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준비과정을 통해 교육의 가능성을 보다
작은 발표회를 준비하며 어떻게 음식을 마련할 것인지, 그리고 그때 부모들에게 모금을 할 것인지를 정하는 이런 식의 일련의 과정을 보고 있으니, 아이들이 부쩍 자랐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언가를 하고자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 그걸 진행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면 그걸 뿌리치거나 무시하기보다 귀담아 듣고 어떻게든 절충안을 만들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 1학기 마무리 여행에서 아이들은 밤새도록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게임도 하며 놀았다. 소통의 장이 무언지 보여준 그 때.
교육의 핵심은 ‘어떻게 성숙한 인간으로 만드는가?’ 하는 것
단재 교육과정의 핵심은 아이들을 성숙한 존재로 키우는 것이다. 그런 성숙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소통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교과적인 지식, 성적이 학생 평가의 바로미터가 되었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학생 성장을 담고 있진 않다. 어찌 보면 교과지식 너머에 학생의 본모습이 감춰져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능력이 바로 소통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되며 관계 문제는 소통의 문제로 일어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상,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기에 갈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가 그 사람의 성숙을 체크할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소통을 하려 하기보다 자기 혼자 상황을 지레짐작하여 마음을 닫아 버린다. 그러니 관계는 꼬이고 자신은 위축되고,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소통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소통의 기회를 주고 갈등 상황에서 갈등을 해결해나갈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단재학교는 소규모 학교다. 그렇기 때문에 얼렁뚱땅 각 학생의 상황을 넘겨짚거나 넘어갈 수 없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한 사람의 문제는 극히 작은 문제일 뿐이지만, 사람이 적은 곳에서 한 사람의 문제는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에 풀기 위해 함께 노력할 수밖에 없다. 갈등 상황에서 아이들은 도망가기보다 그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함께 대화하며 방법을 모색한다. 그렇게 한다고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거나, ‘여긴 낙원 같은 곳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공간일 순 없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소통의 가능성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고, 함께 그 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 단재학교의 좋은 점이다.
▲ 세팅을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날 오전엔 전시회를 위해 작품을 세팅했고 오후엔 아카펠라 공연 연습을 했다. 아카펠라 선생님이 오시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연습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 때 여학생들은 리더를 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리더를 정하지 않으면 우왕좌왕 할 뿐만 아니라, 목소리 큰 사람이 연습을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리더를 정해서 그 사람의 말을 따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승태쌤은 민석이를 리더로 지명했다.
민석이와는 벌써 3년째 함께 했다. 단재학교에 처음 근무할 때부터 영화팀에서 동고동락했으니 그만큼 서로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민석이는 처음 단재학교에 들어왔을 땐 당연히 학교의 막내였기에 선배들을 따라 학교를 잘 다니면 되었고, 그 후엔 건호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에 건호가 이끌어주는 대로 따라가면 됐다. 그런 상황이니 지리산에 갔을 때도 건호에게 의지하며 종주만 하면 됐던 것이다. 작년엔 명색이 학생회장으로 선출되었지만, 부회장으로 뽑힌 이향이가 선배였기에 이향이에게 학생회장의 전권을 위임(실질적으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상황 상 그랬다는 것임)하고 부회장직만을 수동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봤을 때 ‘민석이가 과연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당연히 들었다.
하지만 이날 민석이가 보여준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잘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지휘자처럼 “몇 마디부터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을 하거나, 한 곡이 끝난 후엔 아이들에게 어떤 부분이 미진한지 들은 후에 그 부분을 집중 연습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겨울 내내 땅 속에 씨앗이 움츠러들어 있다가 약동하는 봄기운이 온 천지를 뒤덮으면 서서히 싹이 나와 만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민석이에게서 받았다. 때가 되면 누구도 몰라보게 달라질 수 있고, 때가 되면 누구도 활짝 필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금세 작품은 자리를 잡고 여느 유명 전시회장을 방불케 한다.
어른의 시선이 문제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느껴지는 게 있었다. ‘뭔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대해 말이다. 대부분의 판단 기준은 당연히 그런 판단을 하는 어른의 기준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아이를 보더라도 ‘미진하다’고 느끼며, 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아이를 보더라도 ‘다른 것도 잘 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런 판단을 하는 자신조차도 그와 같은 완벽한 인간이 아님에도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은 예리하기만 하다.
나 또한 이런 얘기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민석이를 보면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리더의 역할을 했으면’하는 바람을 가진 것이 바로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른의 관점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아무렇지 않게 판단하며 부족한 부분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그러니 아이는 어른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 주눅들 수밖에 없고 자신을 더욱 깎아내리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젠 ‘어른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시선’에서, ‘타인의 시선’이 아닌 ‘당사자의 시선’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어른의 시선’에 적응한 아이, ‘타인의 시선’에 맞추려는 아이에 대한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다.
민석이가 예전부터 막내였음에도 리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거나 선생님의 바람을 알아 척척 숙제도 하고 여러 관계에서도 능숙하게 행동했다면 교사인 내 입장에선 분명 좋아했을 것이고 ‘된 놈’이라 칭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오히려 부단히 자신을 버리고 타인에게 맞추려 노력한 결과이며, 그 나이 때의 아이답지 않은 어른 흉내 내려 애쓴 결과이니 말이다.
▲ 민석이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둘러 앉았다. 민석이의 지휘에 따라 아이들이 함께 연습을 한다. 놀라운 광경이다.
인용
2. 1학기 동안의 학습결과를 나누는 자리 작은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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