기록에 의한 것이다. 조기는 판 구멍으로 곧 나왔으나 그것도 모르고 흙으로 덮었다라는 식으로 해석했다. 혹자는 ‘고수가 그래도 아버지였기에 순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흙으로 덮었다’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萬章曰: “父母使舜完廩, 捐階, 瞽瞍焚廩. 使浚井, 出, 從而揜之. 이때 순의 이복동생인 상(象)【순의 모친이 일찍 죽자 순의 아버지 고수는 후처를 들였다. 그 후처에게서 난 아들이 상인데, 상은 매우 오만하였고 순을 못살게 굴었으나 아버지 고수는 상만을 편애하였다】은 순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도군(都君) 순【’도군(都君)’은 순을 가리킨다. 순은 이미 임금의 두 딸을 취한 상태이므로 일도(一都)의 군(君)이었다. 조기와 주희의 설을 취하지 않는다】을 모해(謀害)한 것은 모두 나의 공적에 속하는 것이다. 이제 형의 재산을 분배할 차례다. 소와 양은 부모님께, 그리고 곡창(穀倉)도 부모님께 드려야겠다. 그러나 방패와 창은 내 것, 오현금도 내 것, 상감(象嵌)의 아름다운 활【‘저(弤)’는 원래 천자가 쓰는 활이라 했는데 순은 아직 천자가 아니므로 그냥 순이 만든 특별한 활이라고 보면 된다】도 내 것, 아리따운 두 형수도 나의 침실을 모시도록 하겠다【여기 ‘나’에 해당되는 말이 모두 ‘짐(朕)’이다. 진시황제 때 이르러 비로소 천자의 자칭으로 ‘짐’이 쓰인 것이다. 그 전에는 보통 개인의 1인칭으로 짐이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이 죽으면 형의 부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습속이, 유대민족의 레비레이트 결혼(Livirate marriage)[신명기 25:5~10]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고대중국에서도 통용 되는 습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象曰: ‘謨蓋都君咸我績. 牛羊父母, 倉廩父母, 干戈朕, 琴朕, 弤朕, 二嫂使治朕棲.’ 상이 이렇게 뇌까리며 순의 집으로 들어갔는데, 순은 태연하게 침상 위에서 오현금을 타고 있었습니다. 숨이 확 막힌 상은 얼떨결 에, ‘울적하게 형님 걱정만 하고 있었다우’라고 말했지요.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부끄러운 듯 우물쭈물하면서 서있었습니다. 이에 순은 평소 자기 집에 들른 적이 없는 동생이 온 것을 기뻐하면서 이와 같이 말했지요: ‘아~ 반갑구나. 너도 나에게 와서 내 신하와 백성들을 관리해주는 일을 도와주면 좋겠다.’ 象往入舜宮, 舜在床琴. 象曰: ‘鬱陶思君爾.’忸怩. 舜曰: ‘惟茲臣庶, 汝其于予治.’ 여쭙겠습니다. 도대체 순이라는 사람은 자기 동생 상(象)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몰랐단 말입니까?” 不識舜不知象之將殺己與?” 말씀하시었다: “모를 리가 있었겠는가? 단지 형제의 정으로 상이 울적하면 자기도 울적하고, 상이 기뻐하면 자기도 기뻐했을 뿐이다.” 曰: “奚而不知也? 象憂亦憂, 象喜亦喜.” 말했다: “그렇다면 순은 기뻐하는 척 위장한 것이 아닐까요?” 曰: “然則舜僞喜者與?” 말씀하시었다: “으음! 그렇지는 않아! 옛날에 어떤 사람이 정자산 (鄭子産)【4b-2에 기출. 이 장에서는 맹자가 특별히 자산을 나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에게 살아있는 물고기를 잡수시라고 보내왔단다. 그러나 자산은 그 물고기를 연못을 관장하는 교인(校人, 말단 관리)에게 그것을 연못에 기르라고 내주었다. 그런데 그 교인은 그것을 삶아먹었다. 그리고 돌 아와서는 자산에게 보고하였다: ‘처음에 연못에 놓아주었을 때는 얼 떨떨 맴돌다가 조금 지나니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니 그만 깊은 곳으로 유유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曰: “否. 昔者有饋生魚於鄭子産, 子産使校人畜之池. 校人烹之, 反命曰: ‘始舍之圉圉焉, 少則洋洋焉, 攸然而逝.’ 자산은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말했다: ‘아~ 그 물고기가 제 갈길을 갔구나! 잘된 일이로다! 잘된 일이로다!’ 그 교인은 나와서 말했다: ‘그 누가 자산 보고 지혜롭다 말하는가! 내가 물고기를 삶아먹고 시미치 떼고 말한 것도 모르고, 잘된 일이로다! 잘된 일이로다!라고만 탄복했으니’ 이런 고사가 말하는 바와 같이 선량한 사람은 도리에 맞는 방법으로 속여대면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도리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속여대면 그 판단을 흐리지는 아니 한다. 상(象) 그 녀석이 먼저 형을 진실로 사랑하는 모습으로 접근해왔기 때문에, 형인 순은 그것을 진실로 그대로 믿고 기뻐한 것이다. 어찌 순이 기뻐하는 척 가장을 할 수 있었겠는가?” 子産曰 ‘得其所哉! 得其所哉!’ 校人出, 曰: ‘孰謂子産智? 予旣烹而食之, 曰: ‘得其所哉! 得其所哉!’’故君子可欺以其方, 難罔以非其道. 彼以愛兄之道來, 故誠信而喜之, 奚僞焉?” |
참으로 오묘한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고 있는 매우 복잡한 장이라고 할 것이다. 이 장은 실제로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부분은 순의 혼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부분의 테마는 이미 4a-26에서 다루어졌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순이 부모에게 당하는 고난의 삶의 역정을 그린 것이다. 그 테마도 4a-28에서 암시된 바 있다. 그러나 여기 맹자의 논의는 매우 구체적이고 과격하다. ’계모학대설화’는 우리나라의 민담(民譚)에서도 하나의 정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제3부는 자산의 고사를 빌어 순이 그 학대를 순결한 마음으로 이겨내는 진실을 묘사하고 있다. 『논어』 6-24에도 ‘사람을 그럴듯한 말로 속일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가기야(可欺也), 불가망야(不可罔也)]’라는 공자의 말씀이 있다.
여기 맹자가 그리고 있는 순의 효행설화는 실제적으로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그가 받는 박해는 부자 사이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행동의 피해상황이다. 우리나라 고사에도 계모의 학대로 춥고 배고픈 것은 많아도 아버지ㆍ계모, 이복동생이 한마음으로 착한 아들을 죽이려 한다는 이야기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자기를 죽이려하는 이들의 기쁨을 같이 기뻐하는 순의 기쁨은 위장전술이 아니겠느냐는 만장의 질문은, 당시 전국시대의 상식적 설화양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박해를 받으면서도 완벽하게 원망하는 기색이 없이 순결한 선의(善意)로써만 박해자들을 대하는 비현실적 이상인물(理想人物)로서 순의 효제(孝悌) 상을 그려내고 있다. 사마천은 이러한 맹자의 논의를 대부분 『사기(史記)』에 계승하였고, 또 『묵자(墨子)』에 나오는 설화들까지 짬뽕시켰다. 하여튼 우리가 맹자 이전의 전승으로 알고 있는 요순설화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복잡한 텍스트 크리틱을 요구하는 문제가 되고 만다. 하여튼 맹자는 만장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자기 나름대로 치열하게 논박해나가면서 순(舜)의 도덕적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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