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한문임용 후기
1. 합격 아니구요, 즐김 맞습니다
마침내 임용고시일이 밝았다. 아기다리 고기다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이 날 하루를 위해 일 년 동안 애를 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에 설렌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그리고 적어도 여느 때의 임용고시일에 비하면 부담은 적었다.
▲ 아침의 잔뜩 찌푸린 하늘. 그래도 내 기분은 절로 좋다.
졸업과 동시에 합격이란 꿈이 삶을 짓누르다
2006년 12월에 처음으로 임용을 봤을 땐 첫 임용시험임에도 허황된 꿈을 꾸고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합격’이란 꿈, 말이다. 그건 그 순간을 즐길 수 있게 만들기보다 그 상황에 매몰되어 힘겹게 싸우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경기도에서 시험을 본 덕에 오랜만에 군대 친구인 민호도 만날 수 있었고 생전 처음으로 시흥이란 곳에도 가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 보는 임용시험인 까닭에 마치 넘지 못할 선을 넘은 것마냥 두렵기만 했다.
그에 비하면 2010년 이후로 8년이란 공백기를 두고 다시 보게 되는 임용시험은 그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시험체제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오랜만에 보기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이젠 첫 시험에 대해 좀 더 맘을 놓고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공부를 했고 첫 시험을 보는데 뭔 합격이냐?”라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 시간을 오롯이 맛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마인드는 합격 여부를 떠나 지금 이 상황을 좀 더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줬고 8개월 간 어떻게 씨를 뿌렸는지 그 수확물을 목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합격이 아닌, 뿌린 씨를 거둔다는 마음으로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할 수 있으면 그 뿐이라고 맘을 다잡았다.
▲ 나의 예전 다섯 번의 도전의 순간들. 이렇게 모아보니 느낌이 새롭다.
시험 날 새벽의 긴장과 우물쭈물했던 교육학
그래도 긴장은 되나 보다. 왜 안 그러겠는가? 올해 2월에 정말 오랜만에 시험다운 한국사능력시험을 봤을 때도 모처럼만에 느껴지는 긴장감이 왠지 모르게 좋았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한가득 느끼게 만들어줬기 때문이고 시험을 통해 해왔던 공부를 확인한다는 게, 결과가 보이는 시험을 본다는 게 두근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 강도가 센 만큼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게 절로 느껴질 정도의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그러니 잠이 제대로 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거의 자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내다가 6시에 시계를 맞춰놨음에도 5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임용고시 시험시간은 9시부터 오후 2시 20분까지 5시 20분 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니 이 시간에 잠을 더 자두는 게 당연히 낫지만,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진 않아 불안한 마음에 교육학을 펼쳐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교육학을 거의 공부하지 않았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나중에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이렇게 시간만 흘려보냈고 거의 닥쳐서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것이다. 특히 교육학은 평소에 꾸준히 봐두고 정리해야 함에도 그러질 않았고 닥쳐서까지 제대로 들여다보기보다 얼렁뚱땅 넘어갔으니 참 할 말이 없다. 정말 버나드쇼의 말마따나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다
▲ 시험날 아침에 닥쳐서 벼락치기 하느라 고생이 많다. 눈도 부었고 마음도 심난하기만 하던 시험날 새벽의 아침.
비 오는 날의 임용시험
집에선 7시에 나가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학교는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입실이 가능하다고 하니, 집에서 하는 둥 마는 둥 할 거면 차라리 빨리 도착해서 교실 분위기도 좀 익혀두고 나머지를 정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6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이때가 되고 보니 내 머릿속엔 비장한 음악이 흐른다. 마치 지구를 정복하려는 외계인이라도 막으려는 듯 혼자 한껏 비장해진 상태로 아이언맨이 슈트라도 입듯 폼 나게 외투를 걸치고 운동화끈을 힘껏 묶은 후 문을 잡고 나간다. 마치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를 향해 있는 듯, 그리고 모든 시선이 날 향해 쏠려 있는 듯 비장미 넘치게 한 걸음을 뗀다. 무거워지지 말자, 진지해지지 말자고 그렇게 수도 없이 외쳤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럴 수가 없다. 내 감정 내가 어쩔 수 없다면 이 순간만큼 한껏 이런 비장한 기분을 맛보리라.
▲ 6번 버스가 바로 와서 탔다.
