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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단재학교 송파동에서 석촌동으로 이전하다 - 2. 둔촌동 단재학교에서 자리 잡아가다 본문

학교/단재학교 이야기

단재학교 송파동에서 석촌동으로 이전하다 - 2. 둔촌동 단재학교에서 자리 잡아가다

건방진방랑자 2019. 12. 2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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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둔촌동 단재학교에서 자리 잡아가다

 

단재학교에 처음 갔을 때의 인상은 학원 같다는 거였다. 아무래도 사무실을 리모델링하여 쓰다 보니,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게 당연했다.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 이 사진에 나온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둔촌동 단재학교에서 건빵이 되려 발버둥 치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점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한 없이 밝고, 자유분방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학원은 성적 부담이란 일반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공간이기에, 아이들은 주눅 들어 있고 그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기계적으로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다음에 부랴부랴 시간에 쫓겨 또 다른 학원으로 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 표정은 어둡고 말도 거의 하지 않으며 여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곳의 환경은 얼핏 학원 같지만, 분위기는 맘껏 자신을 표현해도 되고 그런 것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해방구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변산공동체학교에 대해 쓴 윤구병쌤의 책을 읽으며 내가 지금껏 다녔던 학교와는 다른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심취했었고, 정령 교사가 된다면 그런 학급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단재학교에선 이미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뿌듯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자유분방함을 받아들이기엔 내 자신이 한계로 작용했다. 그러고 보면 일반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군대를 제대했으니, 몸엔 이미 낙인처럼 규율과 순응, 단체와 획일화가 알알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내 뜻대로 하려고 했고, 자율을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규칙을 강조하려고만 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그런 것들이 지긋지긋하단 생각을 했고 그때의 교사들을 꽉꽉 막혀 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과 닮아간다는 말처럼 나 또한 그 당시의 학교 교사들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은 어느 정도까지 자율로 할 것인가? 어느 정도까지 규칙을 적용할 것인가?’하는 부분이었다. 그건 이상과 현실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교사상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둔촌동 단재학교엔 초임 교사 건빵이 어떻게 이상과 현실을 매치시키려 노력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얼마나 교육에 대한 생각에 균열이 가며 혼란스러워 했는지 그 모든 게 담겨 있다.

 

 

영화팀 아이들과의 첫 여행. 고향인 전주로 가서 영화제에 참석했었다.    

 

 

 

처음의 의미가 담겨 있던 둔촌동 단재학교

 

강동구 둔촌동에서 송파구 송파동으로 2014813()에 이전했으니, 나는 둔촌동 학교에서 210개월가량을 보낸 셈이다. 그 기간 동안 영화팀과 연극팀이 단재학교의 프로젝트팀으로 자리를 잡았고, 아이들도 그 두 팀 중 하나에 소속되어 활동을 하게 됐다. 나도 나름 영화팀 교사라는 역할을 맡아 자율과 규율 사이에서’, ‘전공인 한문과 문외한인 영화 사이에서나름의 갈등과 고민을 하며 아이들과 부대끼며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게 있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사라지고 마는 순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얼른 이 시간이 흘러서 많은 경험을 쌓아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은 어설프지만 열정적이며,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처럼 깜량도 알지 못하고 대들 수 있을 때다. 그만큼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참신하게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서 펼쳐나갈 수 있을 때다. 그런 시기는 어떻게든 흘러가고 변해가게 되어 있다. 시간이 흐르며 여러 관계와 마주치며 닳고 닳아 능숙해지기도 하고 타성에 젖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처음의 의미를 곱씹는 것이다. 그만큼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으며, 처음 순간의 풋풋함과 열정은 다시 되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14.05.13에 올림픽공원에서 단재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둔촌동 단재학교는 모든 일의 시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자, 지금에 이르러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추억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가 있는 장소를 떠나 송파동으로 학교를 이전한다고 하니 은근히 섭섭하고 아쉽더라.

그러나 어찌 보면 단재학교를 송파동으로 이전하는 것은 단재학교의 일대 변혁이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학원과 같은 구조에서 벗어나 개인주택을 임대하며 좀 더 대안학교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학생 중심의 학교에서 지역과 함께 하는 학교의 네트워크를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송파동 학교로 이전하는 소감은 이전에 단재학교 성내동 시대를 끝내고 송파동 시대를 열다라는 글에 밝혔으니, 여기선 다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다음 후기에선 송파동 시대를 연 단재학교에 대한 이야기와 2년 반 만에 석촌동으로 이전하게 된 이야기를 쓰도록 하겠다.

 

 

2년 반동안 우리의 배움터가 되어준 곳, 송파동 단재학교. 

 

 

인용

목차

1. 도전할 용기를 준 단재학교

2. 둔촌동 단재학교에서 자리 잡아가다

3. 송파동 단재학교에서 현실과 이상을 융합하다

4. 단재학교, 석촌동에서 새 역사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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