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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김대중 자서전 - 2. 첫 번째 문턱을 넘으며 정치를 하게 되다 본문

연재/작품을 감상하다

김대중 자서전 - 2. 첫 번째 문턱을 넘으며 정치를 하게 되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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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 번째 문턱을 넘으며 정치를 하게 되다

 

김대중이란 인물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인 1997년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선(15대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었고,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란 책을 읽으며 관심을 가졌었다.

물론 정치의 자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어렴풋이 아는 정도에 불과했으니, 이성적인 판단보단 한 인간에 대한 관심이 앞섰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 시각으로 그의 책을 읽다 보니, ‘절망 극복’, ‘정의는 꼭 승리한다와 같은 메시지로 읽혔던 것이다.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복귀하여 마지막 대선 도전을 하던 때다.

 

 

김대중, 그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그렇게 어렴풋이 알던 사람이, 그 후에 대통령이 되었고 IMF 조기졸업의 명암을 동시에 걸머쥔 사람이 되었다. 긍정적인 평가는 어수선한 상황을 빨리 대처하여 정상화시켰다는 것이겠지만, 그로인해 사회의 부조리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라며,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었다. 그래도 서민들은 그 마음을 받아 함께 금을 내며 IMF 졸업을 빌었다.

 

 

맹자孟子라는 책에 약을 먹었는데 어질어질하지 않으면, 그 병은 낫질 않는다(藥不瞑眩, 厥疾不瘳. -滕文公章句1).”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은 어떤 상황이든 치료가 제대로 되려면 그만큼 아파야 할 만큼 아파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닥친 IMF라는 것도 어찌 보면 한국사회의 병폐, 대기업 위주의 경제 성장론의 폐해로 인한 것이다. 그러니 그런 부조리를 좀 더디더라도 그 시기가 많이 힘들더라도 잘 들여다보고, 천천히 바로 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속전속결의 원칙으로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전에 빨리 벗어날 생각만 했으니, 병이 낫기보단 더 심해지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로인해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선봉이 되어 극심한 경쟁주의로, 승자독식주의로 흐르게 됐다.

 

 

 

그 당시가 얼마나 첨예한 현대사의 한 복판이었는지가 드러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신화나 영웅전이 아닌, 인간 김대중에 포커스를 맞추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모두 다 깡그리 부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는 양심과 진심을 가지고, 대한민국이란 사회를 위해 애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나마 여전히 존경 받는 인물로 순위 내에 꼽히고 있으며, 2009년에 그가 서거했을 땐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추모의 열풍을 만들기도 했다.

사람인 이상 완벽할 순 없다. 그 또한 사람이기에 실수도 하고, 잘못된 판단도 하며, 그게 여러 사람에겐 엄청난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그렇기에 김대중의 삶을 돌아보며, 그를 포장하자는 것도, 영웅의 삶으로 만들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가 지금의 나에게 어떤 메시지로 읽히는지, 그걸 통해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그의 영웅담이 아닌, 그의 인간담을 나누고 기억할 때다.

 

 

 

첫 번째 문턱, 전쟁에 휩쓸리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김대중 자서전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내가 이 자서전을 읽는 방식은 그가 지나온 문턱들을 함께 보며, 그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서술해갈 것이다.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종종 느닷없이 행운이나 불행이 찾아오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느닷없이 우리의 삶을 뒤흔들어, 우리를 전혀 다른 존재로 바꾸어놓기도 한다.

-아홉살 인생, 위기철 지음, 청년사, 143p

 

 

위의 내용을 통해 문턱이란 어떤 것인지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문턱은 어쩌면 내 안에 감춰진 참다운 나를 되살리는 한계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한계 영역에 다다르면 벌벌 떨며 두려워할 수밖에 없지만 그걸 넘어서는 순간, 완전히 다른 내가 되기도 한다.

 

 

문턱이란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one Way Ticket 같은 거라 할 수 있다. 넘어보면 그때서야 비로소 안다.

 

 

그에게 첫 번째 문턱은 목포 형무소에 갇혔을 때다. 한국 전쟁 당시 그는 인민군에 의해 처형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미 100여 명이 끌려 나가 처형되었고 그는 그 다음에 처형될 80여 명 속에 끼어 있었다. 삶과 죽음이 한 끗 차이인 살벌한 상황이었고, ‘인생이란 무언가?’에 대해 의문이 샘솟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신의 도움을 받았을까? 그는 다행히도 다른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도중 인민군이 철수하는 바람에 살 수 있었다.

그 후 기지를 발휘하여 감옥에서 탈출한다. 그 순간 그는 밤하늘에 뜬 둥근 달을 보며 그 달빛은 세수를 한 번도 못한, 개구리처럼 배만 튀어나온, 수인복을 입고 있는 나를 비추고 있었다.(『Ⅰ』, 80p)”고 감회를 토로한다.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고, 여태껏 당연한 듯 누리며 살아온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하며 살아 있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목포역 주변과 목포 옥사의 모습. 여기서 그의 첫 번째 문턱이 시작됐다.

 

 

 

첫 번째 문턱은 시야를 넓혔다

 

첫 번째 문턱을 넘으며 전쟁의 참혹함, 이념의 허무함, 정치의 무능함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그 문턱을 넘으며 그는 더 이상 혼자만의 안위를 위해 살아선 안 됨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맡겨 세상이 바뀌길 기대하기보다 직접 자신이 정치를 하여 세상을 바꾸기로 맘먹은 것이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내가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하나의 사변과 또 하나의 사건을 겪으면서 이다. 바로 한국 전쟁과 부산 정치 파동이었다. () 지도자가 깨끗하지 못하면 사회가 혼탁하고, 국민을 기만하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것을 느끼고 보았다. 정치가 바르지 못하면 인권은 짓밟히고 생명과 재산도 지켜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사선을 넘으며 가슴에 몇 번이나 새겼다. (『Ⅰ』, 90~91p)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남인이었지만 정조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가 설계하여 만든 화성행궁은 바로 그런 현실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봐야 정조의 신하에서 크게 벗어날 순 없었다.

하지만 신유박해辛酉迫害(1800)로 천주교에 경도되어 있던 그의 가족이 박해를 받으면서 그는 한 순간에 폐족이 되었고 귀향까지 가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위기는 곧 기회다라고 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공직에 있을 때보다, 강진으로 귀향 가서 500여권의 책을 쓰게 되었을 때에 오히려 정조의 신하에서 벗어나 공생애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때론 현실의 급격한 변화가 그걸 겪어야만 하는 당사자에겐 다른 시각을 갖게 하고, 삶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도 한다.

이처럼 그도 한국전쟁이란 참혹한 상황들과 부산정치파동이란 현실을 겪으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성공에 대한 욕구보다도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것이야말로 자아가 확장된 순간이라 표현할 수 있다.

 

 

이승만의 장기집권 야욕은 정치파동을 불렀다. 이럴 때마다 사람들은 정치를 혐오하게 된다.

 

 

인용

목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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