여기서 온고을중학교로 바로 가는 버스는 8시 이후에나 운행이 되니 환승할 마음으로 모래내 시장까지 가는 버스가 오면 무작정 탈 생각이었다. 나가자마자 온 버스는 안골까지 가는 버스더라. 그래서 그걸 바로 탔다. 사위(四圍)엔 아직도 해가 뜨지 않아 어둠이 짙게 깔려 있고 빗방울도 한 방울씩 내리고 있다. 저번 주에 일기예보를 봤을 때만해도 비 예보는 없었지만 엊그제 일기예보엔 오늘 오전에 비가 온다고 바뀌어 있었다. 지금은 바뀐 일기예보에 따라 정말로 비가 내리고 있다.
비 오는 날에 임용이라. 예전에 다섯 번 임용시험을 봤었는데 딱 한 번 2007년도에 광주에서 시험을 봤을 때 정말 많은 비가 왔었다. 그래도 그때는 졸업 동기들이 있어 임용시험이 끝나서 함께 밥을 먹으러 갔던 기억이 있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며 만감이 교차하던 아련하고도 씁쓸한 추억이 있다.
▲ 6번 버스와 102번 버스는 전주시청 앞 사거리에서 마주치고, 안골에서 다시 마주친다.
허탈한 재미
가는 길에 재밌는 일이 있었다. 102번 버스는 온고을 중학교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다. 그러니 지금 타고 있는 6번 버스를 타고 안골까지 가다가 102번 버스로 환승한다면 좀 더 편안하게 학교에 갈 수 있는 것이다.
6번 버스와 102번 버스는 두 번 겹치게 되어 있었다. 시청 부근을 지날 때, 그리고 안골 전자랜드 사거리를 지날 때 이렇게 두 번이다. 6번 버스가 전주시청 앞 쪽을 지나갈 때 102번 버스가 중앙시장 쪽에서 우리 쪽으로 오고 있는 걸 다음지도로 확인했다. 그래서 그 순간 ‘그렇다면 여기서 내려서 그 버스를 환승하는 것도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유심히 102번 버스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우연의 장난처럼 우리 버스가 사거리의 신호에 걸렸을 때 102번 버스는 그 사거리를 휑하니 지나가는 게 아닌가. 맙소사!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 앞으로 무심히 그것도 매우 빨리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있노라니, 피식 웃음이 났다. 이것이야말로 한껏 긴장된 나에게 주는 우연이란 선물이 아닌가. 아쉽고도 허탈했지만, 매우 재밌는 순간이었다.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그래도 아직 희망은 남아 있었다. 또 한 번 마주치게 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나는 안골에서 내려 전자랜드 쪽으로 전력질주하면 탈 수도 있다. 물론 그러려면 6번 버스가 훨씬 빨리 안골에 도착해야 하고 102번 버스는 전주고의 좁은 거리를 지나서 느릿느릿 오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6번 버스가 안골에 도착했을 때 내리자마자 정말 열심히 달렸다. 102번 버스는 2정거장 전쯤에서 오고 있었다. 지금은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시간이라 해도 과연 뛰어간다고 탈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이 되긴 했다. 가까스로 횡단보도를 두 군데나 건너고 마지막 신호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마치 아까 전의 데자뷰인 마냥 102번 버스는 저 멀리서 쾌속 질주를 하더니 건너편에 있는 내 앞을 유유히 지나가 버렸다. 세상에나~ 이렇게 102번 버스와의 악연인지 인연인지 모를 두 번의 스쳐지나감이라니. 아까운 상황을 연거푸 겪고 보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이건 도대체 언제적 개그냐^^;;).
근데 재밌는 점은 그렇게 눈앞에서 보란 듯이 버스를 놓쳤지만 10분 정도 되는 거리를 5분 만에 달려온 바람에 온고을중학교까지의 거리는 더 가까워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버스는 놓쳤지만 시간은 단축된 무척 아이러니하지만 신나는 상황이다.
어쨌든 이런 에피소드 덕분에 시험 날 아침부터 활기가 넘쳤고 맘속 깊은 불안들은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그래 이번 시험의 모토는 합격도, 불안도, 긴장도 아닌 즐김이다. 딱 이런 컨셉에 맞는 완벽한 시작인 셈이다. 두 번의 엇갈림의 미학이 안겨준 쾌감, 그래 이제 나도 한 번 즐겨볼까.
▲ 그렇게 내 눈 앞에서 유유히 떠나가신 그대 102번이여!
