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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 원주 강연 - 교사여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라(16.09.27) 본문

연재/배움과 삶

우치다 타츠루 원주 강연 - 교사여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라(16.09.27)

건방진방랑자 2019. 10. 23.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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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교사가 아닌 자기 식대로의 교사이길

 

Q

한국에선 교사들이 새로운 교수법을 개발하여 수업함으로, 인기를 얻는 교사들이 있다. 물론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매우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교육 전체엔 악영향을 끼치며 개별 교사의 특별성만을 부각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지, 그렇지 아닌지가 궁금하다.

 

A

대학 교수였을 때 베스트 교수상을 여러 번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이미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런 식으로 개별교사만이 부각되는 상황은 당연히 안 좋다고 본다.

교사는 다른 교사와의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의미를 지닌다. 인간이 가진 사악함이나 우둔함도 교사들이 모여 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그걸 반면교사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던가. 완벽하지 않은 교사들의 모습을 통해 도대체 왜 이런 교사들이 만들어졌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반면교사인 거다.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 중에 교사를 절대로 믿지 않던 학생이 있었다. 니트로 만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온 몸으로 당신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그걸 통해 고등학생 때까지 매우 힘든 학교생활을 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여름방학이 끝난 후에 봤을 땐 모자를 벗고 온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기뻤다. 단순히 겉모습만 바뀐 정도가 아니라, 몸을 앞으로 기울여 수업을 적극적으로 듣고자 하는 태도까지 보이더라. 그러면서 선생님의 세미나를 듣게 되면서 공부가 재밌어졌어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후 그 학생은 대학원에도 들어갔고 지금은 출판사에서 근무하며 꾸준히 연락을 해오고 있다.

누군가는 우치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기에 아이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한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고3 때 그 학생이 만났던 교사들로 인해 내가 반사이익을 본 것뿐이다. 고등학생 때 교사들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교수를 만나면서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고, 그로 인해 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관계들이나 생각들은 무수한 관계 속에서 우연히 만들어진다. 엄청난 학식, 놀라운 스킬이 있다고 아이들이 수업을 잘 들을 거라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20%의 학생만이 수업을 들을 뿐, 나머지는 잠을 잔다. 그게 우리네 모습이다. 그런 상황이라 해서 화를 낸다거나 슬퍼할 필욘 없다. 나는 20%의 학생이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하면 되고, 나머지 교사들이 또 20%의 학생이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그게 모여 전체적으로 70% 이상이 듣는 유의미한 수업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수업시간에 모든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공부의 열기에 차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땐 잠을 자던 아이들도 다른 수업시간엔 눈을 번쩍이며 잘 들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 학생에게 유의미한 교사를 만나면 누가 잔소리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눈이 떠질 것이고, 알아서 집중할 것이다.

지금 기억에 남는 교사는 고등학교 한문교사이다. 그 당시 한문교사는 학생이 이해를 하든 말든 자기 식대로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거의 잠을 잤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 교사의 수업을 기다리며 신나게 들었었다.

그런 예를 통해 보더라도 옳은 교육방법이 있다, 이상적인 관계가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저 자기 페이스나 자기 생각대로 수업해 나가면 된다. 자기 식대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이 모여 교사단이 되고, 교사단일 때에만 비로소 교육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하려 하지 말라

 

Q

교사의 전문성이 헤게모니화되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바탕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교사 연수 왕국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문성이란 헤게모니가 공동체를 만드는데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교사들의 기득권 문제는 교사들의 리더십문제라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선생의 고견을 듣고 싶다.

 

A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한다. 전문성을 신장한다며 순위 매기기를 하고 그에 따라 위화감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그걸 우린 교육역량강화라 부르며, 역량은 충분히 수치로 표현하는 게 가능하다고 여긴다.

살아있는 몸을 지닌 존재가 바로 교사다. 교과서를 통해 교과지식을 가르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잠재적 교육과정처럼 어떤 복장을 하고 왔느냐,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학생들은 종합적으로 배운다. “잘 듣고 있니?”, “잘하고 있는 거야?”와 같은 강압적인 태도로 학생을 대하는 교사조차 자기 스스로 학생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만약 학생이라면 절대로 그런 교사에겐 배우고 싶지 않을 것이다. 1년 내내 똑같은 넥타이를 매고 옷도 허접하게 입는데, ‘나는 늘 연구에 치중하느라 복장 따윈 신경 쓸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들 나는 그런 교사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제대로 복장을 입고, 태도를 바르게 하는 게 학생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일반적인 교사연수에선 이와 같이 복장에 대한 이야기나 발성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교사에 대해 관심 있게 보는 부분은 교사가 무너지는 순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화가 날 때 어떻게 하는지,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는 거다. 그때야말로 이성에서 걸러진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라, 감정 그대로의 날 것들이 나오니 말이다.

교육이란 이처럼 교사가 자신의 몸을 통해 전해주는 모든 것이라 해야 맞다. 감동이란 그저 말을 통해 전해줄 수 있거나, 가르쳐줄 수는 없다. 그저 살아있는 시간을 통해 살아가는 수많은 것들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럴 땐 기분이 안 좋아진다를 그저 보여주면 된다. 그 사람이 지닌 실력이나 이상은 전혀 가르쳐줄 수가 없다. 언어 이외의, 교과 지식 이외의 것들을 통해 아이들은 저절로 배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은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자기 모습에 좀 더 예민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점은 어떠한 평가로도 예측할 수도 없고, 측정해서도 안 된다.

 

 

 

인용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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