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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노수신 - 영매(詠梅)①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노수신 - 영매(詠梅)①

건방진방랑자 2022. 10. 2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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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매(詠梅)

 

노수신(盧守愼)

 

 

坐上春風面粹然 栗溫佳氣出藍田

詩人相愛多相褻 不作姸妃卽瘦仙

 

色精內白有悲歌 認取江南樹獨嘉

自是偏從忠愛發 箇中遺了一團和

 

侵凌霜露看黃英 殘後交承便到兄

歲暮黃昏能幾度 只拚三逕了淵明

 

 

 

 

 

 

해석

坐上春風面粹然

좌상춘풍면수연

모임자리엔 봄바람 불고 모습은 순수하네.

栗溫佳氣出藍田

률온가기출람전

단단하고 온화한 좋은 기운 남전남전(藍田):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산인데, 이 산에서 좋은 이 생산된다고 하는바, 전하여 여기서는 곧 매화의 곱고 깨끗한 면모를 남전산의 옥에 빗대서 한 말임.에서 나왔지.

詩人相愛多相褻

시인상애다상설

시인들이 서로 사랑하여 서로 친압하길 많이 했으니,

不作姸妃卽瘦仙

부작연비즉수선

고운 기녀로 보질 않으면, 야윈 신선으로 본다네.

 

色精內白有悲歌

색정내백유비가

꽃빛 아리땁고 속은 희다는 슬픈 노래 있었고,

認取江南樹獨嘉

인취강남수독가

강남의 나무 홀로 아름다운 줄 알겠노라강남수독가(江南樹獨嘉): 楚辭』 「九章 橘頌후황이 좋은 나무 좋아하매 귤이 와서 자라니, 강남에 명을 받고 생장하여 다른 데로 옮겨 가지 않네.……고운 빛에 속은 희어 도를 감당할 만하여라, 성대히 좋은 모습 수식하여 추악하지 않도다.[后皇嘉樹橘徠服兮, 受命不遷生南國兮.……精色內白類任道兮, 紛縕宜脩姱而不醜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귤송은 본디 강남 사람으로 정명(精明)하고 결백(潔白)한 뜻을 지닌 굴원(屈原) 자신을 귤에 빗대서 한탄한 노래인데, 여기서는 매화 또한 강남의 것이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남조(南朝) ()의 육개(陸凱)가 일찍이 강남에서 매화 한 가지를 꺾어 장안(長安)에 있던 친구 범엽(范曄)에게 부치면서 아울러 화시(花詩)를 지어 보냈던바, 그 시에 의하면 꽃을 꺾어 역사를 만나서, 농두 사람에게 부치노니, 강남에는 가진 것이 없어, 애오라지 한 가지의 봄을 부치노라.[折花逢驛使, 寄與隴頭人. 江南無所有, 聊寄一枝春].”라고 하였다. 태평어람(太平御覽)19 역사(驛使)는 본디 옛날 공문(公文)이나 서신(書信) 등을 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 시의 고사로 인하여 흔히 매화의 별칭으로도 쓰인다..

自是偏從忠愛發

자시편종충애발

이로부터 두루 충성과 사랑으로 피어나니,

箇中遺了一團和

개중유료일단화

가운데 한 덩이의 온화한 것일단화(一團和): 일단화기(一團和氣)의 준말로, 한 덩이의 온화한 기운이란 뜻으로, 본디 二程外書12명도 선생이 가만히 앉았을 때는 마치 흙으로 만든 인형 같은데, 사람을 접할 때는 온통 한 덩이의 온화한 기운뿐이다.[明道先生坐如泥塑人, 接人則渾是一團和氣].”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매서운 추위를 능히 이기고 꽃을 피운 매화에는 온화한 기운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만을 빼놓았네.

 

侵凌霜露看黃英

침능상로간황영

서리와 이슬이 닥쳐 능멸하나 누런 꽃을 보니,

殘後交承便到兄

잔후교승변도형

국화가 진후 교차하듯 이어져 곧 매화잔후교승편도형(殘後交承便到兄): 국화가 지고 나면 그 뒤를 이어 매화가 피는 것을 이른 말이다. 여기서 형()이란 곧 매화를 가리킨 것으로, 황정견(黃庭堅)수선화(水仙花)시에 향기 머금은 하얀 몸은 경국지색에 가까우니, 산반꽃은 그 아우요 매화는 그 형뻘이로다.[含香體素欲傾城, 山礬是弟梅是兄].”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가 피네.

歲暮黃昏能幾度

세모황혼능기도

연말의 황혼 몇 번이나 지냈는가?

只拚三逕了淵明

지변삼경료연명

다만 세 오솔길삼경(三逕): 세 오솔길이란 뜻으로, 본디 한 대(漢代)의 은사(隱士) 장후(蔣詡)가 자기 집 대나무 밑에 세 오솔길을 내 놓고 친구인 구중(求仲), 양중(羊仲) 두 사람하고만 서로 종유했던바, 동진(東晉)의 처사 도잠(陶潛) 또한 일찍이 팽택령(彭澤令)을 그만두고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이 고사를 인용하여 세 오솔길은 묵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도다.[三徑就荒, 松菊猶存].”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三輔決錄 逃名』 『陶淵明集 卷5전하여 여기서는 바로 도잠은 끝내 소나무, 국화, 대나무만 좋아했고, 매화는 언급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쓴 이는 도연명이네.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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