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촌스럽고 경박하다며 살아남은 전통을 멸시하다
해마다 가는 사신이 중국에 들어가 남쪽 吳 땅의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吳 땅 사람이 말하였다. “내 고향에 머리 깎는 가게가 있는데, 간판을 ‘성세락사盛世樂事’라고 했습디다.” 인하여 서로 보고 크게 웃다가는 조금 있더니 남몰래 눈물을 흘리려 하더라고 했다. 歲价之入燕也, 與吳人語吳人曰: “吾鄕有剃頭店, 榜之曰盛世樂事.” 因相視大噱, 己而潛然欲涕云. |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 사신 가서 남쪽 오吳 땅 사람과 만나 이야기 하다 보니, 제 고향에 새로 생긴 이발소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간판이 이름하여 ‘성세락사盛世樂事’라는 것이다. 예전 법도로야 부모께 받자온 신체발부身體髮膚에 손대는 일이 가당키나 했으랴. 구한말 개화기 때조차도 ‘차두此頭는 가단可斷이언정 차발此髮은 불가단야不可斷也’라 하던 그 머리카락이 아니던가 말이다. 그런데 잠깐 세상이 변하고 보니, 결코 있을 수 없던 그 일이 ‘태평한 세상에 즐거운 일’로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습관이 오래되면 성품이 된다.’ 연암은 이 말을 하려고 엉뚱한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았던 것일까? 무슨 일이든 오래 되풀이하다 보면 생각이 무뎌지고, 관성만 남게 된다. 관성에 따르는 것이 성품이요 습속이다. 성품은 누구나 그러려니 하는 것이니 여기에 옳고 그름의 판단이 개재될 까닭이 없다. 그래 왔으니까, 남들이 하니까 하며 생각 없이 따라 하니 습속이라 한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슬퍼하며 말하였다. “습관이 오래되면 성품이 된다 하는데, 시속時俗의 습관을 변화시킬 수야 있으랴? 우리나라 아낙네의 복식만 해도 자못 이일과 서로 비슷하다. 옛 제도에는 허리띠가 있었고, 모두 넓은 소매에 긴 치마를 입었었다. 그러던 것이 고려말에 임금들이 원나라 공주에게 많이 장가들면서부터 궁중의 머리모양과 복식이 모두 몽고의 오랑캐 제도를 따르게 되었다. 당시 사대부들이 다투어 궁중의 모양을 사모하여 드디어 풍속을 이루고 말았다. 지금에 3,4백년이 되도록 그 제도를 고치지 않아, 저고리는 겨우 어깨를 덮고 소매는 마치 감아 놓은 것처럼 좁아서, 요망하고 창피하여 참으로 한심스럽다. 그러나 여러 고을 기생들의 복식에는 도리어 아름다운 제도가 남아있어, 쪽을 지어 비녀를 꽂고 원삼圓衫에는 동임이 있다. 이제 그 넓은 소매가 넉넉하고 긴 허리띠가 드리운 것을 보면 맵시가 있어 기뻐할만 하다. 지금에 비록 예법을 아는 집이 있어 그 요망하고 경망스런 습속을 변화하여 옛 제도를 회복하려고 해도, 습속이 오래되매 넓은 소매와 긴 띠는 기생의 복식과 흡사하다고 여길터이니 소매를 찢고 띠를 끊어버리며 그 남편을 욕하지 않겠는가?” 吾聞而悲之曰: “習久則成性, 俗之習矣, 其可變乎哉? 東方婦人之服, 頗與此事相類. 舊制有帶, 而皆闊袖長裙, 及勝國末, 多尙元公主, 宮中髻服, 皆蒙古胡制, 于時士大夫爭慕宮樣, 遂以成風, 至今三四百載, 不變其制. 衫纔履肩, 袖窄如纏, 妖佻猖披, 足爲寒心. 而列邑妓服, 反存雅制. 束𨥁爲髻, 圓衫純. 今觀其廣袖容與, 長紳委蛇, 褎然可喜. 今雖有知禮之家, 欲變其妖佻之習, 以復其舊制, 而俗習久矣. 廣袖長紳, 爲其似妓服也. 則其有不快裂, 而罵其夫子者耶? |
연암은 다시 우리나라 아낙네의 복식 문제를 들고 나온다. 예전 여염의 아낙네들은 넓은 통 소매에 허리띠를 두른 긴 치마를 입었었다. 그러다가 고려말 임금들이 원나라 공주에게 장가들게 되면서부터 몽고풍이 들어와 오랑캐의 상스런 머리 모양과 복식이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이제 3, 4백년이 지나고 보니 저고리란 것은 겨우 어깨를 가릴 지경이고, 소매는 팔에 둘둘 말아 놓은 것처럼 좁아서 입은 꼴을 보면 요망하고 창피하여 보기에 민망할 지경이다. 그런데 시골 기생들의 복식에는 허리띠도 있고 소매도 넓어 오히려 아직도 예전의 법도가 남아 있다. 이제 어떤 사람이 있어, 사대부 아낙네의 복장이 요망하기 짝이 없고 옛 법도에도 어긋나니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아낙네들은 누구를 기생년으로 만들려 하느냐고 발끈할 것이 아닌가? 제 모습이 창피한 줄은 모르고, 기생 복장만 한심하다 타박하는 꼴인 것이다.
앞머리를 빡빡 깎고 오랑캐 복장을 하고서 연극 무대 앞에 앉은 한족들은 누구인가? 남사스러운 복장을 하고서도 점잖은 체 하는 사대부가士大夫家 아낙네들은 누구인가? 오히려 옛 한궁漢宮의 위의威儀를 지녀 무대에 오른 배우는 누구이며, 순후한 아낙네의 복장을 입은 기생은 누구인가? 오늘날에도 이런 일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습속과 타성에 젖어, 기득권이 지켜주는 그늘에 앉아 우습지도 않고 같지도 않은 짓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한족들과 아낙들은 지금도 여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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