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이 살던 아홉 골짜기의 형세를 그리며 그를 추억하다
고산구곡담기(高山九曲潭記)
최립(崔岦)
余於栗谷公, 弱冠友也, 公旣爲世大儒, 尊用於朝, 不幸未究卒. 今二十五年矣, 顧余一無用物耳, 老而不死. 適與公子景臨生, 遇於西京, 俯仰世故, 談不足而涕有餘. 生乃請余記公故居海之高山九曲潭者. 余自公卜地之初, 佩銅鄰縣, 還往實熟. 所謂九曲潭者, 未嘗不在夢想之中, 復据生揭列其次而述曰:
第一曲爲冠巖, 離州城而洞四十五里, 其距海門二十里. 山頭有立石若冠焉者而卓然故以名, 意亦取夫冠始之義乎? 自此而往, 山勢逶迤, 溪水竝之, 而其陡絶處, 下必澄潭. 足爲隱者之所盤旋, 蓋有山村數家始見焉.
第二曲爲花巖, 自冠巖五里許, 巖縫石鏬皆花, 如山榴者叢生故以名, 後面山村可十餘家.
第三曲爲翠屛, 自花巖三四里許, 巖逾多奇而翠圍如屛狀故名. 屛前小野, 洞中人農焉, 野中有盤松一蓋, 下可坐數百人, 屛北, 士人安氏家焉.
第四曲爲松崖, 自翠屛三四里許, 石壁千尺, 其上松林翳日故名. 潭心有石如半露船形者, 名曰船巖, 上可坐八人, 士人朴氏對而家焉, 蓋從公入洞也.
第五曲爲隱屛, 自松崖二三里許, 石峯高圓, 明麗特異, 潭邊底皆石若砌, 而貯之水者. 屛之義視前而隱, 又近取諸身, 以託退休之義乎? 公始卽石潭屋之, 略爲棲息之所, 而從學旣衆, 則相與謀爲可以容處. 規設益備, 則尊先惠後, 不可一少, 是有隱屛精舍, 而附麗精舍次第以成者, 如干具焉. 宜各爲小記, 而邂逅之頃, 有所不暇也.
若釣溪者, 自隱屛三四里許, 枕溪之巖, 多是自在釣魚磯故名, 而曲之第六者也.
若楓巖者, 自釣溪二三里許, 巖皆楓林被之, 霜後絢如霞蔚故名, 而曲之第七者也. 下有數家村, 桑柘柴荊, 隱然一畫圖中.
若琴灘者, 灘聲泠然, 象琴之響節故名, 而曲之第八者也.
若文山者, 因舊名而已, 爲第九曲終焉.
公存也, 人爲地之靈, 文不在玆乎? 公亡也, 天有不與之喪者, 文不在玆乎? 且九者, 龍德之數也, 余少也知公, 少字實應九二, 而小山舊名, 偶符斯文, 于是而不曰造物者未始不與於其間則未信也. 朱子居閩之武夷山, 則有九曲洞天, 公居海之高山, 則有九曲巖川, 豈東南萬里, 吾道一氣脈, 自相貫通而然歟? 若夫壬辰兵戈而來, 公家受禍實慘, 而山林水石, 且不免焉, 則關於國運爾, 奈何乎? 余之知公, 非故聞風而興者也, 然旣九原不可復作, 得同觴詠於九曲之淸流? 而獨有同學文字爲公發之, 可以招徠精爽於九曲之陳迹. 然且遠焉, 不能卷而畀之景臨生, 歸書于簷楣之間, 愴哉! 『簡易文集』 卷之九
해석
余於栗谷公, 弱冠友也, 公旣爲世大儒, 尊用於朝, 不幸未究卒.
나는 율곡(栗谷)에 있어서 약관(弱冠)의 벗인데 공은 이미 세상의 대유(大儒)가 되었고 조정에서 높이 등용됐지만 불행히 마칠 때까지 다하진 못했다.
今二十五年矣, 顧余一無用物耳, 老而不死.
이제 25년이 흘러 다만 나는 한 명의 무용한 인물일 뿐으로 늙어서도 죽지 않고 있다.
適與公子景臨生, 遇於西京, 俯仰世故, 談不足而涕有餘.
마침 공의 아들인 경림(景臨) 생(生)과 평양[西京]에서 만나 세상의 이러저러한 일을 굽어보고 우러러보며 말하기로도 부족했지만 눈물만은 남음이 있었다.
生乃請余記公故居海之高山九曲潭者.
경림(景臨) 생(生)은 이어서 나에게 공이 예전에 살았던 해주(海州) 고산(高山)의 구곡담(九曲潭)을 기록해달라고 청하였다.
余自公卜地之初, 佩銅鄰縣, 還往實熟.
나는 공이 땅을 점지한 초기에 이웃 현에서 동패를 차고 왕래하여[還往] 실제로 익숙한 곳이다.
