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에 거처를 정해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살며
덕산복거(德山卜居)
조식(曺植)
春山底處無芳草 只愛天王近帝居
白手歸來何物食 銀河十里喫猶餘 『南冥先生集』 卷之一
해석
春山底處無芳草 춘산저처무방초 | 봄산 이르는 곳에 향긋한 풀도 없으랴? |
只愛天王近帝居 지애천왕근제거 | 다만 천왕봉이 제석궁에 가까움을 사랑하네. |
白手歸來何物食 백수귀래하물식 | 빈 손으로 돌아와 어떤 식물을 먹을까? |
銀河十里喫猶餘 은하십리끽유여 | 은하수가 십리라서 먹고도 오히려 남겠구나. 『南冥先生集』 卷之一 |
해설
이 시는 61세 때 지리산 덕산으로 옮겨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살면서 지은 시이다.
봄 산 어디엔들 봄풀이 피지 않았겠는가? 방초는 어디를 가더라도 있으니, 아름다움을 찾아 이곳 덕산(德山)에 온 것이 아니다. 다만 덕산에서 바라보이는 천왕봉이 천제가 사는 제궁(帝宮)과 가깝기 때문인 것이다(帝宮은 현실을 벗어난 이상적인 공간을 의미함). 덕산에 맨손으로 들어와 먹을 것이 없이 가난하지만, 덕산 밑에 흐르는 덕천강(德川江)은 은빛 시냇물이라 마시고도 남음이 있다(은하는 제궁에 있는 은하수이기도 함).
조식이 현실 정치에 대한 개혁을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덕산에 은거한 채 현실의 문제를 등 돌린 채 지냈던 것은 아니다. 조식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김우옹(金宇顒)의 「행장(行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어 이것을 뒷받침해 준다.
“항상 학사 대부들과 논의를 하다가, 말이 당시 정치의 잘못과 백성들의 곤궁함에 이르면, 일찍이 팔을 걷어붙이고 분격하여 목이 메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해서 듣는 자가 송구스럽게 듣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근심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그러나 도로 말미암아 의를 지켰지, 스스로를 작다고 하여 쓰임을 구하지 않았고 가난을 편안한 것으로 여겨 진실로 곤궁했지 일찍이 자신을 굽혀 세속을 따르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세상과 오랫동안 하직하고 늘 자연에서 생활했던 것이다[常與學士大夫, 語及時政闕失, 生靈困悴, 未嘗不扼腕哽咽, 或至流涕, 聞者爲之竦聽. 其拳拳斯世如此. 然而由道守義, 不肯自小以求用, 安貧固窮, 未嘗自屈以從俗. 故與世長辭, 巖穴終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324~325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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