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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창 - 안령대풍(鞍嶺待風)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정여창 - 안령대풍(鞍嶺待風)

건방진방랑자 2021. 4. 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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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안령에서 바람을 기다리며

안령대풍(鞍嶺待風)

 

정여창(鄭汝昌)

 

 

待風風不至 浮雲蔽靑天

何日涼飆發 掃却群陰更見天 一蠹先生續集卷之一

 

 

 

 

해석

待風風不至
대풍풍부지
바람을 기다리지만 바람 불지 않고
浮雲蔽靑天
부운폐청천
뜬 구룸에 푸른 하늘은 가렸네.
何日涼飆發
하일량표발
어느 날 서늘한 태풍 불어
掃却群陰更見天
소각군음갱견천
모든 그늘 몰아내고 다시 하늘 보게 하려나. 一蠹先生續集卷之一

 

 

해설

이 시는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어 안령에서 바람을 기다리며 지은 시로, 그의 절의(節義)가 잘 드러난 시이다.

 

바람(좋은 氣風이나 세상을 뜻함)을 기다리지만 바람은 불어오지 않고 뜬구름(암울한 시대 상황, 임금 주변에 있는 權臣을 뜻함)만이 푸른 하늘에 가득하다. 어느 날 시원한 회오리바람이 한 번 불어와 온갖 음기(陰氣)들을 다 쓸어 내고 다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을까?(임금을 둘러싼 權臣들을 제거하고 堯舜 시대의 정치가 행해지는 시대를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정여창은 절의(節義)뿐만 아니라 효()도 뛰어났는데, 유선록(儒先錄)에 그 일단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선생이 중년에 소주를 마시고 광야에 취해 쓰러져서 한 밤을 지내고 돌아오니, 어머니가 매우 걱정되어 굶었는데, 이때부터 음복(飮福) 밖에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성종이 술을 내린 적이 있는데 선생이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신의 어미가 살았을 때에 술 마시는 것을 꾸짖으므로, 신이 다시 마시지 않을 것을 굳게 맹세하였사오니, 감히 어명을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감탄하여 이를 허락하였다. 선생이 일찍이 태학(太學)에 가서 공부하다가 어머니를 뵈러 집에 갔더니, 집안에 전염병이 바야흐로 크게 퍼졌는데, 공이 들어가서 그 어머니를 뵙고 얼마 안 지나서 어머니가 이질을 얻어 매우 위독하니, 공이 향을 태우고 기도하였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자 이윽고 똥을 맛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소리 치며 울어서 피를 토하였으며, 험습빈전(險襲殯奠, 염과 습은 주검에 임하는 속옷과 겉옷, 빈은 장사 지내기 전에 시체를 안치하는 것, 전은 잔 드리는 것, 곧 상례를 뜻함)을 한결같이 예문(禮文)에 따랐다. 장사 지내려 할 적에 감사(監司)가 군()으로 하여금 곽판(관을 짜는 판자)을 마련해주게 하였는데, 공이 사양하고 받지 않으며, ‘백성을 번거롭게 하고 곽판을 얻으면 원망이 반드시 어머니에게 돌아간다.’ 하고, 이에 자기 집의 재물을 내서 바꾸어 사서 썼다. 때마침 장마가 열흘 동안 계속 이어져 시내 골짜기가 넘치니, 사람들이 두려워서 어찌 할 줄 몰랐는데, 하늘이 갑자기 갔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3년 동안 여묘살이 하는 동리에서 나가지 않았고, 하루도 베옷을 벗지 않았으며, 아버지의 묘를 같은 묏자리에 옮겼다.

先生中年飮燒酒, 醉倒曠野, 經宿而返, 夫人憂甚不食, 自此飮福之外, 絶不接口.

我成廟嘗賜酒, 先生伏地曰: “臣母在時, 嘗責飮酒, 臣固誓不復飮, 不敢承命.” 上嗟嘆許之.

先生嘗遊太學, 省母到家, 則家內癘疫方熾. 公入見其母, 未幾母得痢疾甚劇, 公焚香祈禱不見效, 乃嘗痢. 及母沒, 哭泣嘔血, 殮襲殯奠, 一依禮文. 將葬, 監司令郡辦給槨板, 公辭而不受, : “煩民取板, 怨必歸母.” 乃出家資, 貿易用之.

時積雨連旬, 溪壑漲溢, 人懼不克, 天忽開霽, 人皆異之. 三年不出廬洞, 一日不釋麻衣, 移父墳於同兆.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142~143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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