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맹자한글역주, 만장장구 상 - 6. 선양(禪讓)과 승계(承繼)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만장장구 상 - 6. 선양(禪讓)과 승계(承繼)

건방진방랑자 2022. 12. 28. 03:34
728x90
반응형

 6. 선양(禪讓)과 승계(承繼)

 

 

5a-6. 만장이 여쭈었다: “사람들이 보통 이렇게 말하지요: ‘우임금대에 이르러서는 덕이 쇠하여 천자의 위를 현자에게 물려주지 않고 자기 아들에게 전하였다. 그래서 선양의 미덕이 끊겼다. 이 말대로 정말 그러할까요?”
萬章問曰: “人有言: ‘至於禹而德衰, 不傳於賢而傳於子.’有諸?”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아니다! 그러할 리 없다. 하늘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하늘이 현자에게 주려고 하면 현자에게 주는 것이고, 아들에게 주려고 하면 아들에게 주는 것이다. 문제는 당사자가 하늘 의 뜻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인가 하는 것일 뿐이다. 옛날에 순임금께서 우()를 하늘에 추천하여 정사를 돌보게 한 것이 17년이나 되었다. 17년이 지나 순임금이 붕어하시고 3년의 상이 끝난 후에는, 우는 순 임금의 아들인 상균(商均)이 제위를 잇도록 배려하여 자신은 피신하여 양성(陽城)산 이름, 지금 하남성 등봉현(登封縣) 38. 염약거는 우가 피한 곳이 이 산이라고 한다. 이름으로는 하남성 등봉현 동남 35리에 있는데 현재 명칭은 고성진(告成鎭)이다. 청일통지(淸一統志)에는 우가 여기 피해 있었다고 한다. 초순은 하남성 숭산(嵩山) 아래 심곡지중(深谷之中)이라고 했다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천하의 모든 백성들이 우가 있는 곳으로 운집하였다. 이것은 마치 요임금이 붕어하신 후에 백성들이 요임금의 아들 단주(丹朱)에게 가지 않고 순()을 따른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孟子曰: “, 不然也. 天與賢, 則與賢; 天與子, 則與子. 昔者舜薦禹於天, 十有七年, 舜崩. 三年之喪畢, 禹避舜之子於陽城. 天下之民從之, 若堯崩之後, 不從堯之子而從舜也.
 
우임금은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중신인 익()을 하늘에 추천하여 그로 하여금 집정케 한 것이 7년이 되었다. 우임금이 드디어 붕어하시고 3년의 상이 끝나자, 익은 우임금의 아들인 계()가 제위를 잇도록 배려하여 자신은 피신하여 기산(箕山)의 음()초순은 기산지음(箕山之陰)도 숭산(崇山) 아래 심곡이라고 말한다. 주석가들은 기산이 양성(陽城)의 남쪽에 있다고 말한다. 보통 기산의 음이라고 하면 기산의 북쪽을 말한다. 그런데 사기(史記)』 「하본기에는 기산지양(箕山之陽)’으로 되어있다. 보통 배산임수 지역에서 양이란 산()의 남쪽이고 물[]의 북쪽이다에 가서 살았다.
禹薦益於天, 七年, 禹崩. 三年之喪畢, 益避禹之子於箕山之陰.
 
