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6/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19.01.24(목) - 한문이란 늪에 빠지다 본문

건빵/일상의 삶

19.01.24(목) - 한문이란 늪에 빠지다

건방진방랑자 2019. 12. 8. 19:59
728x90
반응형

 

1. 소화시평 스터디와 한문공부

 

 

소화시평스터디는 작년 4월부터 참가하게 됐다. 다시 한문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공부할 장소로 서울과 전주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전주로 정하고 나서 3월에야 전주 정착이 완료되었다. 최고의 공부장소라 생각한 임고반엔 어렵지 않게 입성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역시나 한문 공부였던 것이다. 임고반에만 들어가면 한문공부를 하는 후배들이 있어 그들과 잘 의기투합하면 어렵지 않게 스터디가 꾸려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웬 걸 임고반엔 한문임용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3월 내둥 헤매며 시간을 보내게 됐던 것이다. 그렇게 한 달 보름 정도를 보내고 난 후에 소화시평 스터디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참여하게 된 것이니, 참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왼쪽: 작년 4월 11일 / 오른쪽: 올해 1월,  소화시평 스터디가 나에겐 변곡점이 되었다.

 

 

 

소화시평 스터디, 한문공부의 방향을 잡게 하다

 

이 스터디에선 소화시평전체를 보는 게 아니라 교수님이 함께 봤으면 하는 것들 위주로 선집해 놓은 작품들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참가했을 땐 소화시평상권 30부터 진도를 나가고 있었고 그게 상권이 지난주인 117일에야 끝나게 됐다. 선집을 본 것이라 해도 우리가 함께 본 작품은 48편이나 된다.

상권을 마치고 나니 참 여러 일들이 떠오르고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그 중 뭐니 뭐니 해도 한문공부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는 점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7년 만에 다시 잡는 한문공부는 막연하기만 했다. 이럴 때 자칫 잘못하면 임용이란 시험체제에 맞춰 많은 작품을 봐야 한다는 욕심만 앞세우며 해석 실력은 키우지도 못한 채 많은 작품만 반복적으로 보게 되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데 소화시평 스터디를 하며 한 작품을 진득하게 보는 방법, 그리고 한시를 음미하는 방법까지 동시에 배우니 나처럼 다시 공부를 하는 사람에겐 최고의 공부방법이었던 셈이다.

그 다음엔 최초로 시화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읽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공부할 때 파한집과 같은 시화집을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눈으로 대충 읽고서 한 번 봤다고 생각하는 정도로만 공부한 것이지 이렇게 준비를 해오고 함께 생각해보며 하나하나 정리해가는 식으로 공부하긴 처음이다. 이렇게 공부하고 나니 시화집이라는 게 얼마나 재밌는 서술방식인지도 알게 됐고 한시란 게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스터디가 끝나고 다시 임고반에 올라갈 땐 이미 어두운 시간이다. 그래도 뿌듯한 걸 어찌할까.  

 

 

 

스터디로 배운 내용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하다

 

그런 맛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터디가 끝나고 난 후엔 이해와 감상을 남기게 되더라. 글쓰기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느낌이지만 단재학교에 있으면서 차곡차곡 다양한 글들을 정리하던 습관을 기른 덕에 다시 임용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도 요긴하게 써 먹고 있긴 하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게 이런 식으로 스터디를 하고 난 후에 그때 정리한 내용들을 글로 남기는 것이다. 그때의 시를 읽으며 느낀 감상이나 정감들을 담아놓지 않으면 휘발되어 날아가 버릴 것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 남기려 노력하는 것이다. 문제는 스터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쓰는 양이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엔 순수한 느낌 정도와 새롭게 배운 내용 위주로 쓰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제대로 된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는 욕심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러니 내용도 어마무시하게 늘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 부담감도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하권의 내용을 정리하면서는 이 부분에 대한 여러 실험들이 있을 예정이다. 과연 이런 페이스대로 한 작품에 대해 이해와 감상을 여러 편으로 써갈 것인지, 아니면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쓰는 방식을 택할 것인지 하는 점 말이다. 어떤 방향이든 직접 해봤기 때문에, 그리고 그만큼 고민해봤기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일 테니, 나 또한 만족스럽게 정착되는 과정을 지켜볼 것이다. 과연 소화시평 하권의 이해와 감상의 서술방식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까?

 

 

상권 98번을 쓸 때부터 편집방향이 바뀌었다. 이해와 감상을 본문에 싣지 않고 별도의 글로 작성하기로 했다.  

