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晝永簾垂齋記 (5)
건빵이랑 놀자
5. 총평 1 이 글은 ‘개성인 양인수의 하루’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연암의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당대 개성인의 내면 초상을 접할 수 있다. 2 이 작품은 1편에서는 집을 그리고 있고, 2편에서는 사람을 그리고 있다. 풍경과 사람은 서로 잘 부합된다. 흡사 산수화 속의 점경인물點景人物처럼, 그 풍경에 그 인물이다. 이 집 이름이 왜 ‘주영염수재’인지는 글 어디에도 언급이 없지만, 사실은 글 전체를 통해 그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아마도 연암이 지어준 게 아닐까 싶은 이 집 이름은 하릴없는 양인수의 처지와 기분, 그 일상을 잘 집약해 놓고 있다고 여겨진다. 3 연암은 그 스스로도 평생 뜻을 얻지 못한 사람이기에 양인수와 같이 자신의 능력을 실현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하릴없이 세..
4. 양인수의 취미가 경화세족과 다른 점 사회적 출구가 닫혀 있는 양인수 주영염수재의 주인 양인수는 개성의 사족士族이다. 개성은 전 왕조인 고려의 수도인지라 조선 시대 내내 정치적ㆍ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따라서 개성 사족은 비록 사족이라고는 하나 그 처지가 영남이나 기호畿湖 사족과는 지체가 달랐다. 그래서 인삼 밭을 경영하는 등 상당히 적극적으로 이재理財 활동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인삼은 대청 무역에서 우리 측이 중국에 가지고 간 물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양인수의 물적 기반, 그리고 그런 물적 기반으로 인해 가능했으리라 짐작되는 그 서화골동 취향은 일정하게 당대에 이루어진 대청 무역의 상업적 잉여와 연결되어 있을 개연성이 높다. 그렇기는 하나, 양인수의..
3. 조선의 사대부, 개인 취향에 빠지다 중국지식인들 밀실로 들어가다 그런데 18세기 조선 사대부들이 보여주는 이런 취향의 문화적 진원지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명말明末에 이런 취향이 대대적으로 성행했으니, 당시 중국 사대부들은 정원을 그럴 듯하게 조성하여 그 속에 누각이나 서재를 지어 놓고 거기다 각종 고기古器나 고서화를 비치하여 수시로 감상했으며, 고급 향을 피우고 좋은 차를 마시면서 고상하고 운치 있는 생활을 추구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동시에 그들은 명리나 세속을 초월한 깨끗하고 담박한 정신세계를 강조했다. 이런 태도나 취향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내면세계와 감수성을 확장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계급으로서의 사대부에게 요구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다시 말해 ..
2. 개성 지식인의 하릴없음 양군은 성품이 게으르고, 깊은 곳에 거처하길 좋아하는데, 권태로워지면 문득 주렴을 내리고, 오피궤烏皮几 하나, 거문고 하나, 검劒 하나, 향로 하나, 술병 하나, 다관茶罐 하나, 고서화古書畵 두루마리 하나, 바둑판 하나가 있는 사이에 벌렁 눕는다. 梁君性懶而好深居, 倦至輒下簾, 頹然臥乎烏几一琴一劒一香爐一酒壺一茶竈一古書畵軸一碁局一之間. 매양 자다 일어나 주렴을 걷고 해가 어디쯤 걸렸는지를 보는데, 섬돌 위로 나무 그늘이 언뜻 옮겨가고 울타리 아래 한낮의 닭이 처음 운다. 그러면 안석에 기대어 검을 살피기도 하고, 혹은 거문고 몇 곡조를 타 보기도 하고, 한 잔 술을 조금씩 마시기도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혹은 향을 피우고 차를 달이며, 혹은 서화를 펼쳐 보고, 혹..
1. 작은 규모의 집에 있을 건 다 있다 주영염수재晝永簾垂齋는 양군梁君 인수仁叟의 초당草堂이다. 이 집은 오래된 소나무가 있는 검푸른 절벽 아래에 있으며 기둥이 여덟 개인데, 깊숙한 안쪽을 막아서 심방深房을 만들고, 격자창格子窓을 통하게 하여 탁 트인 대청을 만들었다. 높다랗게 다락을 만들고 아담하게 곁방을 둔 데다 대나무 난간을 두르고 이엉으로 지붕을 덮었으며 오른쪽엔 둥근창을 내고 왼쪽엔 빗살창을 내었으니, 집의 몸체는 비록 작아도 있을 것은 다 갖춰져 있어 겨울에는 환하고 여름에는 서늘하다. 집 뒤에는 배나무 십여 그루가 있고, 대나무 사립문 안팎으론 모두 오래된 살구나무와 붉은 과실이 열리는 복사나무다. 개울 머리에 흰 돌을 두어 맑은 물이 돌에 부딪쳐 세차게 흐르게 했고 멀리 있는 물을 섬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