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갈등상황에 대응하는 방식
▲ 10월 5일(월) 대구 달성군 하빈면 → 상주시 / 88.06KM
10시가 넘어 본격적인 출발했다. 아직도 81.53km를 달려야 하니,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다. 가는 길에 인증센터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자전거수첩에 인증도장을 찍었고, 칠곡보와 구미공단을 거치며 맹렬히 달렸다.
▲ 칠곡보에서 인증을 하고 잠시 쉬었다.
자전거 여행 중 첫 갈등상황 발생
그런데 그 때 감정이 부딪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름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리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던 민석이와 웃음도 많고 아이들과 금세 친해진 준영이가 부딪힌 것이다. 갑자기 민석이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며 소리치기 시작했고, 이에 질세라 준영이도 맞받아 화를 내기 시작했다. 육박전까지는 가지 않았고 그저 목소리만 높여 싸우고 있었기에 우린 어떻게든 둘을 떼어 놓아야만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장 절친이었던 두 사람이 싸우고 나니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아이들은 서로 친하기에 말을 거침없이 하기도 한다. 오늘 같은 경우 민석이가 리더인데, 길을 헤맬 경우 “넌 길도 못 찾냐?”라고 준영이가 장난스레 말했다. 평소엔 일상적인 상황이기에 그냥 장난으로 받아들이며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맞받아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같은 경우 민석이는 ‘리더를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잘 안내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열심히 지도를 찾으며 안내하고 있는데, 조금 실수했다고 그걸 비난하는 식으로 말을 하니, 그게 못내 섭섭하고 서운하게 느껴졌으리라. 그러다 보니 결국 폭발하게 된 것이다.
▲ 갈등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어찌 보면 여행 둘째날에 생긴 갈등은 우리에겐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그 사람의 역량을 알고 싶거든,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보라
8번째 후기에서도 썼다시피, 여행은 삶의 축소판이기에 갈등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 처했다고 자신을 자책할 이유도, 상대방이 문제라고 비난할 이유도 없다. 어찌 보면 ‘신은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는 말처럼 그 사람의 역량을 알아보기 위해 그만한 시련을 주시는 건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기에 갈등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적극적인 화해 방안을 모색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때론 인위적이지 않도록 감정이 아물 때까지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어색함을 견뎌내는 것도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 준영이는 먼저 갔기에, 세 명만 달려 간다.
이날 민석이와 준영이가 택한 방식은 어색함을 견뎌내며, 감정이 아물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이었다. 나 또한 인위적으로 화해를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싶진 않았기에, 그걸 그대로 놔뒀다. 준영이는 그때부터 달리는 순서를 무시하고 앞질러 가서 어느 일정 지점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식으로 달렸다.
▲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여행할 땐 작은 것도 크게 느껴지고 작은 것에도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분열된 영화팀, 그리고 다시 완전체가 된 영화팀
오늘은 상주에 있는 찜질방까지 가야 한다. 그러려면 자전거 길을 달리다가 낙단교를 지나 25번 국도로 달려야 좀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그래서 낙단교에 도착했는데, 준영이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더라. 그래서 민석이가 좀 더 검색해 보니 바로 앞에 낙단보가 있어서 “아마 준영이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현세는 무척 힘들어 하고 있었기에 리더인 민석이와 재욱이와 함께 준영이를 데리러 출발했다. 솔직히 민석이 입장에선 준영이를 데리러 가는 게 어색하고 못마땅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더이기에 아무런 불만도 없이 출발하더라.
▲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 영상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서로를 의식하되, 의식하지 않는 척.
낙단보에 도착하니 준영이는 계단에 걸터앉아 전화를 하고 있었다. 민석이는 싸워서 어색하기에 “가자!”라는 말을 못하고 있었고,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재욱이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서로 보고 있지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민석이와 재욱이는 서로의 자전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있었고, 준영이는 전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3분 정도가 흘러, 준영이가 전화를 끊고 내려오며 “현세는?”이라 안부를 물었고 함께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갈등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어제에 비하면 순조로운 편이고 날씨도 좋아 달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던 날이었다. 그 때 시간은 오후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미처 몰랐다. 조금 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이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 우리는 모처럼 영화팀이 완전체가 되었다고 기뻐하며 달렸던 것이다.
▲ 낙단교에 드디어 함께 모인 4명의 아이들. 이 때까지도 몰랐다. 어떤 일이 우릴 반기고 있을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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