그런데 요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조근(朝覲)하고 송옥(訟獄)하는 자들이 피신해있는 익()에게 가지를 않고 모두 우임금의 아들인 계()에게 가면서,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의 아드님이 훌륭하시다라고 했다. 그리고 구가(謳歌)하는 자들이 익을 구가하지 아니 하고 계를 구가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의 아드님이 훌륭하시다라고 했다. 요임금의 아들인 단주(丹朱)는 아버지를 닮지 못한 불초의 자식이었고, 순 임금의 아들인 상균(商均)은 아버지를 닮지 못한 불초의 자식이었으나, 우임금의 아들인 계()는 상황이 달랐던 것이다. 게다가 순이 요임금의 재상 노릇한 것은 28년이고, ()가 순임금의 재상 노릇한 것은 17년이다. 그 기간이 길었고, 또 그에 따라 백성에게 그 은택이 미치는 기간도 길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임금의 계승상황은 좀 특수하다. 아들인 계가 현명했으며, 아버지 우임금의 도를 공경스럽게 승계(承繼)할 만한 능력이 충분했다. 또 이런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익이 우 임금의 재상 노릇한 것은 7년에 불과했다. 기간이 너무 짧았고 백성에게 은택이 미치는 기간도 짧았던 것이다.
朝覲訟獄者不之益而之啓, : ‘吾君之子也.’謳歌者不謳歌益而謳歌啓, : ‘吾君之子也.’ 丹朱之不肖, 舜之子亦不肖.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多, 施澤於民久. 啓賢, 能敬承繼禹之道. 益之相禹也, 歷年少, 施澤於民未久.
 
순ㆍ우ㆍ익이 재상 노릇한 기간이 서로간에 비상한 차이가 있었고, 또 천자의 아들된 자들의 현ㆍ불초의 차이가 있는 것은 모두 피치 못할 하늘의 뜻일 뿐,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益相去久遠, 其子之賢不肖, 莫之爲而爲皆天也, 非人之所能爲也.
 
인위적으로 만들지 아니 했는데도 스스로 그렇게 되어가는 것을 천명(天命)이라고 하고, 인위적으로 나에게 오도록 만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나에게 오는 것은 운명(運命)이라 아니 말할 수 없다. 일개 평민에 지나지 않는 자가 천하를 보유하는 천자가 된다는 것은 그 덕()이 반드시 순()이나 우()에 필적할 만해야 하는 동시에 반드시 또한 천자의 추천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니(仲尼)는 순ㆍ우에 필적할 만한 덕은 있었지만 천자의 추천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천하를 보유하는 데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또한 천자의 아들로서 대를 이어가면서 천하를 보유케 되는 상황에서는 천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걸()이나 주()와 같은 포역무도(暴逆無道)한 군주가 아니면 하늘은 쉽사리 그를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 이윤(伊尹), 주공(周公)과 같은 탁월한 인물들이 천자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莫之爲而爲者, 天也; 莫之致而至者, 命也. 匹夫而有天下者, 德必若舜禹, 而又有天子薦之者, 故仲尼不有天下. 繼世以有天下, 天之所廢, 必若桀紂者也, 故益伊尹周公不有天下.
 
이윤(伊尹)2a-2에 기출. 은나라를 세운 탕왕(湯王), 그리고 태갑(太甲)을 모신 명신(名臣). 명은 지(), 호는 아형(阿衡)은 은나라를 세운 탕왕(湯王)의 재상이 되어, 탕을 도와 그로 하여금 진정한 천하의 왕자(王者)가 되도록 하였다. 그런데 탕이 붕어하였다. 탕의 아들인 태자 태정(太丁)이 제위에 오르기도 전에 일찍 세상을 떴기 때문에, 탕의 동생 외병(外丙)갑골문에는 복병(卜丙)’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역사적 실존인물이다을 임금으로 세웠는데 불과 2년만 에 죽고 만다. 그러자 또다시 외병의 동생인 중임(仲任)갑골문에는 중임(中壬)’으로 나온다을 임금으로 세웠는데 이 경우도 4년만에 죽고 만다沃案: 은나라에서는 왕위의 형제상속이 장자상속에 우선하였다고 본다. 그러자 태정(太丁)의 아들인 태갑(太甲)그러니까 탕왕의 손자을 왕으로 세웠는데, 이 태갑이라는 인물은 아주 막돼먹은 친구인지라 할아버지 탕이 정립해놓은 훌륭한 법률과 의전을 다 전복시켜 버렸다. 그래서 이윤은 그를 동()()’은 시향(尸鄕) 남쪽이다. 시향은 지금 하남성 언사현(偃師縣) 서남 5리에 있다. 염약거는 산서성 영하현(榮河縣)이라고 하고, 주희는 탕의 묘소가 있는 곳이라 했는데, 은나라 수도인 박()의 부근일 것이다으로 방축하여 버렸다. 방축된 지 3년이 지나자 태갑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이 한 나쁜 짓들을 원망하면서 자신의 몸을 닦았다. ()에서 인()에 처()하고 의()를 실천하기를 3년 하고 나니까 그는 이윤의 훈계를 잘 듣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를 수도 박()현재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 시향(尸鄕)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3b-5에 기출으로 복귀시켜서 다시 제위에 오르게 했다. 그러니까 이윤은 자기 스스로 제위에 오르지는 않았다.
伊尹相湯以王於天下. 湯崩, 太丁未立, 外丙二年, 仲壬四年. 太甲顚覆湯之典刑, 伊尹放之於桐. 三年, 太甲悔過, 自怨自艾, 於桐處仁遷義; 三年, 以聽伊尹之訓己也, 復歸于亳.
 