 

 

 

1월부터 생각지도 못하게 열공하게 되다

 

12일에 시험 결과가 나오고 나서 김형술 교수에게 연락이 왔었다. 당연히 낙방 소식을 알렸다. 단순히 합격 불합격 여부만이 알고 싶으셔서 연락을 주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바로 다음 주부터 한 주에 두 번씩 소화시평 스터디가 재기된다고 말씀해주시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엔 마치 예전 인생극장이란 프로그램에서 이휘재가 두 가지의 상황 중 하나를 선택한 후 외치던 그래 결심했어!”라는 말처럼 열정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낙방소식을 듣고 지금은 하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렇게 다시 시작하면 워밍업이 충분히 되고도 남을 거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주일에 두 번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전적이었다. 이런 식의 도전은 2016년에 트위스트 교육학이란 강연을 듣고 후기 쓴 후 3년 만이다. 그땐 월요일마다 총 5주간에 진행된 강의였는데 그 강의를 듣고 짧게는 8편에서 길게는 12편까지 후기를 남겼으니 말이다. 더욱이 다음 강의를 듣기 전까지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제한까지 있으니 강의를 듣는 순간부터 한 주의 강의 후기를 마무리 짓는 순간까진 초긴장 상태였다. 그런 초긴장 상태를 1월에 다시금 맛보게 되는 것이니 어찌 설레지 않겠으며 두렵지 않겠는가.

단순히 예습만 하는 정도라면 뭐 그까이거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만 하면 되지만, 수업이 끝난 후 정리까지 하려 맘먹었으니 대단히 바쁜 일정이 될 수밖에 없다. 배우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정리인 탓에 힘은 두 세배로 들겠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1월을 보내고 나면 한문공부에 대해 조금이라도 맛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올 한해 한문농사를 짓는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과연 이 과정을 잘 넘어가고 나면 무엇이 되어 있을지, 그리고 어떤 정감들이 어릴지 벌써부터 잔뜩 기대된다. 배울 수 있고 공부할 수 있고, 풀어낼 수 있는 지금이야 말로 Carpe Diem이 그대로 녹아든 순간이리라.

 

 

그래 결심했어!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는 거야!  

 

 

 

2. 30년을 해야 전문가가 된다

 

 

소화시평상권이 끝났지만 책걸이나 뒷풀이는 없었다. 소화시평전체가 끝난 건 아니니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 고비 고비 넘어가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수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고 어떤 의미냐 하는 것은 개인별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훌쩍 지나가는 게 아쉽게 느껴지던 찰나에 생각지도 못한 뒷풀이가 마련되었다.

122일에도 여느 때처럼 스터디는 진행되고 있었다. 하권 3번과 4이 원체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거기에 두 개 정도를 더 예습해서 갔는데, 이날 3번을 맡은 학생이 사정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무려 하권 15까지 일사천리로 스터디가 진행되었다. 그건 곧 예습을 못한 3개의 글을 봐야한다는 얘기기도 했었고 정리해야 할 글이 무려 6개나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니 수업시간엔 엄청 긴장했었고, ‘이걸 언제 다 정리하지?’라는 부담감에 스터디가 끝나고 나서도 멘붕 상태이기도 했다. 그렇게 스터디가 끝나고 무거운 마음으로 나가려 할 때 교수님이 갑자기 오늘 저녁에 바쁜 일 있어요?”라고 물으신다. 그래서 시간 괜찮다고 했더니, 가볍게 맥주 한 잔 하자고 하시더라.

 

 

방학인데도 자리를 지키는 아이들. 오늘은 보름달도 동그랗게 떴다.   

 

 

 

성재 덕에 만들어진 뒷풀이 자리

 

명목은 원년 멤버인 성재가 2월에 군대에 가기 때문에 송별회를 해준다는 것이었지만 내 스스로는 이것이야말로 상권을 끝낸 기념으로 하는 뒷풀이 자리라고 맘대로 생각했다.

성재로 말할 것 같으면 소화시평 스터디의 알파이자 오메가와도 같은 친구라 할 수 있다. MT때 교수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더니, “교수님 한시를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함으로 이 스터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가 군대에 가게 되면서 잠시 동안 한문과는 결별을 해야 하니 송별회를 해주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렇게 겸사겸사 모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소화시평 스터디에 대한 중간 점검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뒷풀이 자리를 좋아하는 건 다시 공부를 하게 되면서 여러 스쳐갔던 생각들을 이런 자리에서 풀어낼 수 있고 그걸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김형술 교수 같은 경우는 내가 직접 배웠던 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훨씬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교수님 스타일 자체가 권위로 학생들을 억누르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들었던 생각들을 가감 없이 풀어낼 수 있다. 거기에 무식이 철철 흘러넘치더라도, 또 아는 게 별로 없을지라도 그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 더더욱 이런 자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술을 좋아해요라는 건 안 비밀이긴 하지만^^;;

 

 

성재와 용주, 친한 친구이자 도반인 아이들.   

