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불인한 아우 상에게 벼슬을 준 순임금
5a-3. 만장이 여쭈어 말하였다: “순의 이복동생 상(象)은 매일 순을 죽일 궁리하는 것만을 일삼는 작자였는데, 순이 천자가 되자 상을 죽이지도 않고 추방하는 것만으로 만족한 것은 뭔 까닭이옵나이까?” 5a-3. 萬章問曰: “象日以殺舜爲事, 立爲天子, 則放之, 何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추방한 것이 아니라 상(象)을 제후로 봉(封)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봉한 것을 가지고도 추방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孟子曰: “封之也, 或曰放焉.” 만장이 말하였다: “순은 천자가 된후 상벌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공공(共工)【‘공공(共工)’이란 요임금 당시의 관명(官名)인데, 사람이름은 잘 모른다. 이 공공의 관직에 있던 자가 환도(驩兜)와 더불어 도당을 만들어 악한 짓을 일삼았다.】을 북쪽의 유주(幽州)【유주(幽州)는 하북성 북부로부터 동북(만주) 지구에 걸친 지역】에 유폐시키고, 환도(驩兜)【‘환도(驩兜)’는 요순시대의 대신(大臣)의 이름이다.】를 남쪽의 숭산(崇山)【‘숭산(崇山)’은 여러 설이 있으나 하여튼 남쪽의 큰 산이다】에 추방시키고, 삼묘(三苗)【‘삼묘(三苗)’는 나라이름이다. 요순에게 복종하지 않은 민족의 이름도 된다. 훗날의 묘족(苗族)이다】를 서쪽의 삼위(三危)【‘삼위(三危)’는 감숙성 돈황지역이나 운남 혹은 티벳 지역쯤이 될 것이다.】에 몰아내어 가두어버리고【‘살(殺)’은 ‘찬(竄)’의 뜻이다. 살육의 의미가 아니다】, 곤(鯀)【‘곤(鯀)’은 우(禹)의 아버지로서 치수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옥사시켰다.】을 동쪽의 우산(羽山)【‘우산(羽山)’은 산동성 봉래현(蓬萊縣) 동남에 있다는 호위(胡渭)의 설과, 강소성 동해현(蓬海縣) 서북에 있다는 손성연(孫星衍) 설, 두 설이 있다】에 죽을 때까지 가두어 버렸습니다. 萬章曰: “舜流共工于幽州, 放驩兜于崇山, 殺三苗于三危, 殛鯀于羽山. 이 사흉(四凶)의 인물들을 징벌하시니 천하가 모두 순(舜)에게 귀복(歸復)하였습니다. 이것은 결국 불인한 자들을 주벌(誅罰)한 것입니다. 그런데 상(象)은 이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장 극악하게 불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주벌한 것이 아니라 유비(有庳)의 나라에 제후로 봉해졌습니다【‘유비(有庳)’는 호남성 도현(道縣) 북이라는 설, 호남성 영주부(永州府) 영릉현(零陵縣)이라는 설, ‘비(庳)’는 ‘비(渒)’의 가차자이며 순의 출생지인 우(虞) 지역의 소우수(詔虞水) 근방이라는 설 등등이 있다】. 유비의 인민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순은 인(仁)한 사람일 텐데, 인한 사람이 한다는 짓이 겨우 요 모양 요꼴입니까? 그래도 관직에 있던 타인들은 잘못했다고 책임을 물어 주벌하면서 자기의 동생이라고 그 흉악한 놈을 제후에 봉하다니요, 세상에 그런 불공평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沃案: 만장은 전국시대의 사상가로서 순에 대한 그 시대적 감정을 깔고 적나라하게 질문하고 있다. 순에 대한 특별한 존숭의 감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四罪而天下咸服, 誅不仁也. 象至不仁, 封之有庳. 有庳之人奚罪焉? 仁人固如是乎? 在他人則誅之, 在弟則封之.”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본시 인한 사람의 동생에 대한 태도라는 것은 화나는 것이 있으면 화를 내고 가슴에 숨겨두지 아니하며, 원망할 것이 있으면 원망하고 그것을 가슴에 간직하지 아니한다. 단지 친애(親愛)하는 순결한 가슴만이 있을 뿐이다. 동생을 친(親)한다는 것은 동생이 높은 지위에 있기를 소박하게 바라며, 동생을 애(愛)한다는 것은 동생이 부유해지기를 소박하게 바라는 것이다. 동생을 유비에 제후로 봉했다는 것은 그냥 동생이 부귀(富貴)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인 것이다. 자기는 천자(天子)가 되었는데, 동생이 필부(匹夫)로 남아있다면, 과연 진실로 친애(親愛)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沃案: 『맹자』 전체를 통하여 가장 전후 사리가 맞지 않는 맹자의 말일 것이다. 이러한 맹자의 태도가 동아시아 문명의 사람들에게 끈질긴 네포티즘(nepotism, 족벌)의 병폐를 안겨주었으며, 그 폐단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까지 만연된 형태로 남아있다. 그러나 맹자의 논리를 잘 씹어보면 그 나름대로 어떤 정감적 측면이 있다. 그것은 양묵(楊墨)의 이단에 대하여 극단적인 안티테제로 형성된 가족주의의 정감적 도덕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선왕을 핍박하는 맹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의 논리로써 형량해도 맹자의 이 언급은 결코 정당치 못하다. 맹자에 비하면 만장은 냉철한 어떤 시대적 논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선생을 대적하는 느낌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曰: “仁人之於弟也, 不藏怒焉, 不宿怨焉, 親愛之而已矣. 親之欲其貴也, 愛之欲其富也. 封之有庳, 富貴之也. 身爲天子, 弟爲匹夫, 可謂親愛之乎?” 