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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22. 표 안에 갇힌 교사가 학생을 표 안에 가둔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22. 표 안에 갇힌 교사가 학생을 표 안에 가둔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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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표 안에 갇힌 교사가 학생을 표 안에 가둔다

 

 

 

10월 6일(화) 상주시 → 문경새재 / 62.04KM

 

 

한 시간 정도를 달리니 상주박물관이 보인다. 이미 박물관 안엔 초등학생들이 단체 견학을 하고 있었고, 박물관 앞산엔 어떤 공사를 하는지 포크레인이 브레이커로 돌을 뚫고 있어서 시끄러웠다.

 

 

 

상주박물관 스피드 퀴즈대회의 룰

 

이번엔 준영&현세가 한 팀, ‘재욱&민석이가 한 팀이다. 이곳에서 해야 할 미션은 퀴즈 대회다. 작년 명성황후 생가에서 이미 퀴즈대회를 했었는데, 그 때는 함께 공부를 한 후 내가 낸 문제를 팀을 정해 맞히는 식이었다.

그건 이미 해본 방식이기에, 이번에는 좀 다르게 진행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1. 두 명씩 한 팀을 구성한다. / 2. 박물관에 들어가 20분 동안 공부하여 중요한 단어를 문제지에 적는다. / 3. 상대팀이 내온 문제는 우리 팀이 풀어야 하는데, 한 명은 그걸 설명하고 한 명은 맞힌다. / 제한시간 4분 동안 10개의 문제 중 많이 맞히면 된다.’는 식으로 진행했다.

 

 

상주박물관 세미나동에 도착한 아이들.

 

 

 

시작부터 우리 망했어요라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에 대한 기본규칙을 알려줄 때만 해도, ‘아이들이 박물관을 샅샅이 둘러보고 공부한 후에 문제를 내겠지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애초부터 당신이 무얼 기대하든 접으슈라 외치듯 공부를 하기보다 대충 보며 단어만 적기 시작했다.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어느새 벌써 단어를 모두 적고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속마음을 물을 순 없었지만, ‘~ 날도 덥고 갈 길도 먼 데 여기서 그냥 쉬어요라는 말을 하는 듯 했다.

하지만 단어만 적는 게 핵심이 아니라, 상대 팀이 적어온 단어를 보고 맞히는 게 핵심이니 잠시 쉬고 공부할 거라 생각했다. 단어의 뜻을 알아야 설명도 하고 풀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면 좀 더 돌아다녀 보면서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라도 해라고 말했는데, 그건 대답 없는 울림이 되어 박물관 한 켠을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평가를 중점에 둔 교육의 한계를 보다

 

드디어 본격적인 퀴즈대결 시간이다. 얼마나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했고, 얼마나 재치 있게 설명하는지 지켜보자.

재욱&민석팀이 먼저 하게 되었다. 재욱이가 설명하고 민석이는 맞춰야 한다. 처음으로 나온 단어는 금동관이었다. 신라의 금속공예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유물로 왕자라는 신분을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금동관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설명을 재욱이는 전혀 하지 않는다. ‘단어를 적어 와라고 했을 때부터 공부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뜻을 몰라도 문제를 맞히는 건 어렵지 않아요~’라고 이미 생각한 듯 했다. 아마도 그런 계산이 깔려 있었기에 아까도 공부를 하기보다 그냥 쉬었던 걸 테다. 재욱이는 낱말퀴즈대회라도 되는 듯 한 글자, 한 글자를 풀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Gold”, “Bronze”, “미라가 살던 곳?”과 같이 설명 아닌 설명을 한 후, 그걸 이어 붙여 답을 말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재욱&민석팀이 문제를 맞히니, ‘준영&현세팀도 그대로 따라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평가식 교육의 한계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평가에 집착하다 보면, 빨리 맞히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각종 편법을 아무렇지 않게 쓰게 된다. 왜 알아야 하는지, 그게 뭔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걸 맞췄느냐, 못 맞췄느냐만 중요할 뿐이다. 얼핏 학창시절에 내용은 몰라도 정답을 맞히기 위해 앞 글자만 달달 외우던 때가 생각났다. 이걸 두문자암기법이라는 유식한 말로 불렀으니, 평가식 교육의 폐단을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런 상황을 동섭쌤은 공부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공부 잘하는 사람은 시험이 끝난 다음에 잊어버리고, 공부 못하는 사람은 시험보기도 전에 잊어버립니다.”고 우스갯소리로 표현했었다.

