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십가(花山十歌)
安東地瘠民貧 然風俗力於農桑 節用儉嗇 以至備荒之務 無不周密 他邑無及焉 今用誰知盤中飡 粒粒皆辛苦十字爲韻 粗述民間憂思勤苦之狀 庶擬幽風七月之義也
太伯山中雪 陸離粲朝㬢 | |
春風入黃池 活活流氷澌 | |
我事不可緩 西疇須及時 | |
于茅索絹詠 歷歷當告誰 | |
花山昨夜雨 一霅沾公私 | |
隔林布穀聲 催却耕耘遲 | |
牛車戴月出 急報隣翁知 | |
努力務恒產 此非安臥時 | |
蠶絲一百箔 處處呼林端 | |
蠕蠕已三眠 伐盡柔條殘 | |
共賽馬頭娘 愼勿學遊盤 | |
繅車勉女工 卒歲衣裳單 | |
寸土如寸金 厥賦猶中中 | |
愼莫棄閑地 地閑逢歲凶 | |
隨宜闕苗處 須盡塡植功 | |
力勤乃有獲 汝勿爲惰農 | |
綯茅織作筐 可以敵盎盆 | |
擧家出南畝 擔荷常不諼 | |
敝屨兼榾柮 收以炊盤飡 | |
物不可虛抛 說與諸子孫 | |
我田出若干 量分一年食 | |
深藏斗省費 成性忍飢迫 | |
冬時蔬爲糧 刀農方乃粒 | |
作意最深遠 瞿瞿擬唐俗 | |
瞻彼淸涼山 山中多橡木 | |
今年似去年 離離實可拾 | |
擧家負戴歸 舂屑甕中積 | |
凶年豈殺余 猶可代粟粒 | |
年年上元夜 候月眞不差 | |
依前群望處 老翁一時皆 | |
相視占豐凶 農談喧里街 | |
但願供租賦 次及養殘骸 | |
荒政第一策 麥麰兼麻籸 | |
幺麽莫輕擲 可免溝壑身 | |
寄言同社子 且勿憂艱辛 | |
山中十八公 解衣活吾人 | |
蟋蟀在我堂 西成慶多稌 | |
欲作一日歡 爲酒供歌舞 | |
此意似大康 持以規諸父 | |
古人曾有詩 粒粒皆辛苦 | 『㵢谿集』 卷之三 |
이 시는 1497년 47세 때 의성현감으로 나가 있으면서 지은 것으로, 안동 백성들의 힘겨운 삶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國朝寶鑑』에는 “유호인은 詩文이 高古하고 筆勢가 힘이 있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三絶이라고 일컬었으며, 조위와 함께 김종직(金宗直)을 스승으로 섬겼다.”라 했으며,
성현(成俔)의 「뇌계시집서(㵢溪詩集序)」에는, “그의 시는 깊이 이치를 깨달아서 스스로 터득한 것이므로 편마다 법칙이 있고 구절마다 뛰어남이 있었다. 평범하고 부드러워도 세속에 빠지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가을 산이 뼈가 많고 살이 적어서 기묘하여 험준함이 무궁한데 풀이나 나무도 이와 함께 단단하고 야무진 것과 같았으니, 아마도 아송의 남긴 영향을 받은 듯하다. …… 게다가 지금 유후의 시는 점필재도 칭찬하는 것이고 성종도 깊이 인정하신 것으로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고 있으니, 장 담는 항아리에 바르지 않을 것은 명백하다[其詩深悟於理而自得 故篇篇有範 句句有警 米鹽醞藉 不落世之窠臼 譬如秋山 多骨少肉 奇峭無窮 而草木亦與之堅實 其得雅頌之遺音歟 …… 況今侯詩 佔畢之所稱 成廟之所深許 而膾炙於衆口者 其不覆醬瓿也明矣]”라 평하고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138~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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