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강희맹 - 승목설(升木說)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강희맹 - 승목설(升木說)

건방진방랑자 2019. 10. 26. 10:30
728x90
반응형

 더 높이 오를수록 떨어지면 더 아프다

승목설(升木說)

 

강희맹(姜希孟)

 

 

童甲乙, 樵於山, 乙性儇利, 飛度林表, 捷如猿猱, 所得多而美, 甲性懦, 不能升木, 則取宿草, 僅補炊㸑而已.

乙詑於甲曰: “若不知取薪之道乎? 夫美薪不在平地. 吾始也, 取之終日, 而不盈一擔, 力竭而功少, 退而學緣木之術. 初試之, 足心酸澁, 反顧而欲墜, 旣而, 稍縱矣, 旬月而履高若卑. 以此求薪, 然後得詣夫人所不到處, 去地愈高, 而得薪愈多, 吾以是知狃於尋常者, 無倍蓰之功.”

甲猶然笑曰: “吾居地面, 爾居木抄, 相距不啻尋丈. 以吾觀之, 庸詎知距吾遠者不爲卑乎? 以爾觀之, 庸詎知距爾遠者不爲高乎? 卑或不卑, 高或不高, 高與不高, 卑與不卑, 非我與若所定也. 夫得利厚者, 基禍深, 收功急者, 反致速, 已乎已乎! 吾不敢效若矣.” 乙莫知所謂.

後月餘, 乙緣崖上百丈喬松取薪, 失手墜地而絶, 其父羿歸, 以溲灌其口, 良久而氣復. 居數月, 始嚥酒漿, 折兩股, 喪兩明, 塊然若行屍. 令其父造於甲, 請問卑高之說.

甲曰: “夫上下無定位, 卑高無定名, 有下則必有上, 無卑則安有高? 因下以爲上. 升高而自卑, 然則高者卑之積, 下者上之漸, 恒乎高者, 其高易卑, 樂於上者, 其上可下. 高者失其高, 求安於卑, 不可得也; 上者失其上, 欲止於下, 不可得也. 由是論之, 卑不愈於高, 而下不愈於上者乎? 乙之樵也, 安上而惡下, 耽高而厭卑, 幾何而不至於傷生乎? 人之欲得美薪, 常情也, 美薪之多於樹杪, 高危之所阻也. 貪其利而忘其危, 不知高一分則危一分, 距地遠而身反卑, 以此誇於人, 不亦愚乎? 吾與乙偕樵於山也久矣, 一日之樵, 常不及乙之半, 吾不以爲恨者. 吾有可久之道也, 何也? 乙收功於至險, 童丱而廢棄, 雖欲延其力於後日, 難矣. 吾雖庸, 採薪不廢, 老死而後已, 未知孰爲夥孰爲小, 孰爲高孰爲卑也?” 其父歸告於乙, 相與提携一痛, 始悟前說之有理也.

衿之父老有談此事者, 無爲子書以戒子弟云. 私淑齋集卷之九

 

 

 

 

해석

童甲乙, 樵於山, 乙性儇利, 飛度林表, 捷如猿猱, 所得多而美, 甲性懦, 不能升木, 則取宿草, 僅補炊㸑而已.

갑과 을 아이가 산에서 나무 캐는데 을()은 영리하고 영악해 숲을 날 듯 다니니 잔나비처럼 민첩해 좋은 나무를 많이 얻었지만 갑()의 성품은 게을러 나무를 탈 수 없어 묵은 풀만 취해 겨우 불 때는 데 보탤 뿐이었다.

 

乙詑於甲曰: “若不知取薪之道乎? 夫美薪不在平地.

을이 갑을 타이르며 말했다. “너는 땔나무를 취하는 방법을 모르냐? 좋은 땔나무는 평지에 있지 않아.

 

吾始也, 取之終日, 而不盈一擔, 力竭而功少, 退而學緣木之術.

나는 처음에 종일토록 모았지만 한 양을 채우지 못해서 힘은 다했지만 공은 적어서 물러나 나무 타는 방법을 배웠어.

 

初試之, 足心酸澁, 反顧而欲墜, 旣而, 稍縱矣, 旬月而履高若卑.

처음 그걸 시험해보는데 다리 덜덜 떨려 되돌아보면 떨어질 듯했었는데 이윽고 조금씩 자유분방해져 열흘이나 한달쯤엔 높은 곳 밟길 낮은 곳처럼 했거든.

 

以此求薪, 然後得詣夫人所不到處, 去地愈高, 而得薪愈多, 吾以是知狃於尋常者, 無倍蓰之功.”

이 방법으로 땔나무를 구한 후에야 어른도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 이를 수 있었고 땅과의 거리가 더욱 높아질수록 땔나무를 얻은 건 더욱 많아졌으니 나는 이것으로 예사로운 습관에 머문[狃於尋常] 이는 2배나 5배의 공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

 

甲猶然笑曰: “吾居地面, 爾居木抄, 相距不啻尋丈.

갑은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나는 지표면에 있고 너는 나뭇가지 끝에 있어 서로의 거리가 8척이나 10척 정도심장(尋丈): ()8척 장()10.뿐만이 아니야.

 

以吾觀之, 庸詎知距吾遠者不爲卑乎? 以爾觀之, 庸詎知距爾遠者不爲高乎?

나의 자리로 그걸 보면 어찌 나와의 거리가 먼 것이 낮음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겠는가? 너의 자리로 그걸 보면 어찌 너와의 거리가 먼 것이 높음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겠는가?

 

卑或不卑, 高或不高, 高與不高, 卑與不卑, 非我與若所定也.