2. 온고을중학교에 새겨진 추억과 새겨질 기억
거기서 15분 정도를 걸으니 드디어 익숙한 곳이 나온다. 온고을중학교다. 나의 2010년 마지막 임용을 봤던 장소이자, 새롭게 시작하는 첫 임용을 볼 장소로 뫼비우스의 띠 같은 장소라 할 수 있다. 임용고시날에 학교는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입실이 가능하며 그 이후엔 당연히 입실은 통제되며 교문까지 폐쇄하고 심지어, 운동장에 주차한 모든 부모들까지 학교 밖으로 나가서 대기해야 한다고 하더라. 예전에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은 더욱 삼엄해진 것 같은 느낌은 든다.
▲ 임고의 마지막을 고한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반갑던 그 자리에 있던 온고을중학교.
아, 나의 끝과 시작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담겨 있는 온고을중학교여
102번 버스와의 우여곡절 끝에 학교 정문에 도착한 시간은 7시 35분이었는데 이미 학교 앞은 한바탕 난리더라. 각과 후배들이 모두 나와 응원의 채비를 갖추었고, 시험을 보기 위해 부모의 차를 타고 온 수험생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는 축축한 날씨다 보니 더 번잡스럽게 느껴졌다.
이번 주에 소화시평 스터디를 할 때 김형술 교수님은 “이번 임용고시엔 교수님들이 모두 나가 응원해주기로 했습니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지금껏 전북에서 시험을 볼 때 후배들이 학교 앞에서 응원해주는 걸 본 적은 있어도 교수님들이 온 적은 없으니 색다른 광경이긴 했지만, 시험에 대한 압박이 있기 때문에 교수님들의 응원은 더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장난스레 “그렇다면 교수님들 오시기 전에 얼른 들어가던지, 그게 아니라면 후문으로 몰래 들어가야겠어요.”라고 농을 쳤던 것이다.
내가 교문 앞에 도착했을 땐 7시 35분이었는데 그때 소현성 교수님이 후배로 추정되는(?) 아이들과 함께 서계셨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마주친 터라 하마터면 인사할 뻔했는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마치 남인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소현성 교수와 일면식이 있다면 당연히 인사를 해야 맞지만 그러지도 않는데 인사를 했다면 서로 얼마나 민망했겠는가^^.
▲ 응원하기 위해 나온 각과 사람들. 다들 애들 많이 쓰십니다^^
온고을중학교는 8년 전과 비교해보니 학교에 페인트를 새롭게 칠해서 그땐 노랑이 학교였다면 지금은 파랭이 학교가 되었다. 뭔가 색깔 자체가 매우 유아틱한 느낌이 있다. 마치 ‘꿈동산에 오신 여러분 맘껏 기량발휘하세요’라고 온 맘과 성심을 다해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반갑다, 온고을중학교야. 8년 동안 잘 있었니~
중앙현관에 들어서니 덧신이 있더라. 예전에 임용을 볼 땐 덧신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신발을 그대로 신고 들어가서 임용을 봤었는데 지금은 학교의 위생을 위해 좀 더 짜임새가 갖춰진 느낌이다. 더욱이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엔 신발에 진흙이 묻었을 테니, 덧신을 신게 하는 건 더욱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내 신발 곁에 덧신을 두르니, 뭔가 촌스러우면서 색다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 왠지 촌스럽지만 귀엽다~ 절로 맘이 편해지는 순간.
시험을 하찮게 여길 수 있는 절대정신
교실에 들어가니 두 사람이 와 있었고 나머지 자리는 비어 있었다. ‘너무 일찍 온 거 아냐?’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래서 이런 기록을 남겨놓았다.
