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가라시 코지, 블러드 스테인드로 자신을 증명하다
지난 6월 18일에 블러드 스테인드라는 게임이 발매되었다. 이 게임은 ‘악마성(일본판 제목)’이나 ‘캐슬베니아(미국판 제목)’로 불리던 게임을 만든 이가라시 코지(이하 IGA)를 만들었던 개발자가 코나미를 사직하고 나와 만든 게임이다.
월하의 야상곡과 창월의 십자가
악마게임은 역사가 깊지만 내가 처음 이 게임을 알게 된 건 1997년 당시에 발매된 ‘월하의 야상곡’이란 게임을 통해서다. 그 전까진 그저 횡스크롤 액션게임으로 적의 패턴을 외워 진행해야 했던 게임이었는데 이때부터 맵을 하나씩 밝혀가며 성장을 해나가고 그에 따라 스킬이 늘며 전체맵을 정복해나가는 ‘메트로바니아’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게 됐다. 그러니 조작을 능숙하게 하느냐의 피지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느긋하게 캐릭터를 성장시키며 찾아가느냐는 궁금증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땐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악마성을 하며 던전을 탐험해가는 재미에 푹 빠졌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늘 여러 게임을 통해 게임을 하던 시기를 지나 게임에 대한 흥미가 급속도로 사그라들었고 여러 가지로 할 일도 많아졌다. 그러니 게임은 점차 어릴 때의 추억 정도로 남아 있었는데 작년에 임용시험이 끝나고 시간이 남게 되자 자연스레 게임을 찾게 됐고 NDS의 게임을 스마트폰으로 구동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Drastic이란 에뮬을 샀고 자연스레 ‘창월의 십자가’란 게임을 하게 됐다. 예전에 게임기로도 했던 게임이지만 오랜만에 다시 하니 감회가 새로웠고 ‘이젠 더 이상 게임을 해도 흥미가 안 생긴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게임을 해보니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한 달 내내 이 게임에 푹 빠져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IGA와 메트로바니아
IGA는 바로 악마성의 게임성이 크게 바뀐 ‘월하의 야상곡’부터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전혀 새로운 악마성을 만들어냈고 그런 성취를 밑바탕 삼아 ‘메트로바니아’로 불리는 여러 악마성 게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니 ‘악마성=IGA’라는 공식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던 IGA가 2014년에 코나미라는 게임 회사를 퇴사하게 되면서 ‘악마성’ 후속작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게임은 광범위한 팬층을 지니고 있진 않지만 나처럼 오랫동안 게임을 해온 사람들은 후속작을 볼 수 없게 됐다는 사실 때문에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그때 ‘악마성의 정신적 후속작을 만들겠다’는 캐치 프레이즈를 걸고 모금을 하기 시작했으며 2015년 6월 13일에 킥스타터 모금에 돌입했으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어 게임 제작에 실질적으로 들어가게 됐다.
▲ 나영석 피디와 비슷한 포스가 흐른다.
그렇게 제작에 들어갔고 원래 발매일은 2017년 3월이었지만 게임의 완성도가 높지 않다고 판단하여 2018년에 발매하겠다며 발매 연기를 하기에 이른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론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며 원성을 사고 모금했던 돈을 환불해달란 요구들이 빗발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재밌게도 이 당시에 사람들은 ‘차라리 퀄리티를 높여 제대로 된 게임이 나오는 게 중요하다’며 무한정 이해해줬고 IGA를 격려해줬다. 그건 곧 IGA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가 만드는 게임은 잘 나올 거란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한 번 더 발매연기가 되어 2019년으로 연기가 되었고 결국 2019년 6월에 발매를 하게 되었다. 이미 이 게임 이전에 록맨의 정신적 후속작을 만들겠다며 호기롭게 킥스타터 모금을 했고 그에 따라 발매된 마이티 넘버 9이란 게임이 있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저열한 퀄리티로 게임을 발매하며 모금해준 사람들의 기대를 완전히 짓밟았을 뿐만 아니라 킥스타터 게임들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켰다. 이런 나쁜 선례가 있는 상태에서 두 번의 발매 연기를 거듭한 끝에 발매된 블러드 스테인드라는 게임은 과연 어땠을까? 솔직히 게임이 발매되던 날, 마치 임용고시 결과를 보기라도 하는 듯 엄청 떨렸다. 마이티와 같은 경우라면 ‘역시 게임은 정식 게임사에서 만드는 것만이 최고’라는 인식이 강화될 것이고, 기대만큼의 게임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라면 ‘역시 악마성은 IGA’라는 칭송을 듣게 될 것이니 말이다.
발매된 게임은 자잘한 버그가 있음에도 게임성 하나만큼은 ‘역시 IGA’라는 칭송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게임은 ‘월하의 야상곡’에서 그대로 가져왔으며 시스템은 NDS로 발매된 악마성들의 장점들을 잘 섞어 놓았으니 말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푹 빠진 사람들
이번에 발매된 게임을 보면서 ‘전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전문가란 어느 분야에 있어서 자신만의 실력을 지닌 사람들을 말한다. 그건 결코 학문적 영역으로 국한되지 않으며 IGA와 같은 게임의 전문가도 있는 것이고 각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탁월한 기술이 있다면 여러 분야의 전문가도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포크레인으로 붓글씨도 쓰고 계란도 살짝 깨는 정도의 기술을 보여준 방송을 봤었다. 바로 이분들이야말로 전문가로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IGA는 모금을 통해 자신의 이름값을 충분히 증명했고 4년 간 한 게임을 개발하며 사람들의 커질 대로 커진 기대를 보란 듯이 충족시켰다. 분명히 게임을 만드는 중간중간에 이러다 사람들이 실망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과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한 길만을 걸어온 실력을 충분히 믿었고 맘껏 펼쳐냈던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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