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까스로 달성군으로 출발하다
▲ 10월 4일(일) 현풍터미널 → 대구 달성군 하빈면 / 36.05KM
현세와 길이 엇갈렸기에 나 또한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9시 버스를 타지 못할 경우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9시 이후의 버스는 몇 시 차(1시에 있음)가 있는지 재빠르게 손재간을 부리며 검색하고 있었다.
▲ 현풍까지 가는 버스의 시간표다. 하루에 세 대만 다니더라.
어그러진 상황이야말로 싱그러운 삶의 축복
예전 같았으면 뭔가 계획대로 되어야 한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계획이 어그러진 상황에선 화가 많이 났었다. 2013년에 18회 부산영화제를 보러 갈 때도 주원이와 민석이가 버스 시간에 늦게 오는 바람에, 남부터미널에서 강남터미널로 옮겨가서 버스를 탔던 경험이 있었다. 제 시간에 온 사람들은 늦은 두 사람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낭비, 돈 낭비, 거기다가 감정 낭비까지 해야 했으니 화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급하게 일정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뒀어도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그날 오후의 일정이라곤 ‘초량 이바구길’을 걷는 것이기에 그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늦은 아이들에겐 뜨끔하게 혼을 내야겠지만, 그렇다고 감정까지 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 당시에 느꼈다.
그런 경험들이 여러 번 있다 보니, 이번엔 그렇게까지 감정의 동요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맘이 차분히 내려앉은 느낌이다. 이번 여행 같은 경우 예약된 숙소라곤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밖에 없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볼 수 있다. 현세가 던져준 ‘예상치 못한 상황’이란 돌 하나가 이래저래 수많은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스마트폰으로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던 그때 갑자기 내 앞에 한 그림자가 서더니, “종환쌤!”이라 외친다. 외부에서 듣는 익숙한 목소리,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들려온 내 이름에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바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현세가 있더라. 현세는 무언가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한 자세로 있었는데, 난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달리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동서울터미널 어떻게 가나요?”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고 대답했으나, 그 중 한 사람이 위치를 알고 있어서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때 시간이 8시 47분이었기에 서두르면 충분히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점이었다.
▲ 짧지만 길던 20분만에 다시 만난 현세. 그리고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 이로써 4인방의 영화팀 완전체는 다시 만들어졌다.
특명: 자전거를 버스 짐칸에 실어라
현세를 데리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더라. 승차장으로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끌고 간다. 터미널에서의 이색체험이다. 이미 시간은 55분이다. 5분 만에 자전거를 버스에 실어야 한다.
아침에 나올 때 ‘기사님이 자전거를 싣지 못하게 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었다. 한 대 싣는 거야 뭐라고 할 순 없지만, 무려 5대나 실어야 하니 말이다. 며칠 전에 세부계획을 세우러 세훈이가 운영하는 카페에 갔을 때 버스에 자전거를 싣는다고 하니, 세훈이는 “그렇지 않아도 단체로 싸이클 타시는 분들은 그렇게 버스에 싣고 많이들 가시더라”라고 말했었다. 그 말을 듣고 ‘진짜 자전거를 버스에 싣는 게 가능하긴 하구나’라고 안심하긴 했는데, 직접 부딪혀본 상황은 아니기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기사님은 우호적이었다. 자전거를 실을 수 있도록 모든 짐칸의 문을 열어주셨고, 거기에 덧붙여 “자전거 싣는 거야 싣는 거지만, 만약 고장 날 경우엔 책임 못 집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은 곧 승낙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안심하며 자전거를 싣기 시작했다.
버스엔 총 네 칸의 짐칸이 있다. 그 중 한 칸은 버스를 청소하기 위한 도구들이 있기 때문에, 세 칸에만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 다행히 이 날엔 버스에 사람이 별로 타지 않았고 당연히 짐들도 많지 않았다. 우린 자전거를 싣기 위해 앞바퀴를 빼어 부피를 최소한으로 줄인 후에 한 대씩 싣기 시작했다. 민석이와 준영이는 능수능란하게 앞바퀴를 분리했지만 재욱이와 현세는 해본 적이 없는지 쭈뼛쭈뼛 서 있더라. 그래서 나와 준영이가 도와주어 바로 분리할 수 있었다. 한 칸 당 앞바퀴만 뺀 자전거의 경우 2대를 실을 수 있었고, 페달까지 뺄 경우 3대까지 실을 수 있다. 우리는 세 칸을 쓸 수 있었기에 넉넉하게 자전거를 실을 수 있었다. 네 대의 자전거를 실었는데 시간은 벌써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 때문에 출발시간이 지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자전거는 힘껏 밀어 넣고 잽싸게 버스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자전거를 싣는 것이라 요령이 없어서 힘으로 구겨 넣듯 실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 요령이 없다보니, 그냥 우겨넣듯이 넣었다. 어찌 되었든 자전거를 싣고 버스도 제 시간에 탔으니 다행이다~
버스에 올라 좌석에 앉으니, 아침의 햇살이 내 몸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의자는 안락하고 햇살은 포근하다. 그러니 긴장이 일순간에 풀리며 졸음이 밀려오더라. 이제 시작일 뿐인데, 벌써부터 모든 여행이 끝난 마냥 맘과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헤매던 그 때, 불현듯 ‘짐칸에 실은 자전거가 버스의 흔들림에 망가지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만약 진짜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 할 텐가? 이미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을. 다 귀찮다, 그냥 지금은 맘껏 잠이나 자보련다.
▲ 드디어 진짜 출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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