所謂九曲潭者, 未嘗不在夢想之中, 復据生揭列其次而述曰:
소위 구곡담(九曲潭)이란 미상불(未嘗不) 꿈이나 상상 속에서 있었던 것이고 다시 생이 게시하고 열거한 자료에 의거하여 다음과 같이 짓는다.
第一曲爲冠巖, 離州城而洞四十五里, 其距海門二十里.
첫 번째 골짜기는 관암(冠巖)이 되었고 해주성(海州城)과의 떨어진 골짜기 45리에 있는데 바다 입구와의 거리는 25리다.
山頭有立石若冠焉者而卓然故以名, 意亦取夫冠始之義乎?
산 정상에 관(冠)처럼 선 바위는 우뚝하여 그 때문에 이름 지어진 것으로 생각건대 또한 관시(冠始)【관시(冠始): 『예기(禮記)』 관의(冠義)의 “이렇게 본다면 관이야말로 모든 예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故曰 冠者 禮之始]”라는 말을 요약한 것이다.】의 뜻을 취한 것이리라.
自此而往, 山勢逶迤, 溪水竝之, 而其陡絶處, 下必澄潭.
여기로부터 산의 기세가 구불구불거리고 계곡의 물이 어우러졌고 그 솟아오른 깎아지른 곳의 아래엔 반드시 맑은 연못이 있다.
足爲隱者之所盤旋, 蓋有山村數家始見焉.
은둔할 만한 굽이굽이【반선(盤旋):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것】인 곳으로 대체로 산촌 몇 집이 막 보이게 된다.
第二曲爲花巖, 自冠巖五里許, 巖縫石鏬皆花, 如山榴者叢生故以名, 後面山村可十餘家.
두 번째 골짜기는 화암(花巖)이 되었고 관암(冠巖)으로부터 5리쯤인데 바위 사이와 돌들 틈이 모두 꽃으로 석류 같은 것들이 무더기로 피어나 그 때문에 이름지었고 뒷면으론 산촌 10여 집이 있다.
第三曲爲翠屛, 自花巖三四里許, 巖逾多奇而翠圍如屛狀故名.
세 번째 골짜기는 취병(翠屛)이 되었고 화암(花巖)으로부터 3~4기쯤인데 바위가 더욱 많이 기이해졌는데 푸르게 에워싼 것이 병풍 형상 같아 그 때문에 이름지었다.
屛前小野, 洞中人農焉, 野中有盤松一蓋, 下可坐數百人, 屛北, 士人安氏家焉.
취병(翠屛) 앞의 작은 벌판에 골짜기 사람들이 농사 짓고 벌판 속 한 그루의 쭉 뻗은 소나무 아래엔 수백 사람이 앉을 수 있으며 취병(翠屛) 북쪽엔 사인(士人)【사인(士人): 학식(學識)이 있되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 안씨(安氏)의 집이 있다.
第四曲爲松崖, 自翠屛三四里許, 石壁千尺, 其上松林翳日故名.
네 번째 골짜기는 송애(松崖)가 되었고 취병(翠屛)으로부터 3~4리쯤인데 바위 절벽이 천 척으로 그 위의 소나무가 해를 가려 그 때문에 이름 지은 것이다.
潭心有石如半露船形者, 名曰船巖, 上可坐八人, 士人朴氏對而家焉, 蓋從公入洞也.
연못 중앙 배 모양의 반쯤 드러난 바위를 선암(船巖)이라 이름하는데 위엔 여덟 명이 앉을 만하고 사인(士人) 박씨(朴氏)가 마주하고 집을 지었으니 대체로 율곡 공을 따라 골짜기에 들어왔다.
第五曲爲隱屛, 自松崖二三里許, 石峯高圓, 明麗特異, 潭邊底皆石若砌, 而貯之水者.
다섯 번째 골짜기는 은병(隱屛)이 되었고 송애(松崖)로부터 2~3리쯤인데 바위 봉우리는 높고도 원 모양이며 밝고도 고우며 특이하고 연못 낮은 곳엔 모두 섬돌 같은 바위가 있어 물을 담고 있다.
屛之義視前而隱, 又近取諸身, 以託退休之義乎?
은병(隱屛)의 뜻은 앞서 보고 은둔한다는 것으로 또한 가까이에서 몸에 취하여 은퇴하고서 쉬려는 뜻을 의탁한 것이리라.
公始卽石潭屋之, 略爲棲息之所, 而從學旣衆, 則相與謀爲可以容處.
공은 처음엔 곧 석담(石潭)에 집을 지었는데 대략 머물 만한 장소를 지었지만 따라 배우는 이들이 이미 많아지자 서로 함께 용납될 만한 곳을 도모했다.
規設益備, 則尊先惠後, 不可一少, 是有隱屛精舍, 而附麗精舍次第以成者, 如干具焉.
