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라진 예법은 시골깡촌에 살아있다
초등학교 4학년 난 딸아이는 날마다 일기를 쓰는데, 담임 선생님이 날씨를 그저 ‘맑음’ ‘흐림’으로만 적지 말고 설명적인 기술로 적어오라고 한 모양이다. 몇 달이 넘게 일기를 써오고 있지만, 그 날씨의 묘사가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노랗고 어여쁜 개나리같이 생긴 해가 허연 수염 난 구름과 둥실 둥실 떠 있다.” “시원한 바람이 사뿐사뿐 뛰어 다니고, 하늘이 울적해 보인다.” “어두운 하늘에서 시커먼 구름들이 각자 심술을 내면서 귀엽고 아주 조그만 빗방울들을 하나하나씩 새나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듯이 떨어뜨린다.” “탱탱볼처럼 동그랗고, 오렌지처럼 상큼한 햇님이 방글방글 벙글벙글 신나게 수영하듯 저리 빙글 요리 빙글 거리며 파아란 하늘에 동동 떠 있다.” “어버이날을 축하하듯 해가 눈치 있게 제법 하얀 이까지 드러내며 하늘에서 인사를 한다.” “구름이 서럽거나 우울한 일이 많았던 모양인지 얼굴이 어둑어둑하고, 마침내는 눈물을 엄청나게 흘리고 있다.” 한동안 나는 딸의 일기장 읽어보는 재미로 지낸 적이 있다.
이번에 읽으려는 「자소집서自笑集序」는 제목부터가 우스꽝스럽다. ‘스스로 웃는다’니, 무엇을 웃는다는 것인가? 자기가 지은 것이지만 읽어보니 부끄러워 스스로 웃는다는 얘기일터이지만, 그것을 문집으로 엮는 심사는 또 무어란 말인가? 겸손 끝에 은근한 제 자랑이 담긴 웃기는 제목이다. 『자소집』은 누구의 문집인가? 약관의 역관인 이홍재李弘載의 문집이다. 그는 사역원司譯院에 소속된 중국어 역관이었다. 중국어나 열심히 배우면 충분할 그가 갑자기 제 문집을 들고 와 연암에게 서문을 써 달라고 한다. 이 또한 웃기는 노릇이 아닌가?
연암이 꺼내드는 첫 마디는 ‘예禮를 잃게 되면 초야草野에서 찾는다’는 말이다. 공자의 말씀이다. 시대가 변하고 보니 예전 순후하던 시절의 예법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잃어버린 예법을 어디서 되찾을 것인가? 그것은 서울에는 이미 남아 있지 않고, 시골구석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다시 말해 행세하는 서울 사람들은 모두 상놈이 되고 말았고, 저 시골의 무지렁이 백성들이 오히려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말씀이다.
어디 그뿐인가? 옛 중국의 의관과 문물文物은 이제 연극배우들의 복장이나 소품 속에서만 찾을 수가 있다. 오모烏帽에 단령團領, 즉 검은 모자에 소매 둥근 옷을 입고서 옥대玉帶를 두르고 상아로 만든 홀笏을 잡고 있던 명나라 대신들의 위엄있던 기품은 모두 오랑캐의 변발호복辮髮胡服으로 바뀌어져 버렸다. 이제 와서 그것들은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들의 복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사람들은 벌써 예전의 법제를 까맣게 잊고서, 황비홍처럼 앞머리를 빡빡 깎은 변발을 하고 여진족의 옷을 입고, 배우들의 과장스런 몸짓에 넋 놓고 앉아 연신 실없는 웃음만 터뜨릴 뿐이다. 그러니 까맣게 잊고 있던 제 조상의 복식을 연극 무대에서 느닷없이 만나본들 무슨 새삼스런 감흥이 일 까닭이 없다.
▲ 전문
인용
- 班固의 『漢書』 「藝文志」에 “공자께서는 ‘예를 잃으면 草野에서 이를 찾는다’고 하셨는데, 지금에 聖人과의 거리가 아득해지고 道術이 폐하여져 다시 찾을 곳이 없으니, 저 九家의 사람들은 오히려 草野에서 병을 치료해야 하지 않겠는가? 仲尼有言, ‘禮失而求諸野’, 方今去聖久遠, 道術缺廢, 無所更索, 彼九家者, 不猶癒於野乎?”라 하였다. [본문으로]
- 『論語』「憲問」 18에 ‘被髮左袵’의 말이 있는데, 머리를 풀고 옷섶을 좌로 여민다는 뜻으로 오랑캐의 습속을 말한다. 여기서 ‘薙髮左袵’은 청나라의 깎은 머리 모양과 복식을 나타내니, 漢族의 문화를 버려 오랑캐의 습속을 따름을 말함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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