 

 

정답 맞추기 식 퀴즈대회 영상. 나름 편집했지만, 보면서 참 민망하긴 하다.   

 

 

 

‘×’가 아닌 를 받기 위해 애쓰다

 

퀴즈대회가 끝나고 오늘 상주박물관에 와서 봤던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어?”라고 아이들에게 물으니, 누구 하나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상주박물관은 그저 미션을 하기 위해 온 곳이었을 뿐, ‘궁금한 곳’, ‘알고 싶은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건 아이들을 비판할 게 아니라, 교사인 내가 비판 받아야 할 일이었다. 상주에 왔으면서도 상주에 대한 어떤 심상을 전해주지 못했으며 그저 미션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만 하게 했으니 말이다.

아래에 인용한 시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쓴 시인데, 어찌 보면 지금 우리네 학생들의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교실 뒤에 늘어 붙은

갖가지 표들은

우리들의 몸을 대신합니다.

칸에 갇혀 있는 ○△×

우리들의 몸을 대신합니다.

우리들의 일상과

모든 일들은

갖가지 표들이 확인시키고

우리들은 모두

칸에 갇혀서

표 받기를 소원합니다.

교실 뒤에 늘어 붙은

갖가지 표들을

나는 미워합니다.

그 표 안에 갇혀

빠져 나오지 못하는 우리가 원망스럽습니다.

-, 이상욱, 에듀니티, ‘이오덕 삶과 교육사상’ 14강 중

 

 

이오덕 선생님은 '진솔한 시가 최고의 시'라고 표현했는데, 아이들의 그 시선으로 풀어낸 시는 정말 정확하다.

 

 

교실에서 행해지는 교사들의 평가는 ‘×’로 표시된다. 당연히 앞의 것은 승인을 나타내기에 좋은 것이고, 뒤의 것은 거부를 나타내기에 안 좋은 것이다. 그걸 교사가 교실 뒤에 붙여 놓은 이유는 늘 보면서 분발하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기엔 그와 같은 긍정적인 의미 외에 끊임없이 경쟁하라는 속내가 감춰져 있음을 어린학생도 눈치 채고 있다. 그러니 갖가지 표들을 나는 미워합니라라고 속마음을 얘기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그 표라는 게 단순히 생활의 한 단면만을 나타낸 표가 아니라 우리들의 몸을 대신합니다. 우리들의 일상과 모든 일들은 갖가지 표들이 확인시키고라며 학생 개개인의 의식을 옥죄며 일상을 통제하는데 사용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난 위의 시에서 교육이란 이름의 폭력을 읽을 수 있었고, 끊임없이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려는 ‘24시간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만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아이들을 탓할 게 아니라, ‘만을 좋아하도록 만든 장본인이 교사임을 반성해야 한다.

나 또한 이번 스피드 퀴즈미션을 통해 이미 만을 좋아하도록 길들어진 아이들의 그 욕망을 부추기고 편법을 써서라도 한 문제라도 맞히는 게 낫다는 마음을 갖도록 만든 것이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 또한 그 표 안에 갇혀서 살아왔기에 그런 식의 활동 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이 한계라 할 수 있다.

여러모로 상주박물관에서의 퀴즈대회는 다시 한 번 교육에 대한 생각을 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팀 아이들에겐 다시 한 번 미안하다.

 

 

아이들을 촬영하기 위해 바닥에 앉았다.

 

 

인용

목차

사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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