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범생이 되지 말라
‘어른을 흉내내려 애쓴다’는 말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면, 아래에 인용한 글을 읽어보며 생각을 정리하도록 하자.
1. “내 아이는 문제가 없어요.”
2. “내 아이는 착해요.”
3. “내 아이는 공부를 잘해요.”
나는 문제가 있는 아이들보다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 본다.
1. 문제가 없었기로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자살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남에게 별 문제를 안 일으킨다. 다만 자신에게 단 한 번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 뿐이다.
2. 착하기로 끝없이 불만이 쌓인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하고 싶은 행동을 참고, 자신의 욕망을 끝없이 유예하는 아이, 그 아이의 내면은 갈가리 찢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3. 판검사들이 공부를 못했나? 기자들이 공부를 못했나?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의사들이 공부를 못했나? 고위관료들이 공부를 못했나? 대기업임원들이 공부를 못했나? 대학교수가 공부를 못했나? (‘일반’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공부를 잘 한다는 말은 부모, 선생으로부터 ‘칭찬(인정욕구)’을 듣는 방법을 안다는 말이고, 시키는 대로 잘 따른다는 말이고, 자신(만족)을 위해 인내한다는 말이고, 나중에는 결국 체제(권력에)가 요구(기여)하는 모범적인(?)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당신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체제의 부속품이 되기 십상이라는 말이다. 좀 무섭지(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문제없는 내 아이가 문제다’, 카페헤세이티 Facebook 글, 2015년 7월 26일
이 글을 읽으면 무언가 필이 팍하니 올 것이다. 물론 이 글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네’라며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오해를 덜기 위해 위의 이야기를 좀 더 풀어보기로 하자.
▲ 문제 없는 아이는 지금껏 잘 적응했고, 잘 자랐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생각을 바꿀 필요도 있다.
문제없는 내 아이가 문제다
우리 사회에선 모범생과 문제아를 가차 없이 구분하고 있다. 어른의 기준에 철저히 맞춰, 체제에 철저히 순응하는 경우 모범생이라 칭하며 대우해주는데 반해, 어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천방지축 날 뛸 경우 문제아라 낙인찍고 온갖 불이익을 다 준다.
나 또한 그런 사회에서 지금껏 자라왔기 때문에 모범생에 대한 환상(뭐든 잘 할 것이다, 인성이 바를 것이다)이 있었던 게 사실이고, 문제아에 대해서는 편견(성격이 지랄 맞을 것이다, 할 줄 아는 게 없을 것이다)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니 당연히 모범생인 아이들에겐 매너 있게 대하고 뭔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 거란 관념 때문에 그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묻게 되었고, 문제아인 아이들에겐 좀 더 거칠게 다루고 말을 듣기도 전에 내 의사대로 하게 되었다.
▲ 맘껏 뛰어 노는 아이들. 그게 바로 지금의 우리다.
어른의 시선이 아닌, 그 사람의 시선으로
하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그건 환상일 뿐임을 알 수 있었다. 모범생이지만 오히려 사회적인 시선이나 인간관계에선 젬병인 경우를 충분히 볼 수 있었으며, 문제아지만 억압적인 분위기만 아니면 오히려 주도적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경우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모범생이냐 문제아냐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없는 더 큰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소위 모범생이란 것은 활발발한 자신의 생채리듬을 꺾고 어른들의 기대수준에 맞추기 위해 감정을 거세한 것이었다. 아이지만 아이가 아닌 어른인 척하려 무진 애쓰고 있다는 뜻이다. 흔히 ‘애어른’이란 단어로 불리듯, 자신의 감정보다는 타인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시선보다 사회의 시선을 먼저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니 어른들이 보기엔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게 맘에 들 수밖에 없고, 그러니 온갖 칭찬을 퍼붓게 되고, 아이는 그런 어른들의 칭찬에 한껏 고조되어 더욱 어른을 흉내 내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의 감정은 감출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만이 쌓’이게 되고 ‘내면은 갈가리 찢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아이다움을 축복으로, 청소년이 청소년다움을 축복으로 여길 수 있도록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맘먹었다. 청소년 시기를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로 표현하듯, 그 나이 때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 맘껏 방황하고 반항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걸 ‘정신 못 차렸다’고 나무랄 일이 아니라, 그 시기를 온전히 겪어내며 맘껏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가만히 지켜볼 일이다. 민석이를 보면서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는 생각과 함께, 어른의 기준이 아닌 그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깨달음을 준 민석이에게 ‘아즘찬이 또 아즘찬이 아즘찬이구만요’라는 말을 하고 싶다.
▲ 늘 형들을 따라 천방지축으로 다니던 민석이도 지금은 리더가 되어 확 달라졌다.
인용
2. 1학기 동안의 학습결과를 나누는 자리 작은 전시회
4. 모범생이 되지 말라
5. 작은 전시회, 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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