규모가 이미 완비되니 선진을 높이고 후학에 혜택이 됨에 하나도 적을 게 없었으니 이는 은병정사(隱屛精舍)로 은병정사(隱屛精舍)에 덧붙여진[附麗] 것들이 차례대로 만들어지니 구하여 갖춰진 듯했다.
宜各爲小記, 而邂逅之頃, 有所不暇也.
마땅히 각각 소기(小記)를 지어야 하나 만난 즈음이라 겨를이 없다.
若釣溪者, 自隱屛三四里許, 枕溪之巖, 多是自在釣魚磯故名, 而曲之第六者也.
조계(釣溪) 같은 경우는 은병(隱屛)으로부터 3~4리쯤인데 침계(枕溪)의 바위에 많은 원래 있던 낚시터가 있어 그 때문에 이름지어졌고 골짜기의 여섯 번째다.
若楓巖者, 自釣溪二三里許, 巖皆楓林被之, 霜後絢如霞蔚故名, 而曲之第七者也.
풍암(楓巖)의 경우는 조계(釣溪)로부터 2~3리쯤인데 바위가 모두 단풍숲으로 덮여 있어 노을 진 후 노을진 듯 울창하게 반짝여 그 때문에 이름지어졌고 골짜기의 일곱 번째다.
下有數家村, 桑柘柴荊, 隱然一畫圖中.
아래에 몇 집이 뽕나무 사립문인데 은근히 하나의 그림 속인 듯하다.
若琴灘者, 灘聲泠然, 象琴之響節故名, 而曲之第八者也.
금탄(琴灘) 같은 경우는 여울물 소리 차가워 상(象) 비파의 음향과 음절이라 그 때문에 이름지어졌고 골짜기의 여덟 번째다.
若文山者, 因舊名而已, 爲第九曲終焉.
문산(文山) 같은 경우는 옛 이름에 따랐을 뿐이고 아홉 번째 골짜기로 끄트머리다.
公存也, 人爲地之靈, 文不在玆乎? 公亡也, 天有不與之喪者, 文不在玆乎?
공이 살아있을 땐 사람이 땅의 신령함이 되었으니 문장이 여기에 있지 않았겠는가? 공이 돌아가고 나선 하늘이 그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으니 문장이 여기에 있지 않았겠는가?
且九者, 龍德之數也, 余少也知公, 少字實應九二, 而小山舊名, 偶符斯文, 于是而不曰造物者未始不與於其間則未信也.
또한 9는 용덕(龍德)의 숫자로 내가 어려서 공을 알았는데 어렸을 적 자(字)가 실제로 구이(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에 대응했고 작은 산의 옛 이름도 우연히 사문(斯文)에 맞아떨어졌으니 이에 조물자가 처음에 그 사이에 관여하지 않음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믿지 않겠다.
朱子居閩之武夷山, 則有九曲洞天, 公居海之高山, 則有九曲巖川, 豈東南萬里, 吾道一氣脈, 自相貫通而然歟?
주자(朱子)가 민중(閩中)의 무이산(武夷山)에 거처할 때 아홉 굽이 동천(洞天)이 있었고 공이 해주(海州)의 고산(高山)에 거처할 때 아홉 굽이 암천(巖川)이 있었으니 아마도 동쪽과 남쪽으로 만 리나 떨어졌지만 우리의 도는 하나의 기맥(氣脈)으로 자연히 서로 관통하여 그러한 것이겠지.
若夫壬辰兵戈而來, 公家受禍實慘, 而山林水石, 且不免焉, 則關於國運爾, 奈何乎?
임진왜란 이래로 공의 집이 화를 당한 게 실로 참담했고 숲속 물과 바위도 또한 피하질 못한 것은 국운(國運)에 관계된 것이었으니 어이할까?
余之知公, 非故聞風而興者也, 然旣九原不可復作, 得同觴詠於九曲之淸流?
나는 공을 알게 됐는데 일부러 풍도를 듣고 흥기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미 저승[九原]에서 다시 일어날 수 없으니 아홉 굽이의 맑은 물줄기에서 함께 잔 띄우고 읊조릴 수 있겠는가?
而獨有同學文字爲公發之, 可以招徠精爽於九曲之陳迹.
다만 함께 문자를 배운 이들이 있어 공을 위해 발언한다면 아홉 굽이의 지난 날 자취에서 혼백【정상(精爽): 정(精)은 귀신, 상(爽)은 밝음을 뜻함. 곧 신령(神靈)이 밝거나 정한 모양. 또는 그러한 신령이나 혼백(魂魄)을 뜻하기도 하다.】을 불러와 위로할[招徠] 수 있을 것이다.
然且遠焉, 不能卷而畀之景臨生, 歸書于簷楣之間, 愴哉! 『簡易文集』 卷之九
그러나 또한 멀어 시권(詩卷)을 경림(景臨) 생(生)에게 줄 수 없어 돌아와 처마와 차양 사이에 썼으니 슬프구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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