낮거나 혹 낮지 않거나 높거나 혹 높지 않거나 높음과 높지 않음, 낮음과 낮지 않음은 나와 네가 정할 게 아니지.

 

夫得利厚者, 基禍深, 收功急者, 反致速, 已乎已乎! 吾不敢效若矣.” 乙莫知所謂.

대체로 이익이 많이 얻은 이는 재앙이 깊고 거둔 공이 빠른 이는 도리어 다함이 빠르니, 그만 두자! 그만 두자! 나는 감히 너를 본받진 않을 거야.” 을은 할 말을 몰랐다.

 

後月餘, 乙緣崖上百丈喬松取薪, 失手墜地而絶, 其父羿歸, 以溲灌其口, 良久而氣復.

훗날 한 달여에 을은 벼랑 가 백여 길이의 노ㅍ은 소나무를 타고서 땔나무를 취하다가 손을 놓쳐 땅에 떨어져 다쳤고 아버진 황급히 돌아와 그 입을 물로 씻기니 오래되어 기가 회복됐다.

 

居數月, 始嚥酒漿, 折兩股, 喪兩明, 塊然若行屍.

몇 개월이 지나 처음으로 술을 마셨지만 두 다리가 끊어졌고 두 눈의 밝음을 상실해 흙덩이처럼 걸어다니는 시체 같았다.

 

令其父造於甲, 請問卑高之說.

아버지에게 갑에게 가서 비고지설(卑高之說)’을 묻길 청했다.

 

甲曰: “夫上下無定位, 卑高無定名, 有下則必有上, 無卑則安有高? 因下以爲上.

갑이 말했다. “대체로 위와 아래는 정해진 위치가 아니고 낮고 높음도 정해진 이름이 아니니 아래가 있으면 반드시 위가 있으니 낮은 게 없다면 어찌 높은 게 있겠습니까? 아래가 있기 때문에 위가 되는 것입니다.

 

升高而自卑, 然則高者卑之積, 下者上之漸, 恒乎高者, 其高易卑, 樂於上者, 其上可下.

나무를 타니 스스로 낮아지니 그렇다면 높은 것이란 낮은 것들이 쌓아진 것이고 아래 있다는 것은 위에 있는 것이 나아간 것으로 높은 것에 항심을 둔 이는 높은 것이 낮아지기 쉽고 위에 있는 걸 즐기는 이는 위에 있음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高者失其高, 求安於卑, 不可得也; 上者失其上, 欲止於下, 不可得也.

높이 있는 이가 높음을 상실하지만 낮음에서 편안하길 구하더라도 할 수가 없고 위에 있는 이가 위에 있음을 상실하지만 아래에 그치려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由是論之, 卑不愈於高, 而下不愈於上者乎?

이것으로 그걸 논하자면 낮은 것이 높은 것보다 낫지 않겠으며 아래 있는 것이 높이 있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乙之樵也, 安上而惡下, 耽高而厭卑, 幾何而不至於傷生乎?

을이 나무를 함에 위에 있는 걸 편안히 했고 아래 있는 걸 미워했으며 높은 것을 탐했고 낮은 것을 싫어했으니 얼마나 삶을 손상시킴에 이르지 않았겠습니까?

 

人之欲得美薪, 常情也, 美薪之多於樹杪, 高危之所阻也.

사람이 좋은 땔나무를 얻고자 하는 건 평범한 마음인데 좋은 땔나무는 나뭇가지 끝, 높고도 위험하여 좁은 곳에 많습니다.

 

貪其利而忘其危, 不知高一分則危一分, 距地遠而身反卑, 以此誇於人, 不亦愚乎?

이익을 탐하다보면 위험함을 잊게 되어 높이가 한 푼이 되면 위험이 한 푼이 되고 땅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몸은 도리어 낮아짐을 알지 못하니 이것으로 남에게 자랑한다면 또한 어리석은 게 아닐까요?

 

吾與乙偕樵於山也久矣, 一日之樵, 常不及乙之半, 吾不以爲恨者. 吾有可久之道也, 何也?

저와 을은 모두 산에서 나무를 한 지 오래인데 하루의 땔감은 항상 을의 반절에도 미치지 않지만 저는 한스러워하질 않습니다. 제가 오래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乙收功於至險, 童丱而廢棄, 雖欲延其力於後日, 難矣.

을은 지극히 험난한 데서 공을 거두다가 아이임동관(童丱): 11살부터 14살까지의 어린아이.에도 그만 두게 됐으니 비록 그 힘을 뒷 날에 연장하려 해도 어렵습니다.

 

吾雖庸, 採薪不廢, 老死而後已, 未知孰爲夥孰爲小, 孰爲高孰爲卑也?”

저는 비록 일상적으로 땔나무 구하길 멈추지 않고 죽어서야 그만 두리니 대체로 누가 많아질 것이고 누가 적어질 것이며 누가 높아질 것이고 누가 낮아질 것을 알겠습니까?

 

其父歸告於乙, 相與提携一痛, 始悟前說之有理也. 衿之父老有談此事者, 無爲子書以戒子弟云. 私淑齋集卷之九

아버지는 을에게 돌아가 고했고 서로 끌어안고 한결 같이 아파하며 비로소 앞 말에 이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에 담고 있는 동네 어르신[父老]이 이 일을 말하는 이가 있어 무위자(無爲子, 강희맹의 호)가 써서 자제(子弟)를 경계하려 한다.

 

 

인용

저자 / 지도

앞 글(高山九曲潭記) / 뒷 글(乞致仕箚子)

13117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