8년 만의 try다. 분명한 건 들어올 때만 해도 신이 났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즐기기 바빴는데 막상 자리에 앉으니 긴장감이 몰려오고 하나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맞다. 이게 현장성이고 이게 현실이다. 그곳 그 자리, 그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 결국 실력발휘란 이런 압박, 억눌림 등을 모두 대수롭지 않게, 하찮게 여기는 절대정신에 있었던 셈이다. 뼈저리게 그리고 매우 실감나게 다시 느껴본다. -7시 55분
왜 아니었겠는가. 시험장, 특히나 임용시험이란 나에겐 벽과도 같은 그래서 감히 넘어볼 생각도 못한 채 주눅 들어 주저앉아 있기만 했던 시험이었다. 그곳에서 매번 1차도 넘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기에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불안, 초조, 그리고 막상 경쟁상대라고 느껴지는 뭇 사람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고 헤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을 맹자도 늘 느꼈던 것 같다. 주눅들 수밖에 없는 상황, 나를 눌러버리려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맹자는 “대인을 설득할 땐 그들을 하찮게 여겨 드높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니 실력에 대해 당당하고 너 자신에 대해 만족한다면 그들의 지위, 재산, 학력 등의 외부적인 여건 등이 나를 어떻게 휘젓느냐는 것이다. 그처럼 나도 시험의 압박을 하찮게 보고 평소에 쌓아온 실력을 풀어낼 수 있다면 그걸로 그만이다. 시험 앞에 나를 믿고 뚜벅뚜벅 걸어갈 마음 자세만 있으면 된다.
▲ 이곳이 바로 오늘의 축제의 장소. 즐길 준비 되었으면 손 머리 위로! 퓨처 핸즈 업!
책상과 의자를 불편하지 않도록 바꿔라
임용고시장엔 최대한 일찍 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그렇게까지 추운 날씨는 아니다. 밖엔 비가 내리고 있어서 평소보다 기온까지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히터까지 틀어줘서 외투는 벗어놓고 후리스만 입고 있었는데도 막상 문제를 열나게 풀다 보면 살짝 덥게 느껴질 정도의 날씨였다.
교육학이 원체 미진했던 터라 이 시간만이라도 하나라도 더 봐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있었는데 일찍 온 아이들은 책상과 의자를 바꾸기에 여념이 없더라.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고 보니 교실에 들어오면서 깜짝 놀랐던 게 책상에 이름이 붙어있지 않다는 거였고, 그 이름은 1교시가 시작되기 20분 전쯤에 붙였기에 일처리가 느리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타지역에서 시험을 본 후배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건 일처리의 문제가 아니라 배려의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지역에선 자리에 이미 이름표가 붙어 있어 의자는 바꿀 수 있었지만 책상을 바꿀 수는 없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전북에선 그러지 않았기에 원하는 책상과 의자를 맘껏 바꿔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구축한 후에 시험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일찍 와야 할 이유를 알았다. 의자나 환경을 나에게 딱 맞추기 위해서다. 그게 되지 않으면 시험 보는 내내 다른 환경이 신경 쓰여 시험엔 덜 신경 쓰게 되니 말이다. 그러니 빨리 와서 좀 헤매도 좋으니 일찍 와서 분위기도 익히고 환경도 맞춰라.
그 모습을 보고 의자가 약간 높다는 생각이 들어 의자를 한 번 바꿔봤다. 그렇게 하면 편할 줄 알고 바꾼 것인데, 막상 바꾸고 나서 보니 원래 바꾸지 않았을 때의 의자가 훨씬 편하다는 걸 알겠더라. 그래서 다시 원상복귀를 시켜놨다. 드디어 마음을 안정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 아주 급하게 찍다보니 초점이 나갔지만, 드디어 이름이 붙은 내 자리.
일반펜으로 수험번호를 색칠하다
8시 30분이 되니 모든 핸드폰과 전자기기를 걷어갔고 35분쯤엔 가방을 앞으로 내라고 하더라. 정말 오랜만에 매우 낯익은 광경이었다. 예전에도 가방은 교실 앞에 냈던 기억은 아주 또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뀐 시험 체제의 매우 특이한 점은 컴퓨터 사인펜으로 수험번호조차 마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시험의 경우엔 수험번호나 컴퓨터로 처리될 것들은 컴퓨터 사인펜으로 나머지는 빨간색 펜으로 쓰는 게 일반적인데, 여긴 그런 게 전혀 없이 번지지 않는 펜으로 써야 한다고 크게 명시되어 있었고 계속 강조했다. 논술형 시험 체제로 바뀌면서 저런 부분들이 크게 달라졌다. 여기엔 번지는 펜으로 썼다가 운반되는 과정 속에 답안지가 번져 채점이 곤란해진 상황이 예전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미심쩍은 마음에 컴퓨터 사인펜을 챙겨가긴 했었고 수험번호는 그걸로 칠할까도 생각해봤는데 다른 사람들도 모두 펜으로 수험번호를 칠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나도 따르기로 했다. 꼼꼼히 번호를 맞춰가며 수험번호를 최대한 까맣게 칠했다. 마치 색칠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그 순간만큼은 다들 천진난만해보였다.
