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自笑集序 (6)
건빵이랑 놀자
6. 설렘 가득한 마음과 말없이 시를 빚어내는 마음 이제 시 두 수를 읽으며 이 글을 마무리 한다. 먼저 박제가朴齊家의 「위인부령화爲人賦嶺花」란 작품이다. 毋將一紅字 泛稱滿眼花 ‘붉다’는 한 글자만을 가지고 눈앞의 온갖 꽃을 말하지 말라. 花鬚有多少 細心一看過 꽃술에는 많고 적고 차이 있거니 꼼꼼히 하나하나 살펴봐야지. 산마루 위에 핀 들꽃을 보고 지은 시이다. 눈앞의 꽃을 보고 그저 ‘붉은 꽃’이라고만 말하지 말라. 시인이 사물을 보는 시선은 이래서는 안 된다. 꽃술의 모양은 어떤지, 붉다면 어떤 붉은 색인지, 그것이 주는 느낌은 어떤지를 말해야 한다. 그래야 그 꽃은 내가 만난 단 하나의 의미가 된다. 가슴으로 만나지 못하는 꽃은 꽃이 아니다. ‘이름 모를 꽃’은 꽃이 아니다. 떨림이 없는 만남은 만..
5. 잃어버린 시는 어디에 있나? 문장의 성대함을 알고 싶은가? 역관의 천한 인사에게 가서 찾아볼 일이다. 사대부들에게서는 찾아볼 길이 없으니, 나는 그것을 부끄러워한다. 연암은 글을 이렇게 끝막는다. 이 서문을 받아든 이홍재의 표정은 어땠을까? 칭찬같기도 하고 비아냥 같기도 하구나. 그런데 연암이 넌즈시 던지는 이 말이 정작 내게는, 시인은 많은데 시다운 시는 찾아보기 힘든 오늘의 시단詩壇을 향한 일침一針으로 읽힌다. 연암의 말투를 좀 더 흉내내 보면, 어려서는 능히 사물을 바라볼 줄도 알고, 우주만물이라는 텍스트를 읽을 줄 알다가도 자라면 대학입시와 취직시험에 필요한 공부에만 힘을 쏟는다. 그래서 대학에 합격하거나 직장에 취직하고 나면 그간 배운 지식들이란 마냥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
4. 고문은 역관에게, 전통복식은 기생에게 남다 내가 이에 낯빛을 고치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사대부가 태어나 어려서는 능히 책을 읽어도, 자라면 공령功令의 글을 배워 변려의 꾸미는 글을 익힌다. 그래서 과거에 급제하고 나면 더벅머리를 가리는 임시변통의 고깔모자나 고기 잡는 통발, 토끼 잡는 올무 마냥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리고, 그나마 급제하지 못하면 흰 머리가 될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고 애를 쓴다. 그러니 어찌 다시 이른바 고문사란 것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역관이란 직업은 사대부가 비루하고 천하게 여기는 것이다. 나는 천재千載의 사이에 도리어 저서著書하고 입언立言하는 실지를 서리 구실하는 말단의 기술로 보아버리게 될까 염려한다. 그렇게 되면 연극하는 마당의 검은 모자나 고을 기생의 긴 치마가 ..
3. 역관임에도 고전문장으로 문집을 만든 이홍재 이홍재李弘載 군이 젋어서부터 내게서 배웠다. 장성해서는 한어漢語 통역에 힘을 쏟았으니 그 집안이 대대로 역관譯官이었던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문학을 권면하지 않았다. 이군이 그 학업에 힘을 쏟더니 관대冠帶를 하고는 사역원司譯院에 벼슬나갔다. 나 또한 이군이 앞서 책을 읽음이 자못 총명하여 문장의 도리를 능히 알았으나 이제는 거의 잊었으리라 생각하여, 그저 그렇게 없어지고 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었다. 하루는 이군이 스스로 지은 것이라고 하면서 제목하여 ‘자소집自笑集’이라 하고는 내게 보여주었다. 논論ㆍ변辨ㆍ서序ㆍ기記ㆍ서書ㆍ설說 같은 백여편은 모두 내용이 풍부하고 논리가 정연하여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처음에는 의아히 여겨 말하였다. “본업을..
2. 촌스럽고 경박하다며 살아남은 전통을 멸시하다 해마다 가는 사신이 중국에 들어가 남쪽 吳 땅의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吳 땅 사람이 말하였다. “내 고향에 머리 깎는 가게가 있는데, 간판을 ‘성세락사盛世樂事’라고 했습디다.” 인하여 서로 보고 크게 웃다가는 조금 있더니 남몰래 눈물을 흘리려 하더라고 했다. 歲价之入燕也, 與吳人語吳人曰: “吾鄕有剃頭店, 榜之曰盛世樂事.” 因相視大噱, 己而潛然欲涕云.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 사신 가서 남쪽 오吳 땅 사람과 만나 이야기 하다 보니, 제 고향에 새로 생긴 이발소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간판이 이름하여 ‘성세락사盛世樂事’라는 것이다. 예전 법도로야 부모께 받자온 신체발부身體髮膚에 손대는 일이 가당키나 했으랴. 구한말 개화기 때조차도 ‘차두此頭는 가..
1. 사라진 예법은 시골깡촌에 살아있다 초등학교 4학년 난 딸아이는 날마다 일기를 쓰는데, 담임 선생님이 날씨를 그저 ‘맑음’ ‘흐림’으로만 적지 말고 설명적인 기술로 적어오라고 한 모양이다. 몇 달이 넘게 일기를 써오고 있지만, 그 날씨의 묘사가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노랗고 어여쁜 개나리같이 생긴 해가 허연 수염 난 구름과 둥실 둥실 떠 있다.” “시원한 바람이 사뿐사뿐 뛰어 다니고, 하늘이 울적해 보인다.” “어두운 하늘에서 시커먼 구름들이 각자 심술을 내면서 귀엽고 아주 조그만 빗방울들을 하나하나씩 새나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듯이 떨어뜨린다.” “탱탱볼처럼 동그랗고, 오렌지처럼 상큼한 햇님이 방글방글 벙글벙글 신나게 수영하듯 저리 빙글 요리 빙글 거리며 파아란 하늘에 동동 떠 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