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은 규모의 집에 있을 건 다 있다
이 단락은 ‘주영염수재’라는 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선 누구의 집인지를 밝히고, 그 다음 집의 규모가 어떠한지를 서술했으며, 끝으로 시선을 밖으로 돌려 집 주변의 풍경이 어떠한지를 묘사했다.
“주영염주재는 양군 인수의 초당이다” 이처럼 이 글은 단도직입적으로 그 서두를 열고 있다. 어떤 에두르는 말 없이 곧바로 ‘직지인심直指人心’하는 형국이다. 이어서 조곤조곤 집 내부를 들여다본다. 그리하여 독자는 이 집의 심방에서 시작해 대청, 다락, 곁방, 대나무로 만든 난간, 초가지붕, 둥근창, 빗살창을 두루 구경하게 된다. 그래서 비록 작은 초당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아담하고 그윽한 집임을 알게 된다.
집에 대한 서술이 끝나면 집 주변의 경관이 소개된다. 집 뒤편으론 배나무 십여 그루가 심겨 있고, 대나무로 만든 사립문 안팎으론 오래된 살구나무와 발그레한 복숭아가 열리는 복사나무가 심겨 있다. 그리고 근처의 개울에 흰 돌을 두어 일부러 물소리를 크게 나게 만들어 사는 곳이 더욱 깊고 그윽하게 느껴지며, 섬돌 곁에는 연못이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과실나무와 시냇물과 연못은 초당과 알맞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드럽고 고즈넉한 자연 경관으로 인해 초당은 더욱 그윽하며, 또한 규모 있게 지어진 초당으로 인해 자연 경관은 더욱 운치가 있게 되었다.
이 자연 경관에 대한 묘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색채감이다. 연암은 이 점을 대단히 의식하면서 이 대목을 서술하고 있다. 가령 배나무의 원문은 ‘설리雪梨’인데 이 말은 새하얀 색을 연상하게 하며, 또한 붉은 과실이 열리는 복사나무(緋桃)라든가, 흰 돌(白石)이라든가 하는 말에서도 뚜렷한 색감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이 단락은 주영염수재라는 집과 그 집 주변의 경관에 대한 객관적 묘사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만 읽어 가지고서는 이 단락에 내재된 숨은 의미까지 읽은 것이라곤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연암이 이 단락의 심층에 부여하고 있는 숨은 의미는 무얼까? 두 가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이 집의 규모다. 비록 아담한 집이기는 하나 이 집은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으며, 게다가 창은 멋을 부려 둥근창과 빗살창을 좌우에 대칭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둥근창의 원문은 ‘원유圓牖’인데, 문틀을 둥글게 짜서 만든 창으로 상당히 멋을 부린 것이며, 빗살창의 원문은 ‘교창交窓’인데, 이는 일명 횡창橫窓이라고도 하는바 살을 어긋나게 맞추어 촘촘하게 짠 창으로 문틀이 가로로 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이 집은 산중에 은거한 가난한 선비의 집은 아니며, 지조나 절개를 강조하는 고사高士나 일민逸民의 집도 아니다.
다른 하나는, 제시된 나무들이다. 이 글에서 제시된 나무들은 모두 온화한 이미지의 나무들이며, 소나무, 잣나무, 매화나무 등과 같이 굳세거나 강건하거나 단아하거나 고고한 이미지를 풍기는 나무들은 아니다. 연암은 이 두 가지 점을 통해 은근히 이 집 주인의 성격, 취향, 경제력 따위를 암시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 단락은 표면적으로는 집주인의 성격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말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그에 대한 복선을 깔아 놓고 있다.
▲ 전문
▲ 겸재 정선의 '탕제제시'
인용
2. 개성 지식인의 하릴없음
5.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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