 

 

 

30년을 해야 진정한 전문가

 

성재나 용주와는 여러 번 술자리를 했었다. 하긴 그래봐야 두 번이지만 한 번은 부안 내소사의 관음봉을 오르며 계곡에서 술을 마시며 시회를 열었고 저녁엔 중국집에서 엄청 마시며 그 분위기를 함께 느끼기도 했던 친구들이다. 이제 2학년이지만 한문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런 자세로 꾸준히 한문공부를 할 수 있다면 내 나이 정도가 되었을 땐 분명히 한문학계에 의미 있는 활동을 할 것임에 분명하다.

예전에 출판편집자 과정을 들었을 때 선완규쌤에게 재밌는 얘기를 들었었다. 얘기의 주제는 30년을 해야 진정한 전문가다라는 거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를 공부하면 전문가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선완규썜은 ‘10년차는 얼치기라고 강한 어조로 얘기해주더라.

그땐 그 말뜻이 무언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반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야말로 정말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고 30년이란 시간은 단순히 30년이란 양적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질적 시간의 개념이란 것도 알게 됐다. 그건 전문가란 끊임없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갈고 닦으며 연구해가야 한다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 이제 조금 알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 때가 바로 시작점임을 인지하고 계속 그 길로 달려갈 수 있는 저력이 있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성재와 용주에게 군대가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건강하게 복무하고 나와서 지금의 열정대로 맘껏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문가란 권위자보다 알고 싶어하는 야매 또는 아마추어로 남기 위한 우리들의 신나는 놀이터.

 

 

 

3.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 그리고 발분하는 심정

 

 

이번엔 새로운 아이들도 함께 참석했다. 현종이와 지인이가 그들이다. 작년엔 오고 가며 얼핏얼핏 봤던 아이들인데 뒷풀이에 함께 하게 되면서 좀 더 말을 해볼 수 있었다.

 

 

보름에서 이틀이 지났지만 달은 휘영청 밝았다.      

 

 

 

홍만종의 시평을 보며 발분하는 마음이 생기다

 

현종이는 오늘 스터디 준비를 하면서 특히 4번 글을 보며 만약 홍만종의 시에 대한 평가가 없다면, 제가 홍만종처럼 저런 시평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엔 한문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고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충분히 읽혔다. 단순히 해석이 되느냐 정도로 보려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홍만종에게 충분히 이입하여 글의 의미까지 탐구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발분하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그 마음만 간직한 채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화시평엔 어쩔 수 없이 홍만종의 시선과 철학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건 누가 뭐라 해도 홍만종의 해석이고 홍만종의 관점이다. 그러니 굳이 그것에 자신의 철학과 감상을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알쓸신잡시즌1 6편에서 김영하 작가는 교과서에 자신의 작품이 실리는 걸 반대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단편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도록 쓴 작품입니다. 해외의 경우 단편 전체를 읽고 토론하거나 에세이를 쓰게 하는 교육방식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한두 단락만 잘라내어 교육하는 것이 문제 답을 찾게 하는 것이 문제예요.

문학이라는 것은 자기만의 답을 찾기 위해서 보는 거지 작가가 숨겨놓은 주제를 찾는 보물찾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걸 숨겨놓지 않습니다. 독자들과 그런 게임을 벌이지 않아요, 우리는.

독자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도록 그 과정을 통해서 자기감정을 발견하고 타인을 잘 이해하도록 하는 거예요. 다양한 감수성을 개발하는데 문학작품이 쓰여야 하는데 조각난 내용 속에서 단순히 답을 찾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상적인 교육방식은 에세이를 쓰게 하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게만 하면 돼요. 자기 감상을 어떤 의미에서 문학작품은 우리 모두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존재하는 건지도 몰라요. 똑같은 작품을 읽어도 감상이 천 개가 나와야 되고 천명이 읽으면. 그런 다양성의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문학이 존재하는 건데 한국의 국어교육은 정답은 정해져 있고 너네들은 그 정답을 빨리 찾아내야 똑똑한 학생이라고 하는 거죠

 

 

 

문학 작품을 볼 때 재밌는 점은 그때의 심정, 상황, 지식의 여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분명히 작품을 쓴 사람의 의도는 있겠지만,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읽고 싶은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반 완성품이란 말을 굳이 썼던 것이고 바로 이런 가능성 때문에 작품엔 무수히 많은 해석들이 달리게 된 것이다. 그처럼 이미 현종이도 글을 읽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따라 시평을 달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김영하 작가의 말이야말로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이유를 명확히 알려준다.     

