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를 제거하기 위해 권력이 작동하다
김대중은 첫 번째 문턱인 한국전쟁과 부산정치파동을 겪으며 욕망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현실적인 모습에서 정치를 통해 썩어빠진 현장을 바꾸겠다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난을 헤쳐 나가며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할지라도, 냉혹한 현실 속에서 그런 이상적인 생각을 고집하기는 힘들다. 여차하면 ‘삶이란 원래 그런 거야’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상적인 생각을 회의하며, 일제강점기에 ‘이 나라가 독립이 될 것 같냐?’며 친일 행위를 서슴지 않고 하던 사람처럼 지독히 현실의 욕망만을 따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도구란 무수한 담금질을 거쳐야 하듯, 사람도 여러 문턱을 넘으며 자신의 생각을 갈무리할 계기들이 필요한 것이다.
▲ 무수한 담금질이 강한 쇠를 만든다. 사람에겐 문턱을 넘는다는 게 담금질 같은 거다.
두 번째 문턱의 맛보기, 교통사고
그에게 두 번째 문턱은 필연적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정치인 생활은 그리 녹록치 못했다. 몇 번 낙선을 했고 아내도 잃었다. 그럼에도 인제 재보궐 선거에서 뽑혔고 목포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실력 행사’가 있었음에도 당당히 맞서 이기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 67년 6.8 목포선거에서 박정희의 지원유세와 국무회의를 목포에서 여는 등 관권 선거를 했음에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이겼다.
그런 만큼 그는 유명해졌고 그에 비례하여 정적에겐 제거할 대상이 됐다. 이것이야말로 한유가 말한 ‘움직이면 문득 비방이 따르고, 명예 또한 따른다(動輒得謗, 名亦隨之 -『進學解』)’는 말과 같이, 명예와 비방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따라 붙는 격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선거 유세를 하러 광주로 향하던 중 교통사고를 빙자한 살인사건을 당한 것은 두 번째 문턱의 맛보기에 해당된다. ‘네 목숨은 내 손 안에 있다’는 섬뜩한 권력의 충고였으니 말이다. 지금도 내가 하는 것들이 권력에 위배되는 행위여서 언젠가 후한이 될지도 모른다면, 알아서 ‘자기검열’을 하곤 한다. 우린 이명박 정권 시절에 있었던 ‘미네르바 사건’을 보면서, 내가 그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음에도 알아서 설설 기었던 경험이 있다. 그에 반해 그는 이미 권력의 따끔한 충고를 몸소 맛봤기에 오히려 더 복지부동하며 권력의 입맛에 맞춰 살 수도 있다.
▲ 71년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그는 발을 절게 된다. 권력의 눈에 보일 정도로 치사한 경고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문턱, 죽음의 순간 찾아온 삶에 대한 갈망
그러나 그는 주눅 들지 않고 일본과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한국의 진실’을 폭로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권력이 아니다. 국경까지 넘나들며 권력의 시선과 폭력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때 발생한 ‘김대중 살해 미수 사건’이 바로 두 번째 문턱이라 할 수 있다.
현장에서 살해하려던 계획이 변경되어 배에 실려 바다에 떠있게 되었다.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서 ‘쥐도 새도 모르게’ 그를 바다에 빠뜨려 죽일 생각이었나 본데, 그때 정체불명의 비행기가 나타나는 바람에 그렇게 하진 못한다. 전 세계의 이목이 ‘김대중 납치 사건’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됐던지, 그들은 그를 죽이지 못하고 한국의 시골민가를 거쳐 그의 집 앞에 버리고 도망가게 된다.
글로만 읽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소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까딱 잘못하면 이승과 인연을 끊어야만 하니,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렇다면 그는 초인이라도 된단 말인가? 아니었다. 그도 사람이었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그만큼 삶에 대한 욕구가 컸을 뿐이다. 바다에 빠지기 직전 ‘살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된다’고 체념을 했다가 이내 맘을 바꾸며 속으로 외쳤다.
아니다.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 상어에게 하반신을 뜯어 먹혀도 상반신만으로라도 살고 싶다.(『Ⅰ』 313p)
남루한 삶일지라도 산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그 순간 ‘삶’을 떠올렸고, 해야 할 일도 많다는 것을 떠올렸다. 처절했기에 더욱 진심어린 고백이다. 그가 살게 된 건 기도의 힘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 죽음의 고비를 넘고 자택에 돌아와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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