생각해보자! 그토록 능력 있었던 주공(周公)이 천하를 보유하는 천자가 되지 않은 것도, ()이 하나라를 먹지 않은 것이나 이윤(伊尹)이 은나라를 먹지 않은 것과 결국 같은 이야기이다. 공자께서 일찍이 말씀하시었다: ‘당요(唐堯)와 우순이 현자에게 제위를 선양한 것이나, 하나라ㆍ은나라ㆍ주나라가 자손으로 제위를 승계한 것은 모두 천의(天意)에 의한 것이며 사욕(私慾)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는 그 도리가 하나인 것이다.’”
周公之不有天下, 猶益之於夏, 伊尹之於殷也. 孔子曰: ‘虞禪, 夏后, 周繼, 其義一也.’”

 

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우하(右下) 14에 반수(潘壽)가 연왕(燕王) ()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옛날에 하나라의 우임금은 자기의 중신 익()을 사랑하여 천하를 익에게 일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아들 계()의 주변의 사람들을 정부요직에 다 등용시켜 놓았습니다. 우임금은 늙어감에 따라 이제 아들 계()의 인품으로 보아 그에게 천하를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천하를 중신(重臣) ()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권력의 무게가 모두 계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니 계는 이미 포진되어 있던 자기의 도당과 연합하여 익을 공격하였고, 드디어 천하를 탈취하였습니다. 이것은 우()가 명목상으로는 천하를 중신에게 전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아들 계()로 하여금 스스로 천하를 갈취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보면 우임금이 요임금이나 순임금에게 못 미친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禹愛益而任天下於益, 已而以啓人爲吏. 及老, 而以啓爲不足任天下. 故傳天下於益, 而勢重盡在啓也. 已而啓與友黨攻益, 而奪之天下. 是禹名傳天下於益, 而實令啓自取之也. 此禹之不及堯舜, 明矣.

 

 

이와 같은 논의가 전국책(戰國策)연책(燕策)에도 실려있고, 간결하지만 초사』 「천문(天問)에도 있다. 그리고 진서(晉書)』 「동석전(東晳傳)에 인용되어 있는 죽서기년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신하 익()이 계()의 제위를 찬탈하려 하자 계가 익을 가차없이 죽여버렸다.

益干啓位, 啓殺之.

