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교에서 효율을 중시하면 생기는 문제
2015년 1월엔 우치다쌤이 문을 연 ‘개풍관’에 ‘참여소통교사모임’이 찾아가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이 자리에 나는 함께 하지 않아 ‘노검파일(’녹음파일‘의 부산사투리 버전)’을 들으며 분위기를 유추할 뿐이지만, 자유분방한 느낌이었다.
더욱이 이때는 일방적인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고 거기에 따른 대답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강연장의 딱딱한 분위기보다 무도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다보니, 더 귀에 쏙쏙 들어왔고 더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때론 이처럼 진지하게 얘기하는 것보다 가볍게 훅훅 던지는 말에서 더 많은 의미를 얻게 되는 것 같았다. 과연 우치다쌤은 어떤 얘기를 하셨을까?
▲ 이런 식으로 다다미에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는 분위기다.
점차 교육의 다양성을 파괴해 나가다
현재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인구감소다. 급격하게 아이들 수가 줄어 학교에 들어오지 않으니, 학교를 통폐합하게 되고 먼 곳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를 찾아 대도시에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인구감소⇒학교 재학생수 감소⇒학교 통폐합⇒대도시인구 집중⇒교육의 획일화’라는 단계를 거치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교육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다.
▲ 학생수 감소, 학교 통폐합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상황이기에 우치다쌤의 말이 매우 현실적으로 들린다.
처음 일본에 근대교육을 하는 학교가 생겼을 때만 해도 자연발생적으로 다양한 조건의 학교가 생겼지만, 지금은 문부과학성(한국의 교육부)이 학교를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모습의 학교만 남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학교도 다양한 학교들이 있었는데, ‘대학교 정상화(한국의 프라임사업)’이란 그럴 듯한 말로 획일화시켰다. 즉, 대학교의 주식회사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인사권과 예산권 등의 모든 권한을 총장이 쥐고 있다. 총장의 권한이 막강해짐으로, 교수들의 이견이 있을 때에도 ‘의견을 한 번 들어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민주사회인양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옛날의 대학교수들은 독립적인 판단기준에 따라 행동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교수회의 때 자기만의 스타일로 인사권과 예산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교가 주식회사가 되면서 교수는 샐러리맨이 되었고 ‘예스맨’이 되고야 말았다. 문부성은 학교에서 교사들이 모여 인사권에 대해 회의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 기업의 입맛에 따라 교육정책이 좌우된다. 기업이 집어삼킨 대학의 모습.
학교의 기업화는 교육의 자살행위
오사카에서 ‘교육기본조례’가 생겨났다. 조례의 핵심은 교육감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민간인을 교장으로 임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 교장이 된 사람들은 교육자로서의 경험은 전혀 없지만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은 당연히 학교를 주식회사 시스템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모든 것을 ‘Top Down 방식’으로 바꾸었으며 모든 권한이 교장에게 집중되도록 했다.
하지만 민간 교장제는 대실패하고 말았다. 11명이 뽑혔는데, 그중 6명이 그만두었던 것이다. 본인이 재미없어서 그만 둔 경우도 있지만, 학교 돈을 횡령하거나, 스캔들에 휩쓸려 그만 두었다. 예전엔 민간인 교장 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런 상황을 겪으며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 '민간교장제' 말만 들으면 당연히 좋은 개혁방향 같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교장이 되느냐가 문제다.
이런 사례가 있었음에도 이상하게도 ‘학교를 기업화하자’는 이야기는 없어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학교에 오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소비자로 보는 것이다. 그건 곧 ‘학교=상점’, ‘교육활동=소비활동’으로 본다는 의미다. 고객으로부터 선택되지 않으면 상품으로써 의미가 없듯, 학교도 사라져야 한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소비자 마인드로 학교에 오게 되면, 못마땅한 것에 대해 클레임claim을 걸게 된다. 손님이 점원을 향해 이야기하는 어투로 학부모도 교사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니 당연히 교육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 소비자 마인드로 교육을 상품으로 대하는 순간부터 교육은 사라진다.
소비자 마인드는 필연적으로 학력저하로 이어진다
좀 더 큰 문제는 학력의 극적인 저하다. 학생은 소비자고 교사는 판매자이기에, 학교에서 교육활동 자체가 소비활동이 되는 것이다. 쇼핑이란 게 ‘저비용 고효율’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에선 어떤 화폐를 사용할까? 그건 바로 ‘학습노력’이란 화폐를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학습노력은 필기를 한다거나, 규칙을 지킨다거나, 교사에게 높임말을 한다는 게 모두 다 화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화폐를 지불하며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쇼핑을 하듯 학원을 고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학교에서도 소비자 마인드로 오는 학생들.
하지만 유급 당하지 않고 패스만 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교사에게 높임말을 쓰지 않고, 가능한 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며, 가능한 한 학습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만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얻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바보스러운 짓이지만 이게 바로 소비자의 태도이며 소비자의 의무다. 학교에 시장원리를 도입하게 되면, 이와 같은 학습저하는 자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내가 대학교수를 했을 때, “선생님 몇 점을 받아야 합격합니까?”, “몇 번 이상을 수업에 빠지면 학점을 못 받나요?”라고 학생이 첫 수업 시간에 묻는다. 그러면 난 “60점 이상 받아야 패스할 수 있습니다”, “1/3이상 빠지면 학점을 받지 못합니다”라고 대답을 해준다. 그러면 그 학생은 정말로 2/3만 출석하고 60점만을 넘기 위해 공부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최소한의 조건을 묻고 그에 따라 그 정도만 맞추려 한다.
이런 사실로 알게 되는 내용은 아이들은 수업 계획표를 보는 순간 ‘최저가격’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상품은 최저가격으로 사야만 해’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노력하지 않으면서 목표한 것을 이루려 하는데, 이건 만원에 살 수 있는 물건에 6만원에 사면 바보가 되는 것과 같은 거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일본 아이들은 ‘내가 얼마나 공부하지 않고 졸업했는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아무 것도 공부하지 않았지만 졸업했습니다’라는 말은 ‘싼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샀습니다’라는 말과 동급의 말이다. 이게 바로 교육에 기업의 마인드가 들어옴으로 학생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소비자 마인드가 생겼기에 생긴 폐단이라 할 수 있다.
▲ 시험 보기 전날에 밤새워 공부를 하지만, 친구들이 물으면 "어제 저녁 일찍 잤어"라고 말한다. 덜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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