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용삭사 누각에서 운서상인에게 부치다
경주용삭사각 겸간운서상인(涇州龍朔寺閣 兼柬雲栖上人)
박인범(朴仁範)
翬飛仙閣在靑冥 月殿笙歌歷歷聽
燈撼螢光明鳥道 梯回虹影到岩扃
人隨流水何時盡 竹帶寒山萬古靑
試問是非空色理 百年愁醉坐來醒 『東文選』 卷之十二
해석
翬飛仙閣在靑冥 휘비선각재청명 | 날개 치는 신선의 누각 푸른 하늘에 있고 |
月殿笙歌歷歷聽 월전생가력력청 | 월전【월전(月殿): 전설에 달 속에 있다는 궁궐, 왕비가 사는 곳을 비유적으로 이름.】의 생황 소리 역력히 들리는 듯해. |
燈撼螢光明鳥道 등감형광명조도 | 등불 반디불이 흔들 듯 새 길【조도(鳥道): 산길이 험하여 나는 새나 넘을 수 있는 곳을 말한다.】을 비추고 |
梯回虹影到岩扃 제회홍영도암경 | 사다리 무지개 그림자 휘돌 듯 암자의 빗장에 이르네. |
人隨流水何時盡 인수류수하시진 | 사람은 흐르는 물 따라 언젠들 사라지지만, |
竹帶寒山萬古靑 죽대한산만고청 | 대나무는 추운 산 둘러 만고에 푸르네. |
試問是非空色理 시문시비공색리 | 시험삼아 시비와 공색의 이치【공색리(空色理):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색이 곧 공이요, 공이 즉 색이다[色卽是空 空卽是色].”라는 말이 있다. 일체 형질(形質)과 모양이 있는 것을 색이라 이르는데 색은 기실 공이라 한다.】를 묻노니 |
百年愁醉坐來醒 백년수취좌래성 | 평생 근심에 취했다가 앉으니 깨어나는 구나. 『東文選』 卷之十二 |
해설
이 시는 경주 용삭사에 올라 읊은 노래이다.
박인범(朴仁範)은 입당(入唐)하여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한 문인으로 최치원(崔致遠)은 「신라왕여당강서고대부상장(新羅王與唐江西高大夫湘狀)」에서 “박인범은 고심하여 시를 지었다[朴仁範苦心爲詩].”라 하여 시업(詩業)에 전념하였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1ㆍ2연에서는 절에서 울리는 피리가 월궁에 닿을 듯 아득히 솟아 있어 시각과 청각을 동원하여 묘사하고 있다. 너무 높기에 반딧불인 양 반짝이는 등불은 새가 날아가는 길을 인도해 주고 있고, 단청으로 아로새긴 사다리 길은 무지개인 양 바위와 바위를 잇고 있다.
3연은 시간의 무한성(無限性)에 대비되는 인간의 무상(無常)을 다시 맛보게 한다. 그러므로 저절로 시비(是非)와 공색(空色)의 이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38~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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