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담: 실패의 의미와 본질 들여다 보기의 의미
2012년 1월 10~11일까지 부산에서 판타스틱한 교사연수가 있었다. 밤늦도록 진행된 이왕주 선생님과의 대화는 이번 연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그 때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부산대 윤리교육과 이왕주 선생님의 연구실로 찾아간 시간은 5시다. 준규쌤, 승태쌤, 송쌤, 초이쌤, 제비꽃, 박동섭 교수님 그리고 건빵, 이렇게 7명이 찾아갔다.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채 몇 마디 오고가지 않았는데, 어느덧 우리 사이엔 친근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산대 부근의 횟집에서 이야기 한마당이 펼쳐졌고, 그것으로도 어찌나 아쉽던지 해운대(대학교 이름이 아닙니다^^;;)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되었다. 아래에 쓰게 될 내용은 그때 오고 간 내용의 1/10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얘기를 나눴다.
▲ 시간에 맞춰 부산대에 올라가는 우리들.
현재를 살아야 한다
그건 미래의 어느 지점을 위해 지금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사람에겐 할 수 없는 주문이다. 현재를 살려면 당연히 지금 이 순간에 오감을 활짝 열고 세상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제비꽃님의 이야기처럼 ‘감수성’일 수밖에 없다. 나무 한 그루가 울먹이는 소리, 새만금 갯벌이 흐느끼는 소리,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감각 등이 모두 열려 있어야 가능하다. 온 몸의 감각이 활짝 열려 세상과 마주할 때, 우린 비로소 현재를 살 수 있다.
실패의 경험이 사람을 한 단계 비약 시킨다
『드래곤볼』이란 만화를 보신 적이 있나? 거기선 죽을 고비까지 다다른 사람이 ‘선두(콩처럼 생겼는데 한 알만 먹어도 상처가 치유되고 최고의 컨디션이 되게 하는 음식)’를 먹으면 살아날 뿐만 아니라 그 전보다 훨씬 세진다. 왕왕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은 그 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을 듣곤 했다. 어릴 땐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비약은 이성적인 공부로는 다다를 수 없다. 삶이 나를 배반하는 그 지점에서, 의식은 자라기 때문이다. 승태쌤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도 하지 못하고 속앓이만 했다던 이야기에 이왕주 선생님은 “그런 경험이야말로 숭고한 경험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실패의 경험, 그건 실패로만 남지 않는다. 실패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실패는 성공 이상으로 자신을 성장시킨다. 그와는 반대로 승승장구만 한 사람들은, 성공의 회한을 뒤늦게 맛봐야만 한다. 아래의 시는 이와 같은 삶의 오묘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 해결하지 못한 고민들은
시간과 함께 스스로 물러간다
쓸쓸한 미소이건
회한의 눈물이건
하지만 인생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건너뛴
본질적인 것들은 결코 사리지지 않는다
담요에 싸서 버리고 떠난 핏덩이처럼
건너뛴 시간만큼 장성하여 돌아와
어느 날 내 앞에 무서운 얼굴로 선다
성공한 자에겐 성공의 복수로
패배한 자에겐 붉은빛 회한으로
나는 내 인생의 무엇을 해결하지 못하고
본질적인 것을 건너뛰고 달려왔던가
그 힘없이 울부짖는 핏덩이를 던져두고
나는 무엇을 이루었던가
성공했기에 행복하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라
아무도 모른다
성공을 위해 삶을 건너뛴 자에게는
쓰디쓴 삶의 껍질밖에 남겨진 게 없으니
「건너뛴 삶」 박노해
본질을 들여다 보기 위해 마주친다
“테크네 τ.εχνη (techne)는 단순한 대면이 아니라 본질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왕주 선생님이 건넨 이 한 마디는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이건 깊이 새겨듣고 싶던 말이었다.
흔히 ‘테크닉’이라 할 때, 그건 ‘어떤 완전무결한 지식을 가지고 세상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수영 테크닉’을 익히면 물의 흐름에 상관없이 완벽하게 수영을 할 수 있으며, ‘언어 테크닉’을 익히면 완벽하게 언어를 구사하여 상대방을 내 뜻대로 할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건 나만의 틀을 가지고 세상에 다가가려는 완고함이나 폭력이 아닐까.
그렇지만 실상 technic의 유래인 희랍어의 ‘techne’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techne란 완고한 나의 지식으로 상대를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왕주의 선생님은 맥주컵을 보며 “테크네란 바로 맥주컵이란 지식으로 맥주컵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사물 그 이면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로 이와 같은 행위가 가능하려면, 나의 선지식‧고정관념을 지우고 사물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감식안을 키워야만 한다. 무지개를 있는 그대로 볼 것이지, ‘빨주노초파남보’라는 관념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그건 곧 오감을 활짝 열고 세상을 마주하라는 첫 번째 말과 다르지 않은 말이라 할 수 있다.
▲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
공산품인가? 예술작품인가? 테크네란 편견, 지식, 관념 너머로 들어가려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그럴 때 공산품이 예술작품으로 변할 수 있고 보통 아이가 특별한 아이가 될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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