▲ 공부를 했든 안 했든 이 자리에 앉은 임고생은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1년의 고군분투를 확인하는 자리이니.
3. 재밌고 설레던 2019학년도 한문임용시험 세계로의 초대
8시 45분에 답안지를 나눠줘서 수험번호를 체크하게 했다. 교육학 시험지는 한 장이지만, 논술로 써야하기 때문에 답안지는 두 장을 나눠준다. 그래서 1페이지인지, 2페이지인지를 체크하게 되어 있더라. 2010년 임용 때까진 교육학 시험은 오지선다형의 객관식 문제였지만, 이젠 확 달라졌다. 문제를 논술형으로 쭉 쓸 수 있어야 하니 말이다.
▲ 이 현수막을 지나갈 때 묘한 기분이 든다.
교육학, 어려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다 하다
교육학 논술을 정식으로 쭉 한 편을 써보는 건 처음이다. 지금까진 그저 눈으로 정리하기만 했고 막상 현장에서 글 쓰는 건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8년 동안 단재학교에서 생활을 하며 글은 어느 때보다 더 자세하게, 그러면서도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써왔다고 자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트위스트 교육학’ 같은 경우는 정말 심혈을 기울여 26편이나 되는 글을 썼을 정도로 단련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글 쓰는 것이야 전혀 문제될 게 없는데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문제를 받고 어느 정도까지 구상한 다음에 언제부터 쓰기 시작해야 하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시험지를 받자마자 꼼꼼하게 들여다보며 전체적으로 써야 할 것들의 체계를 세우고 그걸 가지고 시험에 임해야 함에도 받자마자 긴장한 나머지 꼼꼼히 읽으려 하지도 않고 무작정 쓰려고 달려들었다는 점이다.
이건 경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시험장의 긴박한 분위기에 휩쓸린 문제라 해야 맞을 것이다. 그래서 자꾸 맘을 릴랙스하라고 진정하라고 단속을 하고서야 조금이나마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워낙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라 팍팍 개요도조차 세우지 못하는 게 한계라면 한계일까.
타일러의 학습경험선정의 원리 중 기회의 원리와 만족의 원리에 대해 쓰는 것은 어떻게든 때려 맞췄으며,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이나 척도법, 그리고 그걸 사용할 때의 문제점 같은 문제는 전혀 나올 거라 생각도 못했던 것이기에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마지막의 변혁적 리더십의 경우는 그저 알고 있던 대로 썼다. 평소에 쭉 시험 체제에 맞춰 써보는 연습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않다가 이렇게 닥치고 보니 이런 상황에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시험장에선 평소처럼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풀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그 상황에 매몰된 나머지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게 시간을 흘려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학 문제지를 받고 구상하고 쓰는 걸 완료하는 데까지 1시간이란 시간은 무척 짧다는 것도 제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교육학 시험은 어려웠고 뭔 말을 쓰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래도 알게 된 건 20분 정도 진지하게 문제지를 읽고 생각을 정리해도 40분이면 충분히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늘 글을 쓰던 버릇이 있으니, 글을 쓰는 게 부담스럽진 않다. 내년엔 정말 진즉부터 조금씩 해서 전태련 선생님 말마따나 체계를 세워둬야겠다.
▲ 아침의 한산한 복도. 다들 맘을 다독이며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정말 맛있었던 A형 시험
드디어 전공시험이다. 내가 처음 시험을 봤던 2006년만 하더라도 전공시험이 나눠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1시가 되기 전에 시험이 끝났었다(교육학 1시간, 전공 2시 30분). 그런데 지금은 전공을 두 번에 걸쳐서 보니 2시 20분이 되어서야 시험이 끝난다. A형 시험 문제는 단답식 문제들이 6문제 정도는 나오는데 단순암기식 문제이기에 부담이 덜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으로 시험지를 받아들고선 ‘과연 어떤 문제들이 나왔으려나?’ 저절로 기대가 되었다. 예전에 5번이나 시험을 봤는데 시험지를 앞에 두고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도망가고 싶고 그렇기만 했었지, 저걸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그만큼 이번 시험만큼은 즐기자는 컨셉으로 임하고 있기에 가능한 생각의 전환인 셈이다.
