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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歸去來辭) - 1. 저작 동기 본문

산문놀이터/중국

귀거래사(歸去來辭) - 1. 저작 동기

건방진방랑자 2020. 8. 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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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 녹봉 때문에 허리 굽히느니 나 돌아갈래

귀거래사(歸去來辭)

 

도연명(陶淵明)

 

 

1. 저작 동기

 

朱文公: “歸去來辭, 處士陶淵明之所作也. 有高志遠識, 不能俯仰時俗. 嘗爲彭澤, 督郵行縣且至, 吏白當束帶見之,’ 歎曰: ‘吾安能爲五斗米, 折腰向鄕里小兒耶?’ 卽日解印綏去, 作此詞, 以見志. 後以劉裕將移, 恥事二姓, 遂不復仕, 宋文帝, 特徵不至, 卒諡靖節徵士. 歐陽公, ‘兩晉, 無文章, 幸獨有此篇耳. 然其詞義夷曠蕭散, 雖託, 而無其尤怨切蹙之病云.”

淵明元序曰: “余家賓, 幼稚盈室, 甁無儲粟. 親故多勸余爲長吏, 脫然有懷. 家叔, 以余貧苦, 遂見用爲小邑. 于時, 風波未靜, 心憚遠役. 彭澤, 去家百里, 公田之利, 足以爲潤. 及少日, 眷然有歸歟之情, 何則? 質性自然, 非矯勵所得, 飢凍雖切, 違己交病. 於是, 悵然慷慨, 深愧平生之志, 猶望一稔, 當歛裳宵逝. 氏妹喪于武昌, 情在駿奔, 自免去職. 仲秋至冬, 在官八十餘日. 因事順心, 命之曰歸去來兮,’ 乙巳歲十一月也.” 淵明時年, 四十一歲.

 

 

 

 

 

 

해석

朱文公: “歸去來辭,

주문공이 말했다. “귀거래사

 

處士陶淵明之所作也.

()나라 처사인 도연명이 지은 글이다.

 

有高志遠識, 不能俯仰時俗.

도잠은 높은 뜻과 원대한 식견이 있어 시속에 구부리거나, 우러러 보지 않았다.

 

嘗爲彭澤, 督郵行縣且至,

당시에 평택령이 되었는데 독우가 평택에 와서 이른다고 하니,

 

吏白當束帶見之,’

아전이 마땅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그를 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자,

 

歎曰: ‘吾安能爲五斗米,

도잠은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어찌 다섯 말의 쌀[五斗米]을 위하여,

 

折腰向鄕里小兒耶?’

허리를 굽혀 향리의 어린놈에게 절하랴?’

 

卽日解印綏去, 作此詞, 以見志.

그 날로 인수를 풀고 떠나 이 글을 지어 자신의 뜻을 드러냈다.

 

後以劉裕將移, 恥事二姓,

훗날 유유(劉裕)는 진나라의 국통을 바꾸려 하자 도연명은 두 성씨 섬기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遂不復仕,

다시는 벼슬하지 않았고,

 

宋文帝, 特徵不至,

송문제 때에 불러도 가질 않아

 

卒諡靖節徵士.

죽은 후에 정절징사(靖節徵士)’라는 시호를 받았다.

 

歐陽公, ‘兩晉, 無文章, 幸獨有此篇耳.

구양수는 말했다. ‘양진시대에는 문장이 없는데, 다행히 유독 이 편이 있을 뿐이다.

 

然其詞義夷曠蕭散,

그러나 말뜻은 평이하고 넓으며 엄숙하고 흩어져,

 

雖託,

비록 초사의 소리에 의탁했지만,

 

而無其尤怨切蹙之病云.’”

더욱 원망하고 간절히 삼가는 병통이 없다.’”

 

淵明元序曰: “余家賓, 幼稚盈室,

연명은 원래의 서문에서 말했다. “나는 집이 가난하여 어린이들이 집에 가득하나

 

甁無儲粟.

쌀통엔 저장된 곡식이 없었다.

 

親故多勸余爲長吏,

그러자 친구들이 많이 나에게 고을의 수령이 되라고 권하는 자가 많아

 

脫然有懷.

태연하게 벼슬할 생각을 하게 됐다.

 

家叔, 以余貧苦,

가숙은 내가 가난하여 괴로울 거라 여겨

 

遂見用爲小邑.

마침내 등용하여 소읍을 다스리게 했다.

 

于時, 風波未靜, 心憚遠役.

이때에 풍파가 진정되지 않았고 마음은 멀리 가는 것을 꺼렸다.

 

彭澤, 去家百里,

팽택은 집과의 거리가 100리였고

 

公田之利, 足以爲潤.

공전의 이로움(녹봉)은 우리 집의 살림을 윤택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及少日, 眷然有歸歟之情, 何則?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뒤돌아보며 귀향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니, 왜인가?

 

質性自然, 非矯勵所得,

이것은 성질의 자연스러움이고 억지로 얻어진 건 아니며,

 

飢凍雖切, 違己交病.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게 또한 간절하지만 나의 뜻과 어긋나 서로 해롭기 때문이었다.

 

於是, 悵然慷慨, 深愧平生之志,

이에 서글프고 강개하여 깊이 평생의 뜻을 부끄러워했지만

 

猶望一稔, 當歛裳宵逝.

오히려 한 해를 마치길 바라며 마땅히 치마를 걷고 밤에 떠나려 했었다.

 

氏妹喪于武昌,

얼마 후 정씨에게 시집 간 누이가 무창에서 숨져서,

 

情在駿奔, 自免去職.

마음으로 초상에 달려가고자 하여 스스로 면직하고 벼슬을 버렸다.

 

仲秋至冬, 在官八十餘日.

중추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관직에 있은 지 80여 일만이다.

 

因事順心, 命之曰歸去來兮,’

일에 따르고 마음을 순하게 하여 그것을 귀거래사로 명했으니,

 

乙巳歲十一月也.”

을사년 11월이었다.”

 

淵明時年, 四十一歲.

연명의 이때 나이는 41세였다.

 

 

인용

목차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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