만장은 또 물었다: “아까 혹자가 봉한 것을 가지고 추방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그것은 뭔 소리입니까?” “敢問或曰放者, 何謂也?” 말씀하시었다: “상(象)은 근본적으로 그 유비국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 깜냥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천자께서 보조적인 관리들을 파견하여 그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고, 특히 그 공세(貢稅)를 거두는 것을 그 관리들을 통하여 하시었다. 그래서 혹자는 상의 분봉을 실제로는 추방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런 장치를 해놓았기 때문에 상이라 한들 그 백성을 포악하게 다스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장치를 해놓고서도 순은 형 아우의 정으로써 항상 자주 상을 만나고자 하였다. 그래서 상도 끊임없이 서울에 와서 형을 만났다. ‘조공의 시기를 기다리지 아니 하시고, 정사를 빌미로 하여 자주 유비의 군주를 접견하시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아마도 『서경』의 일문(逸文)일 것이다. 제후는 5년에 한 번 천자에게 조공한다】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曰: “象不得有爲於其國, 天子使吏治其國, 而納其貢稅焉, 故謂之放, 豈得暴彼民哉? 雖然, 欲常常而見之, 故源源而來. 不及貢, 以政接于有庳, 此之謂也.” |
본문에 즉하여 이미 나의 견해를 설파하였다. 남송의 경학자 오역(吳棫)【복건성 건안(建安) 출신. 자는 재로(才老). 휘종(徽宗) 정화(政和) 8년 진사. 생몰년 미상】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인은 공의(公義)로써 사은(私恩)을 폐(廢)하지 아니 하고, 또한 사은(私恩)으로써 공의(公義)를 해(害)하지 아니 한다. 순(舜)이 상(象)을 대한 것은 인(仁)의 지극함이요, 의(義)를 다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장의 실내용은 이런 근사한 말로써 얼버무릴 내용이 아니다. 맹자의 국가관에는 아직도 동족국가의 친족주의 개념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앙(商鞅)의 사상과 같은 전국시대의 흐름에서는 이미 용납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만장」편은 치밀한 편집의도를 가지고 요순설화를 구성해가고 있다. 제1장에서 순이라는 순결한 인간의 대효(大孝), 천자의 위(位)로써도 해결이 되지 않는 한 인간 내면의 효심을 감동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제2장에서 순의 혼인과정에 있었던 일,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박해 과정, 다시 말해서 순의 고난의 십자가상을 그리면서, 그 십자가를 순결한 효심으로 극복하는 인간의 승리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제3장에서는 순이 드디어 천자가 된 후에도 자기를 죽이려 했던 동생을 제후로 봉하여 ‘친애(親愛)’의 상징성을 역설적으로 구현한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예수는 말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여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38~44)
순은 자기를 핍박하는 자에게 높은 벼슬을 주고 부귀를 허락하였다. 네포티즘의 한계를 벗지 못한 졸렬한 논리가 깔려있는 듯이 보이지만 하여튼 맹자는 그러한 가까운 가족에 대한 친애의 논리가 보편적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인성의 리얼한 바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광해군이 이 장만 열심히 읽었어도 어린 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그토록 처참하게 죽이어 화를 자초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맹자』라는 텍스트의 전반적인 특성이기도 하지만 「만장」편의 묘사방식이 일방적으로 순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맹자가 구성하는 순의 설화에 대한 치밀한 반론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의 아폴로지를 더욱 강렬하게 부각시킨다. 그런데 가장 최종적인 반론은 요순선양의 허구성(The fictionality of the royal concession)에 관한 것이다. 과연 요는 순에게 평화적인 선양을 했을까? 순이 요의 제위를 폭력과 강압에 의하여 쟁취한 것은 아닐까? 선양(禪讓)과 쟁탈(爭奪)에 관한 각각의 설화적 구성은 학파에 따라 강력한 논리적 기반을 가지고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상기해야 한다. 이러한 복선의 다이내미즘을 상실한 채 여태까지 『맹자』를 평범한 유교정통의 서물로서 그냥 낭송해왔기 때문에 『맹자』의 본의가 총체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유실된 것이다. 다음 제4장의 함구몽의 반론은 전국시대의 담론의 실상을 느끼게 해주는 매우 강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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