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범(朴仁範, ?~?)은 최광유(崔匡裕)ㆍ최승우(崔承祐) 등과 함께 입당(入唐), 수학하여 빈공(賓貢)으로 급제한 학자요 문인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박인범(朴仁範)의 시는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최치원(崔致遠)은 그의 「신라왕여당강서고대부상장(新羅王與唐江西高大夫湘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라의 선비들을 보면, 특히 박인범(朴仁範)ㆍ김악(金渥)으로 하여금 쌍쌍이 봉리(鳳里)에 날고 상대하여 용문(龍門)에 뛰어오르게 하였다. …… 생각컨대 박인범(朴仁範)은 고심(苦心)하여 시(詩)를 하였으며 김악(金渥)은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하여……
……顧雞林之士子, 特令朴仁範金渥, 雙飛鳳里, 對躍龍門……伏以,朴仁範苦心爲詩, 金渥克己復禮.…… -『(東文選)』 권47, 狀.
시업(詩業)에 전념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규보(李奎報)도 『백운소설(白雲小說)』 5번에서 최치원(崔致遠)의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와 박인범(朴仁範)의 「경주용삭사(涇州龍朔寺)」, 박인량(朴寅亮)의 「사주귀산사(泗州龜山寺)」 등 삼자시(三子詩)가 중국의 문단을 울렸다고 하였으며, 서거정(徐居正)도 그의 『동인시화(東人詩話)』 권상 2번에서 ‘아동인지이시명어중국 자삼군자시(我東人之以詩鳴於中國, 自三君子始)’라 하여 박인범(朴仁範)의 시명(詩名)을 최치원(崔致遠)과 동렬(同列)로 인정하였다.
그의 벼슬은 시선집(詩選集)에 전하는 바로는 저작랑(著作郞)을 지낸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사실을 일실(逸失)하여 입전(立傳)하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그의 시는 『십초시(十鈔詩)』를 비롯하여 그 밖의 시선집에 10수가 전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경주용삭사(涇州龍朔寺)」ㆍ「구성궁회고(九成宮懷古)」ㆍ「강행정장수재(江行呈張秀才)」(이상 七律) 등이 꼽힌다.
「경주용삭사(涇州龍朔寺)」는 다음과 같다.
翬飛仙閣在靑冥 | 나는 듯한 선각(仙閣)이 푸른 하늘에 우뚝 솟아 |
月殿笙歌歷歷聽 | 월궁(月宮)의 피리소리 역력히 들려온다. |
燈撼螢光明鳥道 | 등불은 반딧불인 양 새가 다니는 길을 비추고 |
梯回虹影到岩扃 | 사닥다리는 무지개 드리운 듯 바위문에 닿았네. |
人隨流水何時盡 | 사람은 흐르는 물 따라 어느 때나 다할꼬? |
竹帶寒山萬古靑 | 대나무는 찬 산을 띠 둘러 만고에 푸른 것을. |
試問是非空色理 | 시비(是非)와 공색(空色)의 이치를 시험삼아 물었더니 |
百年愁醉坐來醒 | 백년 동안의 맺힌 시름 그 자리에서 깨는구나. |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과 『동문선(東文選)』에는 각각 「경주용삭사각(涇州龍朔寺閣)」, 「경주용삭사겸간운서상인(涇州龍朔寺閣兼柬雲栖上人)」으로 표제되어 있는 이 작품은 앞에서 보인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白雲小說)』 5번과 서거정(徐居正)의 『동인시화(東人詩話)』 권상 2번에서 특히 함련(頷聯)의 ‘燈撼螢光明鳥道 梯回虹影落岩扃’【도(倒)가 락(落)으로 되어 있음】의 구(句)를 드러내어 칭도하고 있으며 최해(崔瀣)도 그의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에서 함련(頷聯)과 경련(頸聯)에 비점(批點)을 행하고 있는 것은 보면 섬려(纖麗)한 표현 기교가 이들의 안광(眼光)을 사로잡았던 모양이다. 목전(目前)의 사경(寫景)에서부터 쉽게 풀어나간 이 작품도 함련(頷聯)과 경련(頸聯)이 너무 높아 사실상 이 시는 경련(頸聯)에서 끝나고 있는 느낌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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