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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17장 - 1. 고베 대지진 애도사(哀悼辭)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17장 - 1. 고베 대지진 애도사(哀悼辭)

건방진방랑자 2021. 9. 1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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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고베 대지진 애도사(哀悼辭)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신문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다시피 지금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일본에서 유학하는 동안 지진을 직접 겪어봐서 잘 아는데 그 지진이라는 것은 아주 끔찍한 일이죠. 우리가 서있는 땅을 믿을 수 없다는 것, 땅이 흔들린다는 것은 참. 여러분들은 실제로 경험을 한 번 해봐야 이해할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는 그 지진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일본 문화, 그리고 일본사람들의 국민성이라는 것은 지진을 빼놓구선 이해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그렇게 지진이 자주 일어나도 일본이 경제적으로 크게 흔들리거나 망할 지경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일본은 지진을 당하면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죠. 하여튼 관동대지진 때, 일본은 그 지진 속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한국인이 우물에 독을 탄다 이래 가지고 한국인을 엄청나게 죽였는데, 그런 과거를 생각하면 요번 지진 때도 그런 관동지진 때와 같은 학살이 일어나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어느 정도 개화되어 일본이 그런 끔찍한 만행을 저지를 리는 없고 신문에서도 보도하듯이 질서정연한 구조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학생들은 이런 참사를 볼 때 민족감정을 앞세워서, 남의 일처럼 대할 게 아니라 항상 보편적인 인류애를 가지고 죄 없는 사람들이 자다가 하루아침에 당한 고통스런 현실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수돗물이 하루 안 나와도 엄청나게 불편한 문명의 현실을. 그러한 것들을 생각해 봤을 적에 우리는 모두 문명을 걸머지고 사는 하나의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그들의 괴로움을 나눠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강의 들어가기 전에 고베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모두 묵념을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잠깐 다 같이 일어서서 묵념하도록 하지요. 묵념.

 

 

 

  

 

이웃나라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4천여 명이 생명을 잃고 도시전체가 폐허가 돼 버린, 전후 최대의 피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원래가 지형적으로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생각과 함께 묘한 민족감정이 얽혀있어, 우리들 중 많은 사람은 소박한 한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슬픔과 안타까움이 왠지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지 않는 것을, 부끄럽지만 어쩌면 솔직한 심정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원폭 수십 개분의 힘으로 밀어닥친 대지진은 전쟁 상황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참사임에도, 이미 끔찍한 대형사고를 사흘이 멀다하고 겪어온 우리들의 딱딱하게 굳은 감성은, 남의 나라 일에 경악하고 혀를 차는 것조차 새삼스럽게 여길 만큼 불인(不仁)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 도올서원의 사람들은 이번 지진의 참화를 계기로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이 어디로 진행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고자 합니다. 자연과 문명이 부딪치는 가장 곤혹스런 접점에서, 우리 삶의 양식을 깊이 돌이켜 보고 성찰하는 자세를 익힐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 사회를 개변(改變)해 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천지(天地)가 열리면서, 위에서 세상을 덮고 있는 하늘과 짝하여 아래에서 만물을 싣고 있는 어머니의 땅이 생겨날 때, 그 속에는 자연의 힘이 항상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그 힘은 인류의 곁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고, 삶의 기초적 조건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인류가 모듬살이를 시작하고 지혜가 쌓이게 되자, 사람들은 자연을 관찰하고 예측하여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스릴 줄도 알고 피할 수 없는 사태는 미리 대비할 능력도 키웠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이룩한 문명의 울타리 속에 안주하면서 인간 전체의 몸뚱이는 점점 비대해졌고 동시에 자기 몸뚱이를 지탱하기 위한 지혜도 늘어만 갔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 끔찍한 대지진을 보십시오. 일본문명이 인류가 추구하는 과학기술에 뒤떨어져서가 아닙니다. 일본 국민이 급작스런 천재지변에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현대 인간의 지혜의 결정인 첨단과학 문명을 기반으로 거의 완벽한 대비책을 구축했다고 자타가 인정해 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이번 참상을 바라보는 우리들을 더욱 당혹스럽고 더욱 두렵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우리가 목표로 하는 현대도시문명의 상징이던 고층빌딩, 밀집된 인구, 거대한 고가도로망, 많은 인구를 부양키 위해 도심에 집중된 에너지 탱크는 한번 터져 나온 재앙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팽팽한 고무풍선을 바라보는 긴장감마저 느끼게 되는 우리 문명의 삶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연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비대한 공룡을 연상합니다. 미세한 자극에도 적응하기가 어려운, 허약체질의 현대문명을 발견합니다.

 

우리 도올서원의 사람들은 동일한 문명의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지진의 참화에 고귀한 생명과 삶의 구체적 환경을 잃어버린 수천, 수만의 고베 시민들, 그리고 우리 교민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괴로움과 절망감을 한 자락이라도 우리 자신의 문제로 바꾸어보는 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같은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문명 속의 삶의 양식을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출발점이 되리라 믿습니다.

1995.1.18 도올서원 재생

 

 

, 재생 전종욱 군의 애도사를 끝으로 묵념을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열시부터 황병기 선생님의 국악강좌가 있겠습니다. 상당히 좋은 강좌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전까지 중용(中庸)을 잠깐 하겠어요. 그리고 지난번의 귀신장(鬼神章)은 여러분들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여깁니다. 내가 몸이 좋지 않아 충분한 강의는 못했어도 기본. 핵심적인 내 생각은 전달했는데, 귀신장은 상당히 중요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으니깐 내 지난번 강의를 깊게 검토를 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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