 

 

 

시에 대한 다양한 해석, 그게 시의 맛이다

 

특히나 이번에 스터디를 할 때 이런 식의 상반된 해석들이 여럿 등장했다. 예를 들면 하권 15 같은 경우 홍만종은 청간정에 간 심희수가 눈을 감고 사각거리는 백사장을 지나 백척루에 올랐다는 시에 대해 사각사각 신선길을 눈 감고 지났으니, 이 어른의 이 행차는 헛된 걸음이라 할 만하다.沙鳴仙路, 閉眼而過, 此老此行, 可謂虛度.’고 시평을 달았다. 그 말은 그처럼 경관이 좋은 곳에서 눈을 감고 갔다니요. 그건 헛 여행이로군요.’라는 평인 것이다. 그에 대해 교수님은 말에 몸을 맡기고 그 자연 속으로 흠뻑 빠져들어 꿈결처럼 갔더니 어느새 백척루에 몸이 이르러 있다는 느낌으로 풀이해줬다. 누구나 경험한 적이 있듯이 정말 행복한 순간들은 훌쩍 지나간다. 그때는 마치 시간이 24시간이 아니라, 1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꿈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걸 황홀경이라 표현할 수 있는데 심희수 또한 그런 황홀경을 이 시에 담은 것이지, ‘피곤해서 조느라 경관 따위는 보지 못했네라는 느낌을 담은 것은 아니란 얘기다. 역시 교수님의 해석엔 한시의 맛이 듬뿍 담겨 있다. 그건 홍만종의 이지적인 해석과는 매우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현종이도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눈을 감은 이유는 바로 사각거리는 모래소리를 더욱 선명하게 듣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2014년에 경험했던 어둠 속의 대화는 잊고 있던 감각에 대한 선명한 느낌을 안겨줬다. 시각이 사라지자 촉각, 청각이 살아나며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처럼 현종이의 해석대로 보자면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 바닷가의 온갖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한 것이다. 거기엔 당연히 모래소리도 있었을 것이고 시원한 바람소리, 파도소리, 갈매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이 시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니 적어도 하권 15번에 있어서 만큼은 홍만종의 이지적인 해석보다 교수님의 해석이나 현종이의 해석이 훨씬 맛깔스럽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천간정에서 백척루까지 가는 길에 대한 시평이 여러 감상을 낳았다.    

 

 

 

한문공부가 하나의 변곡점이 되길

 

밤늦도록 우리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거기엔 한문을 제대로 맛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교수님은 교수님대로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통분모는 한문이란 것이었고 이걸 통해 나래를 펼쳐내고 싶은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하고 싶을 때 그리고 해야만 할 때 맘껏 타올라라. 그렇게 재만 남는다 해도, 그래서 무언가 이루지 못했다 해도 후회는 없으리라. 더욱 분명한 건 그런 열정적인 순간들을 통과하고 나면 그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한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있을 거라는 점이다. 그러니 후회할 생각에 이도 저도 못하는 바보가 되기보단, 맘껏 저지르고 맘껏 해보며 무수한 변곡점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 변화의 간극을 정자는 아주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정자가 말했다. “논어를 읽고 어떤 사람은 아무런 일도 없는 사람도 있고, 읽기를 마친 후에 어떤 사람은 그 중 한두 구절을 깨달아 기뻐하는 사람도 있으며, 읽기를 마친 후에 어떤 사람은 배우길 좋아하게 됐다는 걸 알게 된 사람도 있고, 읽기를 마친 후에 곧바로 손이 절로 춤추고 발이 절로 리듬을 밟을 정도로 흥분했다는 걸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程子曰: “論語, 有讀了全然無事者; 有讀了後, 其中得一兩句喜者; 有讀了後, 知好之者; 有讀了後,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 論語集註序說

 

 

내가 바라는 것도 한문을 공부하고 난 후에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손은 절로 춤추고 발은 절로 리듬을 밟는 사람手之舞之足之蹈之者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만큼 신나게 그만큼 열나게 공부해보자.

 

 

이 날 우리가 먹었던 안주들. 어떤 안주보다 맛나고 술도 달았다.  

 

 

인용

지도 / 임용 공고문 / 19년 글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