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경루에서 권일재를 모시고 옛 사람의 운으로 함께 짓다
다경루배권일재용고인운동부(多景樓陪權一齋用古人韻同賦)
이제현(李齊賢)
楊子津南古潤州 幾番觀樂幾番愁
佞臣謀國魚貪餌 黠吏憂民鳥養羞
風鐸夜喧潮入浦 煙蓑暝立雨侵樓
中流擊楫非吾事 閑望天涯范蠡舟 『益齋亂稿』 卷第一
해석
楊子津南古潤州 양자진남고윤주 | 양자강 나루의 남쪽의 옛 윤주 |
幾番觀樂幾番愁 기번관락기번수 | 몇 번의 즐거움을 보았고 몇 번의 근심을 보았나? |
佞臣謀國魚貪餌 녕신모국어탐이 | 아첨하는 신하가 나라 농단하길 고기가 먹이 탐하는 듯하고 |
黠吏憂民鳥養羞 힐리우민조양수 | 약은 아전이 백성 괴롭히길 새가 먹이 먹듯 한다네. |
風鐸夜喧潮入浦 풍탁야훤조입포 | 풍경이 요란한 밤, 조수는 포구에 들고, |
煙蓑暝立雨侵樓 연사명립우침루 | 안개 속 도롱이 입고 선 밤, 비는 누각에 들이차네. |
中流擊楫非吾事 중류격즙비오사 | 중류에서 돛대 치는 건【중류격즙(中流擊楫): 진(晉) 조적(狙逖)이 원제(元帝)에게 청하여 군사를 통합해서 북벌(北伐)할 때 양자강을 건너며 돛대를 치면서 맹세하기를, “중원을 밝히지 못하고 다시 건너면 이 강과 같으리라.” 했다. 드디어 그가 석륵(石勒)을 격파하고 황하 이남의 땅을 회복했다.】 내 일 아니니, |
閑望天涯范蠡舟 한망천애범려주 | 한가로이 범려의 배【범려주(范蠡舟): 범려(范蠡)가 계교를 써 오(吳)를 멸망시킨 뒤에 벼슬을 버리고 미인 서시(西施)를 데리고 오호(五湖)에 떠 놀았다 한다.】를 바라본다네. 『益齋亂稿』 卷第一 |
해설
이 작품은 익재의 나이 33세 되던 1319년에 충선왕(忠宣王)을 시종(侍從)하면서 지은 시로, 다경루에서 권일재와 옛사람의 운(韻)을 사용해 함께 지은 시이다.
양자강 나루는 옛날 윤주인데 나는 몇 번이나 기뻐했다가 다시 몇 번이나 시름했던가! 고려(高麗)의 간교한 신하들은 나라를 농락하고 백성을 걱정해서라는 명목으로 교활한 관리들은 자신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고 있는 것, 이것이 시름겹다.
눈을 돌려 다경루 주변을 보니 풍경소리가 울리는 밤에 조수는 개펄에 밀려오고 있고 안개에 어울린 도롱이를 입은 사람이 황혼에 서 있는데 비는 다락에 뿌려지고 있다. 진(晉)의 조적(祖逖)처럼 군공(軍功)을 세우는 것은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서 서시(西施)를 데리고 가서 월왕의 타락과 패망을 제거함과 동시에 풍류도 즐긴 범려(范蠡)가 부럽다.
서거정(徐居正)의 『동인시화(東人詩話)』에 이 시를 짓게 된 창작 배경이 실려 있다.
“연우(1314~1320) 연간에 일재 권한공과 시중 익재 이제현이 함께 남주(南州) 다경루에 올랐다. 익재가 말하기를 ‘예전에 형국공 왕안석(王安石)과 공보 곽상정(郭祥正)이 함께 봉황대에 올랐다가 이백(李白)의 시에 차운하여 시를 지었는데, 공보의 시명(詩名)이 이 일로 인하여 크게 알려졌습니다. 이제 우리 두 사람이 비록 재주는 왕형공(王荊公)·곽공보(郭功父)만 못하지만, 함께 경치 좋은 곳에 노닐게 되었으니, 시가 없어서는 안 되겠지요.’라고 하자, 일재는 익재의 말을 기꺼이 받아들여 각자 옛 운을 빌려 한 편씩 지었다[延祐間, 一齋權侍中益齋李侍, 同登南州多景樓. 益齋曰: ‘昔王荊公郭功父, 同登鳳凰臺, 次李白詩韻, 功父詩名由是大播. 今吾二人雖才非王郭, 同遊勝地, 不可無詩.’ 一齋欣然, 各用古韻賦一篇].”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246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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