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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김대중 자서전 - 1.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본문

연재/작품을 감상하다

김대중 자서전 - 1.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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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한 사람을 추억하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왜곡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사람이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면 그럴 위험성은 더 커지게 된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왜 추억하는 일 자체가 왜곡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기억을 통해 재구성하는 걸 추억이라 한다. 그런데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과정 속에 생각이란 필터로 걸러지고 이상화된 관념으로 치장되기 때문에 추억은 사실과 달라진다. 그래서 얼렁뚱땅 흥신소라는 드라마에서는 아빠에 대해 좋은 추억을 지니고 있던 은재가 기억을 되찾으며 그 추억이 미화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기억은 추억을 배반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추억이란 때때로 이처럼 무서운 것일 수도 있는 거다.

 

 

이 드라마에서 '기억은 추억을 배반한다'는 말이야말로, 추억의 위험성을 제대로 나타내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흔히 과거는 지나오면서 함께 경험한 일이기에 객관적인 사실로 기억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경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걸 현재에 다시 기억하려 하는 순간 현재의 시선, 과거의 수많은 내용 중 기억하고 싶은 내용만을 취사선택하려는 필터에 따라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그래서 김용옥 선생은 그의 책에서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모든 옛날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며, 현재적 실존의 관심을 떠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역사철학의 관점을 도출해낼 수 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All history is contemporary)”

-사랑하지 말자, 김용옥, 통나무출판사, 2012, 58~59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는 말이 정곡이라 할 수 있다. 나의 관점과 현재의 시선, 그리고 무얼 중점적으로 기술할지 선택하는 필터에 따라 과거는 현재의 이야기로 쓰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 정권의 국정화 교과서 논란은 더 이상 논란이 아닌, 문제 덩어리라 할 수밖에 없다. 역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검인정제를 하나의 관점, 국가가 지정해주는 관점으로만 풀어내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건 하나의 절대화된 관점만을 허용한다는 것이기에, 어찌 보면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역사철학의 지평이 없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과거는 과거로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쓰여지고, 다시 인식된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보도 자료나 자서전을 통해서 추억하는 일은 괜찮지 않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객관적이라는 말을 대는 순간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린 같은 내용이어도 보도하는 신문에 따라 얼마나 내용이 달라지는지, 자서전을 통해 얼마나 개인의 신화(영웅전)을 만들려 하는지 보아 왔기 때문이다. 객관은커녕 주관적인, 너무도 주관적인것만을 보았을 뿐이다.

 

 

자서전을 통해 개인의 영웅전을 쓰는 일이 흔하다. 그걸 어떻게 객관적이라 할 수 있을까?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낼 때 사실이 된다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추억하지 말라고 주문한다면 그건 아예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나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방법을 통해 왜곡과 추억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연암이 살았던 조선 후기의 제문祭文들은 사람 이름만 바꿔 써도 될 정도로 천편일률적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추억=왜곡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만하다. 그런 시대적인 한계 속에서도 연암은 아래와 같은 파격적인 문장으로 제문을 시작했다.

 

 

살아 있는 석치라면 함께 모여 곡도 하고, 조문도 하며, 욕도 하고 웃기도 하며

生石癡, 可會哭可會吊, 可會罵可會笑. -祭鄭石癡文

 

 

모든 제문이 하나의 형식으로 생몰연대를 쓰고 어디까지 벼슬했는지를 써나갈 때, 연암은 벗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을 가감 없이 써나갔다. 살아 있다면 인간적인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다는 말로 시작하는 글을 썼으니, 이건 필시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레퀴엠requiem이라 할 수 있다.

연암이 사람을 추억하는 방법은 사람에 대한 들끓는 감정을 이성이란 필터로 걸러내지 않고, 후대의 평가란 시선으로 꾸며내지 않으며 서술해 나가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풀어낼 수만 있다면, 비록 자서전 자체가 주관적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그 사람의 장단점을 볼 수 있게 된다.

 

 

 '백탑시파'는 백탑 서쪽이 이들의 주무대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석치 등이 이 모임을 주도하며 '북학사상'을 폈다.

 

 

 

김대중 자서전이 건빵을 읽다

 

이렇듯 연암의 방법에 착안하여 지금부터 김대중 자서전을 읽은 소감을 써보도록 하겠다. 물론 김대중 자서전자체가 하나의 현대사이며, 그걸 읽고 독후감을 쓰는 나의 글도 김대중 선생의 기록으로 본 건빵의 현대사 이야기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 나의 시선과 나의 언어로 김대중 선생을 독해낼 수 있을지, 그걸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 할 수 있다. 과연 그를 읽으며, 나는 어떤 삶을 생각하게 될 것인가? 그게 무척이나 기대된다.

 

 

그를 추억하는 일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팔팔한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인용

목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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