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판적인 신앙인이 되라
일반적 순교관은 무비판적으로 학습되어 있는 우리이기에, 신의 계시는 무조건 진리라 믿는 우리이기에 그저 수용한 종교관의 한 부분이다. 그러하기에 그저 신의 일 가운데 핍박받아 죽게 됨을 최고의 종교심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렇게 죽은 사람에 대해서도 맹목적인 존경심을 보인다.
비판적으로 볼 때 실제가 보인다
기독교에서 절대자로 귀결되어지는 예수의 경우, 자기 죄로 인한 죽음이 아닌, 사람들의 죄로 인해 대신 죽었기에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아무 비판 없이 그를 최고의 신으로 받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12명 목사도 하나님의 일 가운데 핍박 받아 죽음에 이르렀기에 그저 순교자로 인정해 버리는 것이고 그 반면 혼자만 덩그러니 살아서 돌아온 신목사(한목사의 경우 미쳤기 때문에 제외)는 당연히 목숨을 구걸하여 살아남은 비열한 인간으로 간주되기에 배교자로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판단이 가능한 이유는, 무비판적으로 길들어져 그 겉모습만으로 진정 그 내면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실질적 순교관은 일반적 순교관과는 전혀 반대의 결과를 돌출해 낸다. 실질적 순교관이란 게 비판할 부분은 비판하고 짚고 넘어갈 부분은 일일이 고찰해 보는 것으로 신의 일 가운데 올바른 신앙관과 판단에 따른 죽음일 때만 순교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 실질적 순교관에서 바라보면 예수의 죽음과 12명 목사의 죽음은 어떨까? 예수의 죽기 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한마디 말에 거대한 비중을 둠으로써, 그의 죽음 또한 진정한 의미의 순교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12명 또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 중에 자기들끼리 배신하는 자도 있었고, 하나님을 저주한 자도 있었기에 그들의 죽음을 개죽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판단하며 신목사의 경우 마지막까지 진정한 신앙의 기반 아래 저항했기에 비록 살아남았을지라도 진정한 순교자의 전형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즉 실질적 순교관은 마지막까지 신에 대한 진실한 믿음 여부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파악한다.
이렇듯 실질적 순교관에선 그 내면의 깊숙한 부분을 파고들어 시비를 논하기 때문에 우리의 일반적 순교관과는 180° 다른 해석이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 순교라는 행위 자체만으로 순교의 여부를 판단해선 안 된다.
맹목적이지 말라, 비판하고 궁금해 하라
지금까지 두 가지 순교관을 살펴보았다. 두 가지를 면밀히 살펴보므로 같은 상황에 대한 해석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경험해보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실질적 순교관의 결론이 맘에 안 든다 해도 “억지예요. 전체 맥락이 중요한 거지, 그렇게 한마디를 집착하면 쓰나요!”라고 실질적 순교관을 폄하하거나 핑계를 댈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의 맹목적 신앙관에 따른 일반적 순교관이 크나큰 오류 속에 있음을 직감하면 되는 것이고 그걸 고치려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노력이 결여된 채, 아주 고루하게 지금까지의 내 신앙은 절대의 가치를 가졌고 절대 틀릴 리가 없어라고 고집을 피우며 고치지 않으려 한다면, 결국 보편적(인간적) 관점의 신앙을 추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앙적(신적) 관점의 신앙은 놓치게 될 것이다. 이 말 자체는 거대한 비감이 안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건 엄청난 비극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적어도 인간이 신앙을 가지는 까닭은, 현세의 평안을 추구하기보다는 신의 기쁨이 되므로 내세의 평안을 도모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이처럼 자기 나름대로는 정말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신에겐 헛된 믿음으로 판단된다면, 그래서 결국 죽어라 봉사 해놓고서 신에게 기쁨이 되지 못하므로 내세를 도모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 자체로 이미 엄청난 비극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융통성 있는 신앙생활을 추구하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절대 수용하도록 학습화되어 있다 할지라도, 신의 계시가 절대 진리일지라도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런 진리를 전하는 자는 의지가 개입된 사람이기에 절대 진리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며 그걸 받아들이는 우리들조차 자기 편한 식의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당한 비판과 심사숙고 뒤에 받아들여야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종교는 우리가 실질적으로 체험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다분히 형이상학적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그 부분들(특히 신앙생활, 순교) 역시 형이상학적일 수밖에 없다. 그건 곧 단순성보단 복잡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뜻하기에 깊이 있는 사고를 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복잡성을 염두에 두어서 맹목적인 수용의 자세를 벗어버리고 융통성 있는, 비판성 있는 신앙생활을 추구하길 바란다. 그럴 때 진정 신의 기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순교자라는 책은 신앙심이란 무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용
1. 두 가지 종류의 순교관
2. 비판적인 신앙인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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