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자전거 여행을 영화팀의 집단지성
▲ 10월 6일(화) 상주시 → 문경새재 / 62.04KM
상주박물관에서 자전거 도로로 가기 위해서는 낮은 언덕을 넘어야 한다.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오를 때 꽤나 애를 먹었다. 그래도 조금만 끌고 올라가니 바로 정상에 도착하더라.
경천대 내리막길에서의 사고
곧바로 펼쳐지는 내리막길은 자전거 길을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 산책길을 자전거 도로로 포장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경사가 매우 급하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온 우리들은 당연히 브레이크가 잘 들 거라 생각하며 그냥 타고 내려간다. 나도 처음엔 뭣도 모르고 타고 내려가다가 가속도가 순식간에 붙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려서 끌고 갔다.
조금 내려가니 모래가 쌓인 곳에 재욱이가 앉아 있더라. 무슨 일인가 했더니, 현세가 “재욱이 형이 브레이크를 잡지 못하고 날랐어요”라고 말한다. 브레이크의 장력이 생각보다 좋지 못해 속도가 줄지 않아 모래에 부딪힌 것이다. 그나마 모래여서 다행이지, 난간에 부딪히거나 굴러 떨어졌다면 크게 다칠 뻔 했다. 그래서 재욱이에게 “괜찮아?”라고 물어보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날긴 했는데, 살짝 긁히기만 했어요”라고 말하더라. 그곳에선 준영이 자전거에만 디스크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어서 타고 내려갈 수 있었고, 나머지는 천천히 끌고 내려가야 했다.
▲ 여기가 낮은 언덕의 정상이다. 바로 옆에 낙동강이 흐른다. 하지만 여긴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자전거 타고 가면 매우 위험하다.
재욱이의 아직은 부족한 리더십과 영화팀의 집단지성
상주에서 문경으로 달리는 길은 양수리에서 북한강을 따라 청평으로 가는 길과 느낌이 비슷했다. 분위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적절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이라 달리는 맛이 있다는 점이 그랬다. 어제 달렸던 길은 완전한 평지라 그냥 쭉쭉 뻗은 도로를 달리는 밋밋함만 느껴질 뿐이었는데, 오늘은 조금 힘들긴 해도 달리는 맛은 확실히 더 있다.
재욱이는 박물관으로 향할 때만 해도 ‘내가 리더다’라는 인식은 있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미션을 하면서 그런 부분들이 약간씩 옅어졌다. 아무래도 한 번도 누군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 갑자기 그런 생각을 가지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위급상황이 생겼을 때, 재욱이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 분위기가 북한강 자전거 길과 비슷하다.
달리는 도중에 현세 자전거 앞 기어에서 체인이 빠졌다. 아무래도 자전거를 정비하지 않아 기어변속기가 뻑뻑한 데다, 기어변속에도 미숙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체인이 빠졌는데도 그걸 모르고 마구 페달을 굴러서 크랭크 사이에 끼었다. 당연히 그런 상황에선 리더인 재욱이가 와서 어떤 상황인지 물어야 하고, 고쳐 주던지 주위 친구들에게 도와주라던지 했어야 맞다. 그런데 현세가 갑자기 멈추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재욱이도 멈추긴 했으나, 옆에 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민석이가 본격적으로 고쳐주기 시작하자, 지켜보던 재욱이는 그냥 휑하니 가버렸다.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나의 일이다’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기에, 실망스러운 광경이었다. 어찌 보면 재욱이도 이렇게 리더의 역할을 자주 맡으며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을 서서히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동섭쌤은 일전의 강의에서 “‘이건 모두의 일이기에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른이고, ‘내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아이입니다”라는 말을 통해 성숙한 어른이 되도록 하는 게 교육의 본질이라고 말했었다. 재욱이도 이런 여행을 통해 좀 더 ‘이건 모두의 일이기에 내가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서서히 그렇게 성장해 갈 수 있으면 된다.
그래도 이번 일은 하나의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누군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는 한다’는 세상의 묘한 이치를 확인시켜줬기 때문이다. 재욱이가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고 빠진 자리는 민석이가 메워주었다. 그 때문에 현세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개미는 한 마리 한 마리는 너무나 약한 존재다. 하지만 군집으로 볼 경우 각자의 역할이 나눠져 있으며 유기적으로 움직이기에 가장 오랜 동안 종을 보존하며 살아올 수 있었다. 그걸 ‘집단지성’이라 부르던데, 이처럼 우리 영화팀도 각자는 부족한 게 많지만, 그걸 서로 보완해주며 ‘집단지성’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 현세 체인이 엉켰다. 처음엔 재익이도 민석이도 함께 지켜봤으나 민석이가 도와주자 재익인 그냥 가버렸다.
세끼를 국밥을 먹으니, 국밥 냄새만 맡아도 어질어질하다
3시가 넘어가는데도 아직 30km정도 남았더라. 전속력으로 달리면 3시간 만에 갈 수 있지만, 점심도 아직 먹지 못했고, 현세도 체력이 거의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조금 달리다가 문경 근처의 정자에서 쉬면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게 되었다.
재욱이가 앞에 나와 ‘점심을 먹고 갈 것인지, 그냥 바로 가서 쉴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점심을 먹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더라. 그러면 메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물으니, 서로 먹자고 하는 메뉴는 달랐지만, 한 가지 의견은 공통적이었다. 바로 ‘국밥은 빼고’라는 의견 말이다. 어제 점심에 국밥, 저녁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결식, 오늘 아침도 국밥을 먹었기 때문에 서서히 물릴 만도 했다.
그래서 문경 외곽에 진입하자마자 음식점을 찾아봤는데 가격대가 맞으면서 먹을 만한 것이 없더라. 제육볶음을 해준다는 식당이 보여 그리로 가봤는데, 단체 손님이 예약되어 있다며 다른 곳으로 가보란다. 그래서 열심히 찾아봤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국밥을 먹어야만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신물이 날 정도로 국밥이 싫진 않다. 그래도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주기에 당분간 국밥을 먹을 일은 없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4시 30분이 넘어서 늦은 점심을 먹지만 배가 고프기에 허겁지겁 들이켰다.
▲ 국밥집을 빼고 찾아 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서 점심으로 국밥을 먹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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