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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창 - 자한(自恨)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이매창 - 자한(自恨)

건방진방랑자 2021. 4. 13.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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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다

자한(自恨)

 

이매창(李梅窓)

 

 

春冷補寒衣 紗窓日照時

춘냉보한의 사창일조시

低頭信手處 珠淚滴針線

저두신수처 주루적침선

 

 

 

 

해석

春冷補寒衣 紗窓日照時 봄이 차서 겨울옷 꿰매니 비단창엔 햇빛 비출 때였네.
低頭信手處 珠淚滴針線 머리 숙이고 손따라 맡겼지만 구슬 같은 눈물이 바늘과 실 적시네.

 

 

해설

이 시는 자신을 원망하는 시로, 아마도 유희경(劉希慶)이 떠난 뒤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매창은 1590년 무렵 부안을 찾아온 시인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과 만나 사귀었다. 매창도 유희경을 처음 만났을 때 시인으로 이름이 높던 그를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촌은집(村隱集)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가 젊었을 때 부안에 놀러갔었는데, 계생이라는 이름난 기생이 있었다. 계생은 그가 서울에서 이름난 시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유희경(劉希慶)과 백대붕(白大鵬) 가운데 어느 분이십니까?’라고 물었다. 그와 백대붕의 이름이 먼 곳까지도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찍이 기생을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이때 비로소 파계하였다. 대개 서로 풍류로써 즐겼는데, 매창도 시를 잘 지어 매창집을 남겼다[少遊扶安邑 有名妓癸生者 聞君爲洛中詩客 問曰劉白中誰耶 盖君及大鵬之名動邇也 君未嘗近妓 至是破戒 盖相與風流也 癸亦能詩 有梅窓集刊行].”

 

유희경은 매창을 처음 만난 날 증계낭(贈癸娘)이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會聞南國癸娘名
회문남국계낭명
일찍이 남국의 계랑 이름 알려져서
詩韻歌詞動洛城
시운가사동락성
글재주 노래 솜씨 서울에까지 울렸네
今日相看眞面目
금일상간진면목
오늘에야 참모습을 대하고 보니
却疑神女下三淸
각의신녀하삼청
선녀가 신선의 궁에서 내려온 듯하여라

 

40대 중반의 대시인 유희경과의 사랑은 18세의 매창으로 하여금 그의 시세계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그들이 사랑을 주고받은 많은 시들이 전한다. 이 고장 출신의 시인 신석정은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를 가리켜 부안삼절(扶安三絶)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희경이 서울로 돌아가고 이어 임진왜란이 일어나 이들의 재회는 기약이 없게 되었다. 유희경은 전쟁을 맞아 의병을 일으키는 등 바쁜 틈에 매창을 다시 만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진정 마음이 통했던 연인을 떠나보낸 매창은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이후 쓰인 그의 시들은 임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 서러움과 을 드러내고 있다. 유희경 역시 매창을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회계낭(懷癸娘)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娘家在浪州 我家住京口 그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相思不相見 腸斷梧桐雨 서로 그리워해도 서로 못 보고 오동나무에 비 뿌릴 땐 애가 끊겨라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158~159

 

 

인용

목차

문학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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