10시 40분이 되자마자 시작종이 울렸다. 시험지를 훑어보지 않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가기 시작했다. 단답형들은 모두 교육과정에서 나오기 때문에 아침까지 외웠던 것들이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그래서 바로 작성을 했고 두 번째 페이지부턴 맹자의 글을 비롯하여 모르는 문장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집중을 하고 해석해보니 웬만큼은 풀어볼 만했다. 마지막까지 푸는 데 무려 11시 30분 정도에 끝나 40분이나 시간이 남은 상황이었다. 아직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 40분 정도의 시간이면 넉넉하단 생각이 들었다. 문제와 한바탕 씨름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엔 정말 문제 자체가 나에게 포근하게 안겨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문제를 푸는 그 시간자체가 무척이나 즐거웠다.
지금까지 임용을 보면서 이런 적이 있었나 A형은 모르겠는 게 하나도 없었다. 문앵(聞鶯) 말고는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턱턱 막혀서 시험시간이 흐르는 걸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두 다 해석이 되었고 쓰는 데도 문제가 전혀 없었다. 처음으로 문제를 보면서 나에게 포근히 안겨 온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제도 11시 30분 정도에 거의 푼 상황이었고 그 후론 검토하며 맞춰보는 시간으로 보냈다. 과연 B형은?
그리고 비염으로 인한 코도 안 나오고 겁나 집중도 잘 된다는 게 최고로 좋다. 지금의 내 컨디션은 최상이다. 옆자리 커플이 쉽다는 얘길 한다. 내가 쉬웠으면 남도 쉬운 거겠지. 그걸 염두에 두고 B형은 어떨지 봐야겠다. 그리고 A형 열어보기 전에 ‘정말 궁금하단’ 생각이 최초로 들었다. -12시 15분
▲ 소화시평 스터디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바로 이 글을 했다. 시험에 나온 게 소화시평은 아니지만 알던 글이라 접근하긴 더 편했다.
B형은 어려웠고 그때쯤 되니 손까지도 아프다
A형에 대해선 모두 쉬웠다고 입을 모으더라. 하긴 뭐 나에게만 쉬울 리는 없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역시나 문제는 B형이었다. 이걸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나에게도 조금이라도 희망은 있을 테니 말이다. 아이들은 B형이 시작되기 전 시간에 싸온 도시락으로 요기를 하고 있다. 나는 사과도 가져왔고 초콜렛들도 가져왔지만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어제 잠을 못 잤기 때문인지, 늘 요 시간 때에 자던 버릇을 들였기 때문인지 스르르 잠이 오더라.
B형은 역시나 지문들도 길고 요구하는 것도 많아 시간이 무진장 지체되었고 특히 마지막 문제가 논술 문제다 보니 부담이 더욱 배가 되었다. 그것을 풀려면 앞에서 차근차근 모두 다 풀 수 있어야 하는데, 앞에선 막혀 있지, 아예 해석이 안 되는 문제도 있지,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가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긴장이 되던지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갔다.
결국 앞부분은 빈칸으로 남겨둔 채 8번 문제부터 풀기로 했다. 다행히도 이건 고문진보에 나오는 효행에 관한 내용을 다룬 『진정표』였다. 이번에 본다 본다 하면서 결국 보지 않았지만, 대체적인 내용은 알고 있기 때문에 해석하는 데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바로 써나갈 수 있었다. 그걸 다 쓰고 나서 앞에서 풀지 못한 문제들을 풀려고 들여다보는데도 역시나 풀지 못하겠더라. 그리고 그 시간쯤 되니 손이 너무도 아파왔다.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글을 써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2점 짜리 문제 3개 정도는 아예 써보지도 못한 채 놓고 나와야 했다.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겠지만, 지금 내 실력으로 풀 수 있는 문제들은 최선을 다해서 풀었으니 괜찮다.
희망을 맛보았다
드디어 시험은 끝났다. 2009년에 임용시험이 끝났을 때 무척이나 참담한 기분을 느꼈었고 도망치고 싶기까지 했었다. 제대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이번엔 기분이 정말 좋았다. 풀 수 없는 문제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8개월 동안 했던 공부에 대한 수확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한다면 나는 어쩌면 그 이상의 실력을 발휘했는지도 모른다. 운이 좋았고 이번에 했던 공부방법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걸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분명한 건 이건 희망이고, 내년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올해는 기반을 마련했으니, 이걸 기초로 삼아 내년엔 더욱 더 꿈의 나래를 펼쳐보아야겠다.
▲ 신나게 잘 놀다 갑니다. 온고을중학교도 bye!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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