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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잃어버린 예법은 시골에 있다 - 5. 잃어버린 시는 어디에 있나? 본문

책/한문(漢文)

잃어버린 예법은 시골에 있다 - 5. 잃어버린 시는 어디에 있나?

건방진방랑자 2020. 4. 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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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잃어버린 시는 어디에 있나?

 

 

문장의 성대함을 알고 싶은가? 역관의 천한 인사에게 가서 찾아볼 일이다. 사대부들에게서는 찾아볼 길이 없으니, 나는 그것을 부끄러워한다. 연암은 글을 이렇게 끝막는다. 이 서문을 받아든 이홍재의 표정은 어땠을까? 칭찬같기도 하고 비아냥 같기도 하구나.

그런데 연암이 넌즈시 던지는 이 말이 정작 내게는, 시인은 많은데 시다운 시는 찾아보기 힘든 오늘의 시단詩壇을 향한 일침一針으로 읽힌다. 연암의 말투를 좀 더 흉내내 보면, 어려서는 능히 사물을 바라볼 줄도 알고, 우주만물이라는 텍스트를 읽을 줄 알다가도 자라면 대학입시와 취직시험에 필요한 공부에만 힘을 쏟는다. 그래서 대학에 합격하거나 직장에 취직하고 나면 그간 배운 지식들이란 마냥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다시 어찌 이른바 문학이란 것이, 시란 것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정작 시인들의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등단하기 전에는 제법 다른 사람의 시집도 읽고, 일상에서 길어 올린 삶의 비의秘儀를 뿌듯하게 느끼다가도, 일단 등단하여 시인이란 이름을 얻고 나면, 그날로 시 짓는 일은 작파하고 죽을 때까지 시인이란 이름만 팔다가는 사람도 있고, 푸념도 못되는 넋두리를 시라고 우기는 사람도 뜻밖에 적지 않다. 암호문인지 삐라인지 구분 안되는 저도 모를 소리를 시란 이름으로 발표하고, 각주가 수십 개 붙어야 알까 말까한 희한한 글을 써놓고 너희들이 뭘 알어 하는 시도 있다. 이렇게 되면 그 전날 치열하고 절박하던 언어의 진실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제 이명耳鳴에 도취되어 좀 좋으냐고 뽐내고, 제 코고는 습관을 누가 지적하면 시도 모르는 주제에 하며 발끈 성을 낸다.

시집은 왜 그리 쏟아져 나오는 것이며, 잡지마다 신인은 왜 이다지 차고 넘친단 말이냐? 그런데도 정작 시다운 삶은 요원하기만 하고, 세상은 더 각박해만 지고, 시인다운 시인은 찾아보기가 힘들구나. 그들에게 시는 더 이상 설레임도 아니고, 기쁨도 아니며, 그저 시인이란 이름을 충족시켜 주는 관성화된 나열일 뿐이 되고 말았다. ! 답답하구나. 잃어버린 시를 어디 가서 찾을까? 어떤 시골에 가야 잃어버린 시의 위의威儀를 되찾을 수 있을까?

고문사古文辭를 찾으려면 사대부에게 가서는 안 된다. 역관에게 가야만 찾을 수가 있으리라. 진정한 가치는 촌구석에 있고 연극판에 있다. 기생에게 남아 있고, 역관에게 남아 있다. 서울에는 없고, 일상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여염의 아낙에게도 없고, 사대부에게서는 더더구나 기대할 수가 없다. 시는 정작 시인의 시집 속에는 있지 않다. 그럴진대 잃어버린 시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초등학교 다니는 내 딸 아이의 일기장에서 찾을 것인가? 유행가의 가사 속에서 찾을까? 가치가 전도된 세상, 지식인이 더 이상 지식인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포기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세상은 어째서 이렇듯 거꾸로만 가는가?

그러니 이홍재가 제 문집의 제목을 自笑라 한 것은, 써놓고 보니 하잘 것 없어 우습다는 겸양의 뜻을 담은 것인가? 아니면 너희들 하는 꼴이 하도 우스워서 내 혼자 웃는다는 뜻인가? 그의 웃음에 담긴 의미가 나는 자꾸 부끄럽게 여겨진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사라진 예법은 시골깡촌에 살아있다

2. 촌스럽고 경박하다며 살아남은 전통을 멸시하다

3. 역관임에도 고전문장으로 문집을 만든 이홍재

4. 고문은 역관에게, 전통복식은 기생에게 남다

5. 잃어버린 시는 어디에 있나?

6. 설렘 가득한 마음과 말없이 시를 빚어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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