 

 

매우 쿨한 기록이다. 다시 말해서 만장은 이러한 당시의 통념을 배경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은 허행장(許行章)이라고 불리는 3a-4에 이미 나왔다. 우가 치수의 달인이었다면, 익은 그와 쌍벽을 이루는 불의 달인이었다. 불로 문명의 공간을 창출하였던 것이다. 익은 고요(皐陶)의 성()인 영()과 통한다. 서경』 「고요모(皐陶謨)편에 보면 우()와 고요(皐陶)는 제순(帝舜)의 앞에서 창언(昌言)정사에 도움이 되는 좋은 말을 하면서 서로를 돕는다. 우는 도산씨(塗山氏), 즉 서()의 영() ()으로부터 아내를 취했다. 익은 고요와 동일인일 수도 있으며, 우와는 혼인관계로써 얽힌 사이일 수도 있다. 하여튼 익은 우와 동급의 인물이었고 우의 아들 계()로 볼 때는 아버지의 친구뻘 되는 사람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는 익그룹과 계그룹 사이에 권력암투가 있었고, 그 권력암투 와중에 계() 그룹이 승리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맹자는 이러한 당대의 상식을 수용하지 않고, 자기류의 새로운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 맹자의 논리는 매우 설득력이 있고 합리적인 전후맥락을 벗어나 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전국문헌들은 우임금의 아들 계를 매우 흉악하고 음탕하며 음주가무의 환락에 빠진 타락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묵자(墨子)비악(非樂)편에도 그가 들판에서 방탕하게 노는 모습이 묘사되고 있으며 굴원도 천문(天問)에서 어찌하여 성실한 익()이 벌을 받고 그 음탕한 우의 자손이 번창했는가 하고 그 불합리한 하늘의 처사를 원망하고 있다. 죽서기년』 『산해경에도 계를 아주 부정적인 인물로서 그리고 있다. 분명 계의 쿠데타는 폭압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 맹자가 말하는 평화로운 권력의 이전이라는 것은 현실정치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아들의 승계라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배면의 하늘의 뜻에는 플레타르키아(pletharchia)적인 원칙의 위배가 없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근세의 경학자인 피석서(皮錫瑞, 1850~1908)맹자가 계를 현인이라고 간주한 것은 사실의 문제라기보다는 후세에 도덕적 가르침을 드리우기 위한 것[孟子以爲賢者, 爲世立敎耳].’이라고 평했는데 적확한 평론이라 할 것이다.

 

정치의 현실이란 항상 최악의 바닥을 달린다. 그렇다고 정치를 그렇게만 적나라하게 기술하는 것을 역사의 정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치는 비정과 권모술수의 세계이지만 그 배면에는 항상 인간의 도덕적 의지가 숨어있다. 맹자가 말하려는 것은 사실의 기술이 아니다. 역사는 사실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엄밀한 사실주의자의 외침도 가치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모든 사실은 사실일 수밖에 없으며, 사실은 역사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맹자는 우리에게 도덕적 사관의 구성에 의한 사실을 전해줌으로써 우리에게 과거사에 대한 도덕적 향수를 품게 만들었다. 선양(禪讓)은 분명 찬탈(簒奪)보다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핏줄에 의한 계승도 선양과 같은 가치를 지녀야만 한다는 맹자의 주장은 과거에 대한 막연한 예찬이기에 앞서 우리의 미래를 도덕적으로 창조해나갈 수 있는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것이다.

 

다음 장은 본 장에서 문제가 된 이윤이라는 인물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에 관하여 만장의 질문이 계속된다. 즉 전국시대의 이윤설화는 그렇게 중후한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윤은 기실 출세지향적인 기회주의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맹자는 이윤에 대한 할팽사관설(割烹仕官說) 부정하고, 그것을 자기의 삶이 실천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을 소불소지신(所不召之臣)’의 한 전형으로 둔갑시킨다. 만장편은 이토록 전일하게 하나의 주제를 기조선율로 하면서 치밀하게 배열되어 있다. 경탄스러운 편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맹자의 이와 같은 노력에 의하여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도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획득한 것이다. 과거는 불가지의 세계다. 결국 그것은 구성의 대상이라는 역사철학을 맹자는 치열하게 터득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인용

목차 / 맹자

전문 